사장님, 혹시 남는 방 있어요?

by 은손


다음에는 어디 가볼까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일단 바다 근처에 가면 식당 하나쯤은 있겠지. 구글맵을 살펴보던 중, 낯선 이름이 시선을 붙잡았다 — 모라왈라. 다른 해변보다 리뷰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서 더 끌렸다. 어떤 풍경인 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Pixabay

“모라왈라 바다에 가는 거에요?“

택시 아저씨가 물었다.

“네.”

“여기 가는 외국인 손님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네곰보 바다가 유명한데, 거기로 갈까요?”


잠시 흔들렸다. 모두가 가는 네곰보 바다를 선택할지, 아니면 아무도 안 가는 모라왈라를 선택할지. 당연히 전자가 더 안전한 선택지렷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 같았다. 하지만 망하면 어떤가.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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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왈라 바다에 내려주세요

여기에서 머뭇거리면, 두고두고 신경 쓰일 것 같았다. 망해도 내 탓, 성공해도 내 탓인 게 낫다. 결국 내 여행은 내가 책임지는 거니까.


“다 왔어요.”


문을 여는 순간, 바닷바람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들린 건 둥둥 울리는 비트 소리였다. 여기에 맞춰서 춤추는 젊은이,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 먹거리 파는 아주머니까지. 온 동네가 쏟아져 나온 모양이었다. 택시 아저씨 말대로 외국인은 없지만, 현지인 사이에서는 인기 만점이었다. 망한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 풍경에 빨려 들어갔다.


파도가 꽤 거세 보였지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정말 괜찮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야 보였다, 바다 한가운데서부터 백사장까지 뻗어 있는 암석이. 거센 파도는 여기에 부딪혀 알알이 부서졌고, 그 뒤로 잔물결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자연이 만든 워터파크가 따로 없다.


백사장에는 사진 찍는 사람도 많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찰나에 맞춰 셔터를 누를 수 있다면, 인생샷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나도 찍어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눈에만 담았다. 문득 이 풍경을 매일 누리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5시 즈음이 되자, 배가 고파왔다. 파라솔에서 간식거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보였지만, 모래밭에 앉아서 먹긴 싫었다. 스리랑카어로 주문할 자신도 없었다. 그때 영어로 된 간판이 보였다.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나 같은 여행자도 열렬히 환영해 줄 것 같았다.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것 보니, 맛집인가 보다. 망설이지 않고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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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담배를 입에서 떼고, 나를 맞이했다. 까무잡잡하고 마른 체형이라 그런지, 청바지가 잘 어울렸다. 나이는 50대 초반이었다.


“메뉴판 좀 볼 수 있나요?”

“뭐 먹고 싶은데?”

“샌드위치랑 수박 주스면 될 것 같아요.”


주문을 마치고, 철조망 너머에 보이는 바다를 한참 구경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수영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 그대로 식당에 들어왔다. 여기서 샤워도 하고 저녁까지 먹고 간단다. 모라왈라가 있는 한, 이 가게는 절대 망하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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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언제 오픈했어요?”

“기억이 안 나.

택시 기사를 했었는데, 더 돌아다니기 싫어서 차렸어.

요리를 좋아하니까, 식당도 운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박 주스를 다 비웠다.


“제 샌드위치는 아직 멀었어요?”

“아차, 깜빡했네. 금방 갖다 줄게. 혼자 놀고 있어.”

그는 주방에 달려가다시피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옆에 앉았다. 내가 샌드위치를 주문한 게 못내 아쉬웠는지, 식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번역기까지 써가며, 열심히 소통했다.


네곰보 수산시장

“혹시 해산물 안 좋아해?”

“응, 별로.”

거짓말이었다. 회가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인데, 얼음도 없이 생선 파는 현장을 본 뒤로 입맛이 떨어져 버렸을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까탈스러운 여행자가 되었다.


“사장님이랑 나, 생선 요리는 다 잘하거든. 얼마 전에는 호주 손님한테 한 상 차려줬는데, 진짜 좋아했어. 너도 꼭 다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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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 요리한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요리, 정성 가득한 플레이팅, 웃고 있는 손님의 얼굴. 사진만 봤는데, 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저 상이 내 상이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내 삼시 세 끼도 맡기고 싶었다. 해산물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바다가 보인다는 것, 밤새 은하수를 볼 수 있다는 것, 맛있는 밥까지 먹을 수 있다니. 이 숙소가 궁금해졌다.


"지금 방 남았어?"

"그럼, 2층 개인실 비었어.

보여줄까?”


화장실이 방 밖에 있긴 하지만, 별 상관없었다. 당장 엘라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귀국 전날까지, 2박 3일을 예약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취소하면서까지, 새 숙소에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도가 세게 밀려와도 안쪽은 평온했던 모라왈라 바다처럼, 무조건 예약한 곳에서 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던 순간. 새로운 시도였지만, 어쩐지 설레었다. 그 사이, 나의 여행력도 한 단계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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