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고NAGO Apr 08. 2024

나를 찾아서-[2]

공무원을 퇴사한 이유-(2)

7급으로 승진한 후 1차 인사발령이 나기 전까지,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 소재의 타 기관과 학교 출석이 가능한 거리에 있는 기관에 7급 T.O가 있는지 알아보았고, 인사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서울 소재의 타 소속 기관장님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1차 인사발령이 나온 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차선의 선택지인 대전 발령을 위해 직속 과장님에게 내가 대전으로 발령 날 수 있도록 B기관장님께 말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고, B기관의 과장님과 인사담당팀장님에게 직접 전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겨우 대전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전에서 업무능력과 대인관계를 인정받으며 B기관장님과 C인사담당팀장님과 술자리를 자주 갖게 되었다.(두 분은 일 잘하는 사람과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선호했다.) 두 분은 술을 정말 좋아하셔서 주에 1번 이상은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사실 나를 애초부터 점찍어두었다고.


팀장님에 따르면, 내가 7급(행정직)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B기관의 회계담당이었던 7급(행정직)이 6급으로 승진을 하게 되어 타 기관으로 발령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팀장님은 회계담당에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오길 바라면서, 같은 시기 7급 행정직을 대상으로 업무 능력에 관해 수소문하던 중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듣고 본청의 인사담당과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즉, 내가 7급으로 승진한 후 1차 인사발령이 확정되기도 전에 B기관으로 발령이 사실상 합의(결정)된 것이다. 


나는 7급으로 승진이 확정된 후 A기관에 그대로 남는 것을 가장 바랐고, 차선은 C기관이었다. B기관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본청 인사담당자가 승진자들에게 보낸 '발령 희망 기관 조사 메일'의 답변으로 대학 통학을 사유로 1순위로 A기관에 남길 바라고, 2순위로 C기관 발령을 희망한다고 보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과 별개로 B기관으로의 발령이 결정된 것이었다. 본청의 인사담당자와 C팀장은 동기로,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즉, B기관으로의 발령에 나의 사정과 노력은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원치 않았던 대전으로의 인사발령을 받았을 때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분노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노력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허탈했고, 이미 결정되었음에도 당사자인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한 헛수고 같았다.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퇴사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다.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어 1년간의 자기개발휴직을 권한 분도 있었다. 자기개발휴직은 일종의 보험이다. 1년 동안 자기개발을 하며 휴직하는 제도를 자기개발휴직이라고 하는데, 휴식기를 가지며 여행 등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제도다. 이런 제도를 통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보험을 마련한 상태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것도 고민했지만, 그냥 퇴사했다.


보험을 들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인생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 목적인데 자기개발휴직이 끝나면 다시 복직해야 될테니 잠깐 쉬는 것일 뿐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퇴사가 주체성을 찾는 유일한 선택은 아니고, 퇴사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체성을 찾는 것이라고 할수 없지만, 보험이 있다면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간절함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체성을 못 찾아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꼭 찾아야만 한다는 동기가 희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2년 8월, 2014년 3월에 시작하고 8년 5개월 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게 된다. 그 후 나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게 되는데, 감히 말하건대 공무원 생활보다 2달간의 여행 동안 더 값진 경험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찾아서-[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