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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푸 Apr 12. 2024

1강 상고천진론1

황제내경이 들려주는 건강의 비결

<황제내경> 강독을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꽁푸입니다. 꽁푸는 ‘공부(功夫)’의 중국어 발음입니다. 저는 이 ‘꽁푸’란 말을 좋아합니다. 중국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하는데 드는 정력과 시간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소양, 능력, 조예’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꽁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꾸준히 오랜 시간에 걸쳐 묵묵하게 해야만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태극권을 무척 좋아합니다. 태극권을 하면서 꽁푸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황제내경> 강독은 태극권 사부님의 권유로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아침 9시 인사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중국학 연구자입니다. 한의학에 대한 호기심은 많지만 잘 모릅니다. 한의학에 문외한이 한의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을 강독하겠다고 덤비는 게 어떻게 보면 황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일을 해 보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겨우 두 번 했는데 반응이 꽤 좋다는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칭찬에 고무되어 토요일 아침 강독을 계속 이어 가고, 브런치스토리에 저의 강의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이제 긴 여정의 <황제내경> 강독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제내경>은 크게 ‘소문’과 ‘영추’ 두 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각각 18권, 81편인데, 9의 배수로 권수와 편수를 한 것이 흥미롭네요. 이 책이 지어진 것은 대체로 전국 시대에서 한나라 때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니, 쓰여진 지가 매우 오래된 책입니다. 한 사람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황제내경>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상은 황로도가(黃老道家)입니다. 황로도가는 일종의 ‘제왕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분열되고 혼란했던 시기, 중국의 지식인들은 현실에서 당면하는 정치,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특히 군주는 조화와 질서 속에 진행되는 우주의 변함 없는 법칙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면 인간의 세계 또한 자연과 마찬가지로 조화와 질서의 상태에 놓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 황로도가의 핵심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면 이 혼란한 세상을 바른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은 전국 시대 중국 남부, 우리가 양자강이라고 부르는 장강(長江) 유역, 특히 지금의 호남성, 호북성, 사천성 지역인 초(楚)나라 땅에서 발원했습니다. <황제내경>을 비롯하여 <주역>, <산해경>, <초사>, <여씨춘추>, <회남자> 그리고 마왕퇴 백서와 같은 텍스트들은 이러한 황로도가를 사상적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황제(黄帝)를 통치자의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통치자로서 그의 모든 행위들이 우주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연세계의 불변하는 운행 법칙과 조화롭게 합치할 줄 아는 통치자만이 인간세계를 통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 주석본은 당나라 때 왕빙(王冰, 710-804)의 <중광보주황제내경소문(重廣補注黃帝內經素問)>인데 그 원본은 실전되었고, 지금은 송나라 때 임억(林億)과 고보형(高保衡)이 정리한 판본이 전해집니다. 우리는 조선 후기 의학자 석곡 이규준(1855-1923) 선생이 이 정리본을 근간으로 하여 원문에 토를 단 현토본을 기본 텍스트로 하겠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황제내경> 강독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제내경>의 전반부는 ‘소문(素問)’입니다. ‘바탕에 관해 묻다’는 뜻입니다. 석곡 이규준 선생의 현토본 <황제내경소문대요(黃帝內經素問大要)>는  권1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으로 시작됩니다.


‘상고(上古)’는 아주 오랜 옛날을 뜻합니다. 중국인들은 상고를 이상적인 시대로 인식합니다. 복희씨, 요 임금, 순 임금, 우 임금 그리고 황제 같은 성군들이 이상적인 정치를 펼쳤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옛 것, 옛 사람을 본받자는 ‘방고(仿古)’의 전통이 있습니다. ‘천진(天真)’은 자연 그대로의 참됨을 뜻합니다. 그래서 ‘상고천진’은 상고 때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참된 삶을 살았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황제내경>은 황로도가 사상을 의학적인 맥락에서 풀이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할 ‘상고천진론’에서 <황제내경>의 저자는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삶을 살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수명인 백 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원문을 살펴볼까요.


옛날에 황제1가 있었는데, 태어나서는 남달리 총명하여, 어려서 말을 잘하고, 어려서 사물에 대한 이해가 빨랐으며, 커서는 돈실하고 민첩했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昔在黃帝, 生而2神靈,3 弱4而能言, 幼5而徇齊,6 長而敦敏, 成而登天.7


1. 황제(黃帝)가 책의 첫 머리에 등장했습니다. 원래 ‘제(帝)’ 자는 신(神), 특히 큰 신에게 붙이는 글자입니다. 이 ‘제’ 자를 인간에게 처음으로 적용한 것이 진 시황제(秦始皇帝)입니다. ‘황(黃)’은 음양오행에서 중앙의 색입니다. 그래서 황제는 이 세계의 중앙을 다스리는 신입니다. 황로도가에서 황제는 우주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이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모델입니다.

2. ’이(而)’는 ‘말이을 이’로 읽습니다. 앞 말과 뒤 말을 잇는 역할을 합니다. 영어로 치면 'and then'과 같습니다. 

3. ’신령(神靈)'을 중국 사전에서는 '신기하다'로 풀이합니다. 황제가 태어났는데, 다른 아이와는 너무나 달랐다는 겁니다. 어떤 책에서는 단순히 '총명하다'로 풀이했습니다. 뭐가 옳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저의 태극권 사부님께서 명쾌한 해답을 내놓으셨습니다. "모짤트!"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랐던 천재.  

4. ’약(弱)’ 자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힘이 약한 때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아마도 생후 1년부터 6세까지의 어린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5. ’유(幼)’ 자는 나이가 어려서 몸집이 작은 것을 뜻합니다. 

6. ’순제(徇齊)’는 생각이나 사물에 대한 이해가 민첩하다는 뜻입니다.

7. ’등천(登天)’은 ‘하늘에 오르다’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황제(皇帝)의 자리에 오름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천사1에게 물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상고 때 사람들은 나이가 모두 백 세를 지났어도 동작이 쇠하지 않았다는데, 지금 시대의 사람은 나이가 50이 되어 동작이 모두 쇠한 것은 시대가 달라서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그것을 잃어서인가?

2問於天師曰: 余聞上古之人, 春秋3皆度百歲, 而動作不衰. 今時之人, 年半百而動作皆衰者, 時世異邪? 人將4失之邪?


1. ’천사’는 천연의 도에 합하는 스승을 뜻하는 말로, 황제가 스승인 기백(岐伯)에 대한 존칭으로 쓴 것입니다. 기백은 황제 때 명의였다고 합니다.

2. 원문 ‘내(迺)’ 자는 ‘내(乃)’ 자와 같습니다. ‘이에 내’라고 읽습니다. 제왕이 된 뒤에 천사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3. 원문 ‘춘추(春秋)’는 여기서 '나이'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중국에 <춘추>란 책이 있지요. 이때 춘추는 역사를 뜻합니다.

4. 원문 ‘장(將)’ 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아니면’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지(之)’ 자는 여기서 대명사로 쓰였습니다. 양생의 방법을 가리킵니다.


기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상고 시대 사람들은 도를 아는 자들로, 음양을 본받고, 술수로 조화를 이루며, 먹고 마시는데 절제가 있고, 일어나고 앉음에 규율이 있으며, 함부로 몸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체와 정신이 갖춰져서 그의 수명을 다할 수 있게 되니, 백 세가 지나서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 시대의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술을 미음처럼 마시고, 함부로 하는 것을 일상으로 여기며, 술에 취해 성행위를 하며, 정기(精氣)를 고갈시키려고 하고, 이로써 진기(真氣)를 소모하여 흩뜨리며, 정기를 채울 줄 모르고, 때에 맞춰 정신을 통어하지 못한다. 그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힘쓰고, 삶의 즐거움에 역행하며, 일어나고 앉음에 절도가 없으니 50에 쇠하게 되는 것이다.  

岐伯對曰: 上古之人, 其知道者,1 法於陰陽,2 和於術數,3 食飮有節, 起居4有常, 不妄作勞, 故能形與神俱,5 而盡終其天年, 度百歲乃去. 今時之人不然6也, 以酒爲漿, 以妄爲常, 醉以入房, 以欲竭其精,7 以耗散其眞. 不知持滿, 不時御神,8 務快其心, 逆於生樂, 起居無節, 故半百而衰也.


1. 원문 ‘기(其)’ 자는 대명사로 쓰입니다. 상고 시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도는 양생의 도, 즉 양생의 방법을 가리킵니다.

2. 원문 ‘법(法)’ 자는 동사 ‘본받다’는 뜻입니다. ‘어(於)’ 자는 어조사입니다. ‘~에’, ‘~에서’ 또는 ‘~를’ 등을 뜻합니다. 영어의 전치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전에는 어조사를 ‘실질적인 뜻이 없이 다른 글자를 보조하여 주는 한문의 토’라고 풀이합니다. ‘언(焉)’, ‘야(也)’, ‘의(矣)’ 따위가 있습니다. 어조사를 달리 ‘허사(虛詞)’라고 합니다. ‘빈 말’이란 뜻입니다. 실질적인 뜻이 없이 다른 글자를 보조해 주는 빈 말입니다. 한문을 해독할 때 이 ‘빈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면 한문의 뜻을 이해하는 게 쉬워집니다.

음양(陰陽)은 황제내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 세계를 음과 양 둘로 나누어 인식했습니다. 양에 속하는 것은 하늘-날짐승-산-둥근 것-홀수-낮-봄과 여름-남자-강한 것-불-삶 등이고, 음에 속하는 것은 땅-들짐승-강-네모난 것-짝수-밤-가을과 겨울-여자-부드러운 것-물-죽음 등입니다. 여기서 음양을 본받다는 것은 낮과 밤이 매일 되풀이되고, 봄에 생명이 태어나 싹을 틔우고-여름에 성장하여 무성해지며-가을에 거둬들이고-겨울에 죽어서  사계절의 순환이 삶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음양의 법칙을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3. ’술수’는 지금 말로 표현하면 ‘기술’, ‘테크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생의 기술, 즉 정좌(靜坐), 도인(導引), 태극권, 기공 같은 양생의 방법을 통해 조화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4. ’일어나고[起] 앉음[居]’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5.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은 형(形)과 신(神)의 통일체라고 인식했습니다. 형체는 땅의 음기에서 기원하고, 정신은 하늘의 양기에서 발원합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사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의 분리는 곧 죽음을 뜻하게 됩니다. 양생의 요체는 이 둘의 통일을 보증하는 데 있습니다.

6. ’연(然)’ 자는 ‘그러할 연’이라 읽습니다. ‘자연(自然)’은 저절로 그러하다고 하여 ‘자연’입니다.

7. 물질에서 가장 순수한 부분을 추출해 낸 것을 ‘정(精)’이라고 합니다. 음양의 원기(元氣)를 ‘정기(精氣)’라고 합니다.

8. ’때에 맞춰[時] 정신을 통어하는 것[御神]’은 정신을 통어하여 지나치게 사고하지 않게 함으로써 정기를 과도하게 소모하지 않게 함을 말합니다.

황로도가는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을 모토로 삼습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른 삶을 살면 인간은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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