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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BTS의 <봄날> 속,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꽃이 피고 지며, 따뜻한 바람이 부는 4월에는 온몸으로 봄이 다가옴을 느낀다. 겨우내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새싹이 기지개를 피며 싹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봄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오늘 이 글에서는 월드 클래스 아이돌 BTS의 노래 ‘봄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봄날’은 2017년 2월에 발매된 BTS의 정규 앨범 타이틀 곡으로 BTS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다. 많은 상징과 깊은 이야기가 있는 BTS 음악답게 ‘봄날’에도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칠법한 특별하고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할 것은 ‘봄날’의 뮤비에 등장하는 기차역 ‘오멜라스’의 이야기다.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

“요란한 종소리에 제비들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바닷가에 눈부시게 우뚝 선 도시 오멜라스의 여름 축제는 시작되었다.”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455p



오멜라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 여름 축제 분위기로 한창 달아오른 이 도시에는 전쟁도, 범죄도, 허기도, 불행도, 고통도 없고, 말 그대로 ‘행복’이 넘치는 곳이다. 이곳의 행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행복이 만연한 곳으로,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가 필시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도시의 어느 공공건물의 지하실에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행복하지 않은 한 아이가 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이 어두운 지하실은, 끔찍하게 지저분하고, 축축하며, 자신의 배설물들에 둘러싸여 공포와 허기에 몸서리치는 열 살쯤 되는 아이의 거처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만 아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464p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지하실에 있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배우게 된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처음에는 괴로워하고, 연민을 느끼고, 지하실의 아이를 밖으로 꺼내 따뜻한 빵과 깨끗한 물을 주며 진심으로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한다면 지금 이 도시의 행복이 무너질 것이 자명하기에 이내 번민을 멈추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아이의 배고픔은 도시의 풍성함으로, 아이의 공포는 도시의 환의로, 아이의 불행은 도시의 행복으로. 이것이 오멜라스의 행복에 엮인 ‘계약’이다.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일부가 야심한 새벽, 조용히 오멜라스를 떠나는 장면으로 이 짧은 소설은 마무리되고, ‘봄날’의 뮤비도 마찬가지로 BTS의 멤버들이 오멜라스를 떠나는 장면, 그리고 지민이 신발을 나무에 걸어놓는 장면으로 지하실의 아이를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나타내며 뮤비를 마무리한다.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 같은가?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상상 속의 이야기로 여겨지는가? BTS는 ‘봄날’의 가사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린 단편 소설로, 1974년에 SF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르 귄의 SF는 다른 SF 작품과는 달리 ‘Science’보다는 ‘Fiction’에 초점을 둔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같은 화려한 과학 기술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지만, 르 귄의 소설은 “만약 ~했으면 어떨까?”와 같이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 깊은 사고실험의 과정을 공유한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제대로 묘사할 수가 없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하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Editor.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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