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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09. 2024

프롤로그) 내 뒤엔 항상 네가 서 있었다

외로움 하나 툭 떨어지면

서로의 온기로 계절을 버티는 낙엽. 가엾은 낙엽을 밟는다. 안에서 나오려는 것이 무엇인지 더듬는다. 명확히 붙잡지 않을 뿐 멈추진 않는다. 빈 것, 텅 빈 것 채워지지 않던 날을 쓸까. 간절히 붙들고 싶었던 꿈, 가두고 싶었던 온기를 그릴까. 할머니의 쭈글한 목살, 구겨지고 두서없이 접힌 젊음, 쌓인 주름이라도 껴안아야 잠들던 까만 밤, 모두 다 가졌는데 나만 가질 수 없 들끓던 분노와 서글픔을 적을까.


애써 묻어뒀던 날 꺼내면 되돌아올 시간은 어떻게 견뎌낼까, 가장 연약했던 날 꺼내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자신조차 지키지 못했던, 약해빠졌던 날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빛, 반짝임, 바랜 날을 볕에 뉘어놓는다. 말간 햇살에 등을 기대 앉는다. 가득해도 비어있던 날 어떻게 풀어놓아야 하는 걸까.






외로움 하나 툭 떨어지면


서로의 온기로 계절을 버티는 낙엽

가엾은 잎을 밟는다

외로움 하나 툭 떨어져도 어찌할 줄 모르는데

나무는 어떻게 견뎌내나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을

발치에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을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나

떨어진 나뭇잎은

바람에 치이고 발에 밟히며

어떤 마음으로 계절을 건너가나

채울 수도 버릴 수도 없던 날

얇은 체온으로 부둥켜안으며

싱싱했던 날

다시 피어날 날 기다린다

푸르게 돋아날 새 날 기다리며

기꺼이 땅이 되고 거름이 되기로 한다






과거의 내가 글 속에 박혀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울고 있던, 철없던, 뜨겁던, 기뻤던, 화염에 휩싸인 수많은 내가 글 속에 박제되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나도 어느 글 속에 박혀있다. 다만 오늘의 나를 박음질해 갈 뿐이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시간에 들춰볼 얼굴을 떠올리며 하나씩 바느질해 나간다. 뜯긴 마음 깁고 구멍 난 마음 덧대 너덜너덜한 나는 숨이 된다. 하나, 둘, 셋, 넷... 열, 흩어진 내가 하나로 기워진다.


완벽한 완성은 없다. 다만 순간의 만족이 완벽에 가까울 뿐이고 순간의 충만함이 행복에 가까이 닿을 뿐이다. 금은 부족한 너와 내가 모여, 완성에 가까워지고 미완성이 모여 가고자 하는 길이 된다. 그 길에 닿으려는 여정은 삶이 되고 한 조각이 모여 로소 나의 퍼즐 완성된다.






'내가 무언가를 지켜내며 사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삶은 늘 무언가를 잊는 일들로 가득해서, 사실 무엇 하나 지켜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지켰다고 믿으며,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쩐지 글쓰기는 그런 지켜냄을 해내는 데 무척이나 탁월한 도구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며, 계속 쓸 것이다. 나는 모든 시절을 수집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 '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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