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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고NAGO Apr 15. 2024

나를 찾아서-[3]

2달간의 여행 - (1) 제주도 한 달 살기

생각해보니 공무원이 된 후로 1주일 이상 휴가를 간 적이 없었다. 초기에는 눈치보느라 바빴고, 업무에 적응이 되고 능숙했을 때도 1주일 이상 쉬고 돌아왔을 때 쌓여 있을 일거리들을 생각하니 편하게 쉴 수 없었다. 4박 5일간의 여행이 가장 긴 여행이었다. 퇴사를 다짐한 후부터 무조건 1달 이상 긴 여행을 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2022년 9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8월초부터 10월 초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다 국내 여행을 계획했고, 경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한 달 살기가 효율적일 거 같았다. 알아보니,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한 달 살기 지역은 제주도였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위해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카페가 있었다. 한 달 살기를 위한 스텝을 모집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유용한 플랫폼이었다. 스텝 모집 공고를 보다가 맘에 든 제주시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 지원하여 합격을 했지만, 친한 형이 제주도를 가는데 도시로 가는 거보다 자연과 더 가까운 지역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해주어서, 결국 제주 서쪽 끝자락 한경면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별 거 없었다. 무언가 새로운 도약을 하는 듯 부푼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별 거 없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있는 정도? 제주공항에서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그정도로 끝자락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처음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있는 비치 벤치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사장님이나 직원인줄 알고 오늘 오기로 한 스텝이라며 소개했지만 알고 보니 게스트들이었다. 조금 뻘쭘해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척봐도 외향적인 게스트 한 분이 직원을 불러와주셨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게스트하우스 내부에서 사장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중에 듣기론 무척 친해보였던 그 게스트 분들도 다들 전날 처음 본 사이였다고 한다. 솔직히 '여기가 정말 제주도인가! 게스트 하우스는 자유로운 곳이구나!'와 같은 설렘보다 처음 겪은 문화여서 당황스러웠고, 이 문화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첫날, 해야 될 업무와 다른 스텝들과 휴무일을 어떻게 가지면 되는지 등 구체적인 운영 방식에 대해 간단히 배웠고, 게스트 하우스의 문화 중 하나인 저녁 파티를 참여하게 되었다. 저녁 파티가 어떤 건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투숙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문화다. 참여 의사는 자유지만 때로 원활한 저녁 파티 운영을 위해 의무로 참석해야 하는 숙박 조건도 있었다. 저녁 식사는 보통 7시에 시작해 11시 즈음 끝나는데 파티 분위기는 참석자 성향에 따라 매번 다르다. 흥이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왁자지껄하며 파티가 끝난 시간에 따로 2차를 갖기도 하고, 반대로 차분한 성향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경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아 스텝들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야 하기도 했다.


저녁 파티는 때로 억지로 텐션을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돌이켜보건대 특별한 경험이었다. 저녁 파티가 있어서 제주도 한 달 살기가 더 풍성한 경험이 되었다. 내가 있던 게스트 하우스는 최대 숙박객이 10명이 넘지 않는 소규모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래서 저녁 파티에 참석하는 최대 인원도 스텝 포함 15명이 넘지 않았고, 평균 10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소규모 파티의 장점은 서로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인 경우 한 마디도 못나누는 사람이 있는데 10명 정도면 중간에 자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대체로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특히 나는 스텝이었기 때문에 아이스브레이킹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주어져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게스트 하우스의 특성상 대부분의 투숙객들이 1박을 한 뒤 떠나고,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게스트들로 채워진다. 즉, 저녁 파티 덕분에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부터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무원 혹은 직장인이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은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술과 맛있는 음식, 짧은 여행으로 평일 동안 참아왔던 놀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길 반복했다. 인스타그램을 봐도 대부분 비슷했다. 평일에는 퇴근 후의 저녁 일상과 같은 비슷비슷한 게시물이 업로드되는 반면, 주말에는 여행, 핫플레이스 방문, 취미 생활 등 업로드 되는 게시물들이 다채로워졌다. 그렇게 모두들 평범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삶을 사는 줄 알았다.


반면,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일본에서 야구 선수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 한국에 돌아왔고, 그러다 서핑에 빠져 여름 내내 강원도 서핑샵에서 일하며 주구장창 서핑만 타고 온 사람(내가 본 그 누구보다 피부가 까맸다.), 3대 회계법인 직원과 같이 온 다른 사람은 H그룹 미래전략실 직원인 남자 일행들, 서울에서 일하다 제주도가 좋아 제주도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 나와 비슷한 또래에 세계여행을 한 사람, 대학을 졸업했지만 공부하는 게 좋아서 약대에 들어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예전의 나와 비슷하게 휴가를 쓰고 놀러온 직장인, 이직하면서 중간에 기간을 두어 놀러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동안 만났던 인간관계보다 훨씬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세상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3대 회계법인에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다. 나와 나이가 비슷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살다가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에 들어와 E회계법인에 취직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그 사람의 고민을 듣게 되었는데, 고민의 내용은 여타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내용이었다. 자신의 업무 능력에 대한 회의감과 지독하게 많은 업무량으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더 높은 레벨의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는데 현재 다니고 있는 기업은 목표보다 낮은 곳이라는 실망감도 있었다. 그 친구와 같이 온 H그룹에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외교관이 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번번히 떨어졌고, 그러면서 자존감도 덩달아 떨어져 한때 열등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느끼기에 두 사람 모두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만큼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질 좋은 교육을 받은 상위 계층의 엘리트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는 거 같았다. 직장과 일에 대한 고충, 현재의 모습 혹은 자리에 만족하지 않지만, 변화를 선택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도전에 망설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엘리트 집단인 이들의 고민을 듣고 나는 누구든지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산다면 행복할 수 없고, 그럼에도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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