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무급으로 일하기-(마무리 2/2)

by Cognitio

100일간의 무급으로 일한 경험을 통해 얻은 건 크게 5가지다. 인내심, 셀프 동기부여, 몰입, 새로운 시장, 스킬을 얻었다.


새로운 시장 기회

목공을 배우며 목공과 관련된 시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업 중 사용한 공구, 페인트, 오일 등 다양한 제품들을 통해 목공 시장을 알게 되었다. 특히 국내와 해외 제품 간의 차이가 눈에 띄었다. 페인트 같은 소모자재는 자이, 숲으로, 쌍곰 등 국내 브랜드가 많았다. 반면, 정밀함을 요구하는 공구는 독일, 일본, 미국 제품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보쉬, 페스툴, 미국의 디월트, 밀워키, 일본의 마끼다가 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한국산 전동기기는없을까?"


스크린샷 2025-01-20 오후 8.47.46.png @산업정보포털 "7대 전동공구 브랜드 선호도 순위"(2018.03.16)

자료를 찾아보니 '계양전기', '아임삭' 같은 국내 제조사가 있었다. 다만, 2018년 기사에서 확인한 전동공구 브랜드 선호도에 따라 유추하자면,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으로 보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계양전기의 업력은 50년에 가깝고, 제품력은 '가성비'로 대표된다. 품질지수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AS 서비스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보아 경쟁력 있는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왜 국내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할까?


아마도 목공에서는 0.1m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정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확실한 '월등한 기술력'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소비자들은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원한다. 그리고, 기술을 혁신하여 경쟁구도를 뒤집을 각오로 뛰어들기엔 시장 파이가 크지 않은 거 같다.


SKILL : 과정과 결과

목공을 하며 관련 스킬도 습득했다. 테이블쏘부터 수압대패 등 10여 대의 기계와 끌, 대패 같은 수공구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기술뿐 아니라 실전 노하우도 익혔다.


실전 노하우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험이다. 예를 들어, 번화가에서 볼 수 있는 '못 박기' 게임은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처럼 보인다.(게임 진행자가 분위기를 그렇게 유도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막상 도전해 보면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망치를 수직으로 내리쳐야 하고, 못머리 중앙을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 그리고 힘을 많이 주기보다 적당한 힘으로 정확하게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맞추는 거에만 집중하면 못이 박힐 정도의 힘이 모자라다. 즉, 적당한 힘으로 정확하게 내리쳐야 한다.


목공을 하는 동안 못 박기와 같이 단순하지만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일들을 접했다. 전동드릴로 피스를 박는 일, 샌딩기로 면을 다듬는 일, 목재의 평을 맞추는 일 모두 단순해 보이지만 반복 속에서 얻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결과가 아닌 과정을 더 주목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유튜브 강의 영상을 보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결과에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그 결과에 도달했는지, 과정에 더 궁금증이 생긴다.


셀프 동기부여 : 내적 동기

셀프 동기부여는 목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나는 셀프 동기부여를 다른 말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구체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내가 한 선택은 옳으며, 이 선택은 내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확신이다.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계기, 즉 동기는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로 구분된다. 외적 동기는 금전적 보상, 명예와 인정, 복지 및 혜택과 같은 물질적 혹은 사회적 보상을 말한다. 반면 내적 동기는 자기 효능감, 소속감, 성취감, 성장 욕구와 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이다.


외적 동기는 일시적이다. 보상을 받으면, 그다음에는 더 큰 보상을 원하게 되고, 보상이 없다면 행동할 이유가 사라진다. 반면, 내적 동기는 추상적이고 본질적이다. 그 일을 함으로써 얻는 내재적인 만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이며, 객체마다 그 정도가 다르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만족하는 반면, 누구는 부족함을 느낀다.


무급으로 목공을 하며 외적 동기 없이 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스스로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일 하지?"

먹고살기 위해서? 돈 때문인가? 얼마 전 연봉이 높았어도 다른 가치를 위해 퇴사한 적이 있었다.


"만약 돈이 많으면, 일 안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왜 일 하기 싫어?"

힘들어서, 인간관계와 과도한 업무 때문에 힘들었다.


"일 하면서 좋았던 순간은 없어?"

업무를 잘 해냈을 때 좋았다.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과업을 해내고 서로 격려할 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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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일 해?"


스스로에 질문을 거듭한 끝에 내린 답은 '만족감'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좋아한다. 동료들과 함께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에 담긴 보람이 좋다. 그리고, 내 목표에 다가갔다는 뿌듯함이 좋다.


그동안 삶의 목표는 뚜렷했던 반면 왜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번 목공 경험을 통해 나는 일하는 이유를 본질적으로 탐구했고, 그 답이 만족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만족감은 오직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때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일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때 비로소 만족감이 찾아왔다. 물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견디고 끝내 해냈을 때 찾아오는 성취의 순간은 달콤했다. 특히, 고통스러운 과정일수록 그 결실은 더 크고 값지게 느껴졌다.


과거 일 하기 싫었던 순간을 복기해 보면, 공통적으로 그 순간에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업무 시간에 퇴근 후의 삶을 생각하거나 숙취로 인해 일에 몰입하지 못했을 때 일이 고통스러웠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화의 목적이 소통이 아닌 내 의견 관철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때, 회식 중 팀워크보다 피곤함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때, 그 시간들은 불행했다.


나는 HR 전문성을 개발하고자 하는 커리어 목표가 있다. 목공과 HR은 무관하다. 객관적으로 목공 할 시간에 HR 자격증을 따거나 직무 경험을 쌓는 것이 커리어 개발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목공을 하는 동안 불안했다. 과연 이 선택이 내 미래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러한 불안의 원천도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비롯된 것 같다.


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명확히 한 후, 불안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내적 동기를 찾으니, 오히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커리어 개발과 삶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선을 다한 하루는 내게 만족감을 주고, 그 만족감은 다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하루가 쌓여 목표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세상사는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비극이라 판단할 때 비극이 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슬픈지, 행복한지, 견딜 수 없는지, 고무적인지는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무급 목공 경험이 내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 경험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 경험은 나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사유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찾게 해 주었다.


몰입의 즐거움

목공을 하면서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지?"하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퇴근시간이 지나간 줄도 몰랐을 때,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보람을 느꼈고, 즐거웠다.


2024년 1월, 일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로 결정한 후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캐널시티 하카타에서 우연히 본 지하아이돌 공연이다.

* 지하아이돌 : 일본의 독특한 아이돌 문화 중 하나로, 미디어 노출보다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주변을 구경하던 중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그 소리를 따라갔다. 캐널시티 하카타 1층 분수 옆 작은 무대에서 한 지하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3층 난간에 기대어 공연을 지켜봤는데, 팬덤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아이돌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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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아이돌과 팬덤 문화 모두 처음 접하는 거라서 신기했다. 특히 팬덤은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를 직접 목격한 것 같았다. 만약 나였다면 조금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시선은 공연 중인 아이돌보다 팬덤 속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그 사람의 행동은 마치 세상에 자기 자신과 아이돌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보던 장면처럼 주변은 깜깜해지고, 오직 나와 아이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순간에 완전히 빠져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열정의 근원이 궁금했다. 무엇이 당신을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몰입하게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도 그 사람처럼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공을 하며 팬덤의 그 사람이 다시 떠올랐고, 몰입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나는 어떤 순간에 몰입했을까? 몰입이란 무엇이고, 몰입한 후의 기분은 어땠을까? 다행히, 몇몇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대학교 과제를 할 때, 그리고, 최근 목공을 할 때 나는 몰입을 경험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깊이 빠져 있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몰입한 후에는 항상 좋은 감정이 남았다.


내가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었던 그 경험이 기분 좋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 순간들이 나의 본질적인 만족감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몰입했다는 것은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방증이고, 나의 행복은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목공을 하면서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성을 찾았고, 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얻었다. 그리고, 스스로 동기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크게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은 25년 1월 1일, 공백기가 끝나자마자 찾아왔다. 그날은 30년을 살아오며 가장 많은 무시를 받은 하루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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