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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Apr 15. 2024

눈 치운 이야기요?
군필보다 많습니다.

주택 살이 8년 차 눈 치우기

시골에서 주택 살이 8년 차다. 이 말은 군대 체험 8년 차나 다름없다.


성지순례 전문 여행업을 하는 그분은 출장으로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특히 12월부터 2월까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그분이 출장 갔다 올 때까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자네, 군대에서 눈은 얼마나 치워 봤나? 아마 내가 자네보다 눈을 더 많이 치웠을 걸세.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보게.”


나는 중간 정도의 무례함으로 그분을 도발했다.


역시나 그분은 무시정공법으로 대처했다. 내가 건네는 말에 전부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쳇!


2023년 12월, 어김없이 그분은 출장을 떠났다.


그분이 떠난 날부터 나는 점쟁이 빤스를 입은 사람처럼 말했다. “분명 눈이 올 거야. 아주 많은 눈이 오겠지? 난 또 몸살이 나고 아프겠지.” 불안함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불안함의 뿌리가 눈이 오는 날 그분을 향한 그리움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 베란다 창 너머 계절은 이랬다. 잘 가꿔진 풀과 나무는 푸르렀고, 꽃들은 수줍으면서도 예뻤다. 분수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한여름 더위를 식혀줬다. 낙엽은 색색이 낭만적이었다. 하얗게 내린 눈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보는 풍경은 그저 낭만이고 아름답기만 했다.


주택의 현관문 밖 계절은 달랐다. 풀과의 전쟁, 벌레와의 전쟁, 눈과의 전쟁이었다. 모든 것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 전쟁 속엔 항상 내가 있었고 주인공이었다.


3일째 내리는 눈이었다. 아침마다 이장님이 트랙터로 마을 안길을 돌며 제설봉사를 해주었다. 문제는 마당이었다. 집 앞마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한겨울 눈 쌓인 마당은 만주벌판 보다 넓게 느껴졌다.


밤사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은 눈을 아침에서야 확인하는 상황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었다. 전쟁에 나갈 무기라고는 넉가래와 빗자루뿐이었다. 전투에 임할 군인도 나밖에 없었다.


나는 총력을 기울여 눈을 치웠다. 눈은 치우기가 무섭게 다시 쌓였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넉가래질로 눈물, 콧물 훌쩍대는 코찔찔이가 되어 있었다. 벅찬 호흡에 벌어진 입에선 연신 거센 입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요령이 없어서인지 넉가래도 두 개나 부러트렸다. 머리는 저절로 산발이 되고 팔과 다리도 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난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렸다. 다행히 아무도 이런 내 모습을 볼 사람은 없었다. 


그날 아침에 아들이 학교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을 땐 심각성을 몰랐다.


“잘 다녀와.”

“엄마, 눈이 너무 많이 와. 못 가겠는데?”

“아들아,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버스는 다녀. 못 가긴 왜 못 가. 버스 놓치지 말고 어서 가.”


아들이 꾀가 나서 괜히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제발 버스 타고 가주길 바랐다. 일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아픈 몸을 움직여 눈을 치워야 하니 학교까지 데려다줄 여유가 없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잠시 뒤 문 여는 소리와 함께 아들이 3분 만에 등장했다. 눈사람이 되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밖의 상황을 보았다. 세상에! 재난 상황이었다.


내 사전에 결석은 없었다. 운전시야 확보를 위해 급하게 앞 유리에 쌓인 눈만 털어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난리도 아니었다. 큰 도로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제설작업도 여의치 않은 듯했다. 도로 위에 차들도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겨울바람으로 차 위에 쌓인 눈이 하얀 요술가루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집에 도착해서야 학교에서 온 공지 문자를 확인했다. 많은 눈으로 도로상황이 좋지 않으니 출발하지 않은 학생은 등교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젠장..        


절망적인 집 앞 상황


마당, 마당, 마당이 문제였다. 벌써 사흘째 눈을 치워 놓아 이젠 더 이상 눈을 밀어 놓을 곳이 없었다. 이 많은 눈을 어디로 몰아 놓는단 말인가. 애꿎게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제설작업을 하고 있는 건가요? 도로상황이 말이 아니에요. 큰 도로도 엉망이고 마을 안길은 더 심각해서 고립상태나 마찬가지예요.”

“마을 이장님들과 청년들이 동원돼서 개인 트랙터로 재설봉사 중인데 트랙터까지 빠지는 상황이라 늦어지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개인이 조금씩 치워주셔야 해요.”


나는 ‘후’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민들레 홀씨 같은 여자였다. 이런 내가 몇 년째 눈을 혼자 치우며 군대 체험을 하고 있다.


마음속 저 밑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해외에 나가있는 예비군(그분)을 원망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눈을 치웠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젠장, 내가 매년 눈 치웠던 무용담을 예비군(그분)에게 해주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눈을 치우다 문득 '10CM, 봄이 좋냐??' 노래가 떠올라 소리치며 불러 댔다.


“눈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눈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몽땅 망해라.”


혹독한 추위와 폭설은 멈췄다. 마당에 눈은 흔적만 남고 몸살도 나았으며 겨울 햇살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그분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그분에게 하는 인사인지 나에게 건네는 인사인지 모를 말을 첫마디로 뱉었다.


“고생했어.”


그분은 남의 속도 모르는 소리를 했다.


“응. 한국은 날씨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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