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어디 가볼까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일단 바다 근처에 가면 식당 하나쯤은 있겠지. 구글맵을 살펴보던 중, 낯선 이름이 시선을 붙잡았다 — 모라왈라. 다른 해변보다 리뷰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서 더 끌렸다. 어떤 풍경인 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모라왈라 바다에 가는 거에요?“
택시 아저씨가 물었다.
“네.”
“여기 가는 외국인 손님은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네곰보 바다가 유명한데, 거기로 갈까요?”
잠시 흔들렸다. 모두가 가는 네곰보 바다를 선택할지, 아니면 아무도 안 가는 모라왈라를 선택할지. 당연히 전자가 더 안전한 선택지렷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 같았다. 하지만 망하면 어떤가.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 아닐까.
모라왈라 바다에 내려주세요
여기에서 머뭇거리면, 두고두고 신경 쓰일 것 같았다. 망해도 내 탓, 성공해도 내 탓인 게 낫다. 결국 내 여행은 내가 책임지는 거니까.
“다 왔어요.”
문을 여는 순간, 바닷바람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들린 건 둥둥 울리는 비트 소리였다. 여기에 맞춰서 춤추는 젊은이,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 먹거리 파는 아주머니까지. 온 동네가 쏟아져 나온 모양이었다. 택시 아저씨 말대로 외국인은 없지만, 현지인 사이에서는 인기 만점이었다. 망한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 풍경에 빨려 들어갔다.
파도가 꽤 거세 보였지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정말 괜찮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야 보였다, 바다 한가운데서부터 백사장까지 뻗어 있는 암석이. 거센 파도는 여기에 부딪혀 알알이 부서졌고, 그 뒤로 잔물결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자연이 만든 워터파크가 따로 없다.
백사장에는 사진 찍는 사람도 많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찰나에 맞춰 셔터를 누를 수 있다면, 인생샷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나도 찍어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눈에만 담았다. 문득 이 풍경을 매일 누리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5시 즈음이 되자, 배가 고파왔다. 파라솔에서 간식거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보였지만, 모래밭에 앉아서 먹긴 싫었다. 스리랑카어로 주문할 자신도 없었다. 그때 영어로 된 간판이 보였다.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나 같은 여행자도 열렬히 환영해 줄 것 같았다.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것 보니, 맛집인가 보다. 망설이지 않고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사장님은 담배를 입에서 떼고, 나를 맞이했다. 까무잡잡하고 마른 체형이라 그런지, 청바지가 잘 어울렸다. 나이는 50대 초반이었다.
“메뉴판 좀 볼 수 있나요?”
“뭐 먹고 싶은데?”
“샌드위치랑 수박 주스면 될 것 같아요.”
주문을 마치고, 철조망 너머에 보이는 바다를 한참 구경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수영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 그대로 식당에 들어왔다. 여기서 샤워도 하고 저녁까지 먹고 간단다. 모라왈라가 있는 한, 이 가게는 절대 망하지 않겠구나.
“가게는 언제 오픈했어요?”
“기억이 안 나.
택시 기사를 했었는데, 더 돌아다니기 싫어서 차렸어.
요리를 좋아하니까, 식당도 운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박 주스를 다 비웠다.
“제 샌드위치는 아직 멀었어요?”
“아차, 깜빡했네. 금방 갖다 줄게. 혼자 놀고 있어.”
그는 주방에 달려가다시피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옆에 앉았다. 내가 샌드위치를 주문한 게 못내 아쉬웠는지, 식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번역기까지 써가며, 열심히 소통했다.
“혹시 해산물 안 좋아해?”
“응, 별로.”
거짓말이었다. 회가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인데, 얼음도 없이 생선 파는 현장을 본 뒤로 입맛이 떨어져 버렸을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까탈스러운 여행자가 되었다.
“사장님이랑 나, 생선 요리는 다 잘하거든. 얼마 전에는 호주 손님한테 한 상 차려줬는데, 진짜 좋아했어. 너도 꼭 다시 와.”
그는 그날 요리한 사진을 보여 주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해산물 요리, 정성 가득한 플레이팅, 웃고 있는 손님의 얼굴. 사진만 봤는데, 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저 상이 내 상이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내 삼시 세 끼도 맡기고 싶었다. 해산물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바다가 보인다는 것, 밤새 은하수를 볼 수 있다는 것, 맛있는 밥까지 먹을 수 있다니. 이 숙소가 궁금해졌다.
"지금 방 남았어?"
"그럼, 2층 개인실 비었어.
보여줄까?”
화장실이 방 밖에 있긴 하지만, 별 상관없었다. 당장 엘라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귀국 전날까지, 2박 3일을 예약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취소하면서까지, 새 숙소에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도가 세게 밀려와도 안쪽은 평온했던 모라왈라 바다처럼, 무조건 예약한 곳에서 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던 순간. 새로운 시도였지만, 어쩐지 설레었다. 그 사이, 나의 여행력도 한 단계 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