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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로 May 20. 2024

타코야키

집 앞 트럭에서 팔던 눅눅한 타코야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집 안에 싸움이 났을때 내가 나서서 해결 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아버지의 성질만 건드려 더 일이 커지지는 않았나.


 그래도 폭력의 화살이 엄마에게 가는 것 보다 나한테 오는게 낫나. 나도 점점 몸이 커지면, 언젠가 아버지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날이 오려나.


 



 엄마가 퇴근했다. 평상시 같으면 그래도 하루 동안 뭘 하고 보냈는지, 밥은 잘 챙겨먹었는지 물어보셨을 터인데 나를 본체도 하지 않고 씻더니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누웠다.


 오늘은 하루가 힘들었나보다. 깡마른 체형의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듯 했다. 쉬는 날에는 잠만 잔다고 아버지가 구박 아닌 구박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엄마가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냥 그런 날인 줄 알았다.


 곤히 잠들어 있던 새벽,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뭔가 궁시렁궁시렁 하는 소리가 들려 슬며시 잠에서 깼다. 자주 그래 왔듯, 싸움은 처음부터 큰 소리가 나진 않는다.


 전화 통화를 하는건가, 아니면 그냥 이야기를 하는건가.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아버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나거나 한 것 같진 않아 방문을 열어보니, 아버지는 혼자서 마산 땅콩 캬라멜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깼다는 걸 눈치 챈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아들, 아빠가 참 죄가 많어잉"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매일같이 반복하던 도망간 여자에 대한 레퍼토리가 시작되는 걸까. 지겹다. 그러나 오늘은 온도가 다르다.


 "느그 엄마가 애를 배부럿서, 근디 그냥 나한테 야기도 안하고 지워버렸고마잉"


 분노인것 같기도, 슬픔인 것 같기도. 아버지가 들고있는 술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도 내 자식인디, 니 동생인디"


한잔을 쭉 들이킨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았다.


 "그거이 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데, 지 배불러서 낳아불면 사람 맘이 어떻게 될지 모릉께"


 엄마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냉정한 사람이었다.


 처음 나를 보고 했던 다짐, 불쌍한 이 아이를 거두겠다는 25살 앳된 여자의 마음.

그 마음은 아직 변한 게 없었다.

존중한다. 존중 해야 한다. 사회적 잣대, 도덕적인 관념들 말고 이 여자의 결정만 생각하자.


 



 다음날 엄마는 출근시간보다 훨씬 전 아무도 깨지 않게 집을 나섰다.


 그냥 차라리 나에게 이런 저런 일이 있다고 말해주면 속이 시원할텐데, 엄마는 아직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출근은 잘 했을랑가..


 평소같았으면 바로 전화해서 말도 안하고 어딜 나가냐고 박박 소리질렀을 아버지도 오늘은 들릴듯 안들릴듯 혼잣말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엄마의 귀가시간이 다가오자 약속한듯이 각자의 일을 하며 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퇴근한 엄마의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아들, 엄마가 타코야키 사왔다"


타코야키, 어려서부터 트럭에서 타코야키를 팔고 있으면 엄마를 졸라 여섯알씩 사먹곤 했었던 타코야키.


"집 앞에 트럭이 있더라구"


웃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며칠 전의 상냥함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박스를 열자 타코야키는 소스와 가다랑어포가 뒤섞여 곤죽이 되어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구나 이거.


  "엄마는 안먹어?"


 엄마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원래 엄마는 이런거 잘 안먹었다.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부대낀다나.


 긴 이쑤시개로 한 개를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 걸죽하고 찐득한 밀가루 반죽이 느껴지고 이내 문어인지 모를게 물컹, 하고 씹힌다.


 "아빠, 엄마가 타코야키 사왔어 나와서 좀 먹어"


 아빠가 못이기는척 이불을 걷어내는 소리가 사부작, 하고 들린다.

 

 그래도 제법 맛이 있다. 보기엔 안 좋고 미적지근하지만 맛이 꽤 그럴싸 하다.

 겉 보기엔 곧 무너질 것 같아 보여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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