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숲처럼 푸르게 살아야지

by 은손
새벽 여섯 시,
우버 기사가 숙소에 도착했다.
ChatGPT

이른 시간부터 서둘러 채비한 이유는 단 하나, 시기리야 때문이었다. '스리랑카에서 가볼 만한 곳' 검색할 때마다 등장한 그 이름 — 바위 위의 요새. 사진만 보아도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웠던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


한겨레

외국인 입장료는 35달러. 한 프레임에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바위가 시야를 압도했다. 왜 세계문화유산인지 단번에 알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피부가 타는 듯한 더위, 철제 난간까지, 절대 만만한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이미, 돌아가기에도 먼 길을 와버렸다.


물병에 카메라, 안전바. 손은 두 개밖에 없는데, 할 일은 세 개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누군가 “May I help you?“ 라며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야, 내가 해볼게요.” 짐을 정비하고, 다시 한 걸음씩 차근차근히 내디뎠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살갗은 점점 익어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눈앞의 전경 덕분에 마음이 뻥 뚫렸다.


역시 올라오길 잘했다.


이건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인간의 집념이 만든 작품이었다. 위로는 하늘이 가까이 보이고, 사방은 숲과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아래에 분명히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이 높이에서는 나무만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높이 자란 걸까. 천연 우산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

햇빛을 향해 묵묵히 뻗어가는 스리랑카의 나무처럼,

언제나 푸르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위 아래 숨겨진 신성함


다음 순서로 간 곳은 담불라 석굴사원. 시기리야와 가까워서 그런지, 다들 묶어서 구경하고 간단다. 사실 사원에 관심은 없었지만,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입구에 내리자마자 눈앞의 산세에 압도되어 버렸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야만, 석굴사원을 볼 수 있는 걸까. 시기리야에서 땀을 한바탕 흘렸는데, 또 시험이 시작되었다. 헬스장에서 마지막 세트를 해내듯이,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 모았다. 비록 속도는 느렸으나,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웅장한 바위 아래에 다다랐다.


내부는 갤러리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부처님 미소가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천장을 가득 채운 탱화를 올려다보며, 말없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어떻게 저 높이까지 그렸을까. 자연과 인간, 그 사이를 메우는 경건함.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주변을 한참 거닐었다.


시기리야
석굴사원

시기리야가 바위 위에 세운 웅장함이었다면, 이곳은 바위 아래 숨겨둔 신성함이었다. 아니, 바위가 인간을 품어준 느낌에 가까웠다. 시기리야에서는 발 아래 바위를 딛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고개를 들어야만 바위를 볼 수 있었다. 두 공간이 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확실히 달랐다.



조화 속에서 찾은 지혜, 담불라 황금사원


석굴사원에서 내려와, 드디어 황금사원에 도착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또 다른 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 마주친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 사찰 한 편에 아예 그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처음부터 함께 살아갈 생각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불교 철학을 삶으로 구현한 셈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도 그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누군가 내어준 자리에 앉았다. 산들산들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인간이 원숭이에게 놀이터를 주었듯이, 자연도 인간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있었다.


시기리야가 바위 위에 세운 인간의 꿈이라면, 석굴사원은 자연에 고개를 숙이는 곳. 담불라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이룬다. 극과 극을 받아들이며, 조화에 다다르는 정반합 여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푸르른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여행을 지나며, 그 의미는 점점 더 깊어졌다. 시기리야처럼 세상을 내려다볼 줄 아는 여유, 석굴사원에서 그랬듯이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 담불라처럼 균형을 이루는 삶 — 이 모든 마음이 스리랑카의 숲처럼 반짝이길 바란다. 한 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끝없이 성숙한 내면을 향해 나아가는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인생일까. 오늘도 난, 여행지에서 한 뼘 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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