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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고NAGO Apr 23. 2024

나를 찾아서-[4]

2달간의 여행 - (2) 유럽에서의 한 달, 비행기를 놓치다.

제주도에서 지낸 한 달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첫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자 장기여행인 만큼 무척 떨렸다. 두렵기도 하면서 설레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채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놓쳤다.


나는 무척 계획적인 사람이다. 기차나 비행기를 놓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애초에 최소 30분, 처음 가는 공항이나 기차역일 경우 미리 경로를 파악하고, 차가 막힐 것을 대비해 1시간 이상 여유롭게 계획한다. 인천에서 출발해 베트남에 경유해서 영국으로 입국하는 일정 속에서 베트남에 체류하는 시간이 대략 10시간 정도라 그 시간 동안 베트남 어디를 가야 할지 미리 생각도 해두었다. 첫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이자 장기간의 유럽 여행인 만큼 떨리고, 두렵기도 한 마음에 중요한 부분은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출국하기 전날 짐과 필요한 물품들은 애초에 미리 챙겼고,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 잔 한 것이 화근이었다.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있어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 거기에 한 달이라는 장기간의 유럽 여행은 무척 도전적인 일이었다. 설레기도 했지만 여행을 계획하는 동안 '핸드폰이나 지갑을 소매치기를 당한 이야기, 여권을 잃어버린 이야기, 인종차별을 당한 이야기' 등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유럽에서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커져 있었다. 가족들과 술을 한 잔 하면서 8년의 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유럽 여행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고, 조절을 잘 못했던 것 같다. 평소 즐겨마시던 소주도 아니었고, 위스키를 먹었던 것도 큰 패착이었다. 그렇게 난 술에 취했고, 눈을 번쩍 떠보니 이미 출발 계획보다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헐래 벌떡 짐을 챙기고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 출발시간 30분 전에 베트남항공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했다. 당연히, 체크인이 불가능하다고 안내받았고, 일부 환불을 받고 나서 나는 다른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앞으로의 계획을 고려할 때, 예정보다 하루 일찍 런던에 도착하는 직항 비행기 편이 가장 좋은 대체제였다. 출발 시간이 1시간 뒤인 아시아나 항공의 비행기 편이었다. 티켓값이 무려 120만 원이었다. 멍청비용이라고 하던가. 불필요한 지출을 120만 원이나 쓴 채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하루 일찍 도착하는 만큼 숙소를 예약해야 했다. 탑승 시간이 1시간 뒤인터라 체크인 시간, 게이트 통과 등을 생각했을 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아고다를 이용해 급히 한 호스텔의 6인 도미토리를 예약했고, 카드로 바로 결제하려고 했지만 오류가 나서 숙소에 직접 결제하는 방식으로 자동으로 바뀐 채 예약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직접 결제해야 될 금액이 198 GBP(파운드)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원화로 33만 원이나 되는 돈인데, 모르는 사람 5명과 함께 자야 하는 도미토리 방에다가 호스텔인 만큼 1박에 33만 원은 말이 안 되는 가격이다. 이상하다 싶어 예약한 숙소에 가격을 확인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탑승 시간이 다 되어 메일 답장을 확인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탑승했고, 런던으로 향했다.


여행의 첫출발부터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120만 원과 추가된 숙박비는 차치하더라도,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나 자신한테 실망스러웠다.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도 썩 좋지 못했다. 숙취가 좀 남아있어서 식사도 거른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앞의 한 어린아이가 체감상 10분마다 한 번씩 창문을 열어 바깥을 구경하느라 햇빛이 눈에 비쳐 잠을 깨기 일쑤였다. 또, 비행기에서 보려고 다운 받아두었던 유튜브 영상도 이어폰을 깜빡하는 바람에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삐그덕 삐그덕, 겨우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메일함을 열어봤다. 숙소로부터 답장이 와 있었고, 198 파운드가 맞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재차 메일을 보냈다. 일반적으로 도미토리는 1박에 25~30 파운드(원화로 3~5만 원) 가량 하는데 정말로 198 파운드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 후 히드로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지하철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에도 작은 사건이 있었다. 어둑어둑한 오후 9시 즈음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걸어가는 나에게 어떤 키 큰 백인이 나를 향해 "워!!" 하는 소리와 함께 위협적인 동작을 취했다.(술에 취한 것 같았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지만 사실 무서웠다. 멘탈이 이미 나가 있는 상태에서 그런 일을 겪으니 더 멘탈이 흔들렸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체크인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갔는데 1명을 처리하는 데에만 10분 넘게 소요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느리고 답답했다. 겨우 내 차례가 되어서 여권을 보여주며 메일 내용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198 파운드, 원화로 33만 원가량의 돈을 지불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6인 도미토리 방의 1박을 예약한 것은 맞지만 6인 도미토리 방의 6개의 베드 전체가 예약된 것이었다. 즉, 6명 분의 1박이 예약된 것이다. 정말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이었다. 분명히 아고다에서 1인, 1 객실로 검색을 했고, 그 설정 그대로 검색된 6인 도미토리를 예약한 것인데 6명의 베드가 예약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호스텔 측에 얘기했지만 '우리 호스텔은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아고다에 확인해야 한다'는 답변뿐이었다. 아고다에 문의하려고 전화했지만 역시나 연결되지 않았고, 그렇게 20분을 넘게 하염없이 아고다 고객센터에 전화 연결이 되길 기다렸지만 결국 연결되지 못한 채 결제를 했다.


그렇게 6인 도미토리 방을 홀로 이용했다. 2층 침대 3개가 있는 방이었다. 울화통 터지는 마음에 모든 침대와 베개를 사용하면서 깽판을 칠지 고민했지만 결국 침대 1칸만 이용했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근처 마트에 들러 물과 간단한 빵을 사 와서 끼니를 때웠다. 샤워를 하고 좁은 침대에 누워 생각을 했다.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복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답은 하나였다.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해 안 좋은 기분을 털어 내고, 자기반성을 철저히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억울한 부분도 다소 있지만 비행기를 놓쳐 일어난, 내 잘못으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남은 비행기, 숙소 예약까지 다시 한번 철저히 확인했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한국에서부터 예약해 두었던 숙소로 이동했다.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해서 미리 짐을 맡겨두고 런던 여행을 시작했다.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시&칩스로 점심을 먹고, 미리 구해둔 동행을 런던브리지 근처에서 만나기로 해서 런던브리지로 걸어갔다. 그리고, 런던에서 가장 좋았던 여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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