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기술을 전부 다 쏟아부었다
저에게 기술윤리를 가르치던 교수님이 기말고사가 끝나고 같이 커피를 마시자고 하셔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너를 한 학기 가르쳐보고 레포트도 받아보고,
항상 나는 시험지 마지막 문제는
본인 생각을 묻는 서술형을 내는데
너는 기술윤리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때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어요.
윤리도, 법도, 규칙도
전부 다 살아있어야
지킬 수 있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몇번 넘다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덜한데,
무언가 지키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이 대답을 하자마자 저한테 갑자기 메모를 하시겠다고, 수첩을 꺼내셔서 다시 말해보라고 계속 하셔서 같은 대답을 거의 10번 가까이 해드린 것 같아요.
저 생각은 제가 몇번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실제적으로 체감했던 부분이에요.
그리고 항상 우리 가족은 가족구성원이 아팠을 때,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판단을 넘길 때, 최선을 다해서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모든 것을 다 하는 선택을 항상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아파트를 떠나서 굳이 단독주택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은 아닙니다. 우선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었고 조용히 살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위험천만한 상황도 많이 겪었어요.
그리고 제가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중에서도 '안전'쪽의 공부를 더 하게 되고, 자격증도 가지게 되고 하다보니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면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안전과 모험은 상당히 배치되는 말이기는 한데,
우리 가족은 이번에 신축을 하면서,
그 작은 단독주택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거의 방호시설에 준하는 건물을 지을 예정입니다.
물론 지하는 없지만요.
그리고 나중에 증축을 하더라도
건물이 타격을 받지 않고 안전에 문제가 없게끔
최선을 다했습니다.
건축사들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고, 저는 무엇보다 이번에 어머니의 대단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제가 부모님하고 산 기간이 길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결단력'과 '단호함'에 대한 부분은 항상 봐왔고, 심지어 자식한테도 단호했던 분들이니까 예상은 했어요.
그런데 건축사들이 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고, 가급적이면 싸움을 피하고 타협을 하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덜 단호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https://brunch.co.kr/@f501449f453043f/365
제가 전에 위의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해가 되는 이유라면 언제든지 오케이다.
어머니의 단호한 어떤 gesture나 발언을 보고, 건축사들이 전부 위축이 되어서 조심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어머니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저 세 사람의 건축사는 건축주를 이해 못시킨거고,
건축사가 아닌 너는 건축주에게 합리적인 방향을 이야기 해서
내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뿐이야.
사람이 차선보다는 최선을 선택하고 싶잖아.
그런데 저 사람들은 자기들 편하자고 차선을 원하잖아.
그건 잘못된거라는 것은 사람이면 다 알아.
그리고 이번에 이걸로도 안되면
그냥 계약서 찢어버리자.
저도 최선을 다했고, 이제 저 세 사람의 건축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저보다 다 똑똑하신 분들이겠지요. 그런데 불필요한 것들을 굳이 만들어내서 시공의 난이도를 높이는 행동은 좀 삼가해줬으면 좋겠는데,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관여할 부분은 다 쏟아냈고,
이제 기다릴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