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네 번째 - ‘글’
핵가족이 만연한 시대에 합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했고, 복직과 동시에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사정 때문에 합가 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었다. 기억력 좋고 판단력이 탁월한 어머니에 비해, 나는 기억력이 나쁘고 판단력도 빠르지 않았다. 50년 넘게 집안살림 하고 돈 벌며 집안의 가장역할을 해오신 대장부 같은 어머니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기 빨려 아무것도 못하는 나는 참 많이도 달랐다. 그런 나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1년, 3년, 5년이 되었다. 합가 한 지 5년이 되니, 마치 팔팔 끓어 넘치는 육수에 담긴 후에야 혈색이 도는 새우처럼, 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내 '삶'이라는 혈색을 찾게 되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가장 큰 힘과 격려를 주신 시부모님, 그 이야기를 수필에 담아내어 수상했던 적도 있다. 내 삶과 다름없는 '글'에 아름다운 색깔을 담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시부모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여기에 말하고자 하는 '합가'는 그걸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합가'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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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과 주변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글로 적어내지 않았다면 내 삶의 혈색을 찾았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어차피 예정된 '죽음'이라는 엔딩을 향해 우리는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낸 이야기, 은혜받은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글로 담아내면 우리 삶의 혈색을 각자의 색깔로 잘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가치 있게 느끼는 분야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글을 사랑한다. 나만의 색깔로 조용히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이 내게는 '글'이기에.
처음에는 독서가 시작이었다.
세상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많이 속상해했던 시기를 '책'이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친구들은 대학 진학하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취업 먼저 했던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은 만큼 회사에서도 일의 성취가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은 일만 해서 되는 곳이 아니란 걸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회사 분위기도 짐작해야 하고, 눈치껏 센스 있게 행동해야 하는 부분도 반드시 필요했다. 솔직함이 무기가 아닌 세계에서 나는 수없이 깨졌다. 아무도 나한테 세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답도 모르고 홀로 견뎌야 하는 답답함, 지금도 그때를 떠오르면 많이 속상하다. 그때부터 읽었다. 자기 계발서부터 시작했다. 에세이 중에서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책도 읽었다. 딸에게 위로를 건네는, 세상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 작가의 마음을 읽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차갑게만 느껴지던 하루하루에 공지영 작가님이 다가와서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조금이나마 내 마음의 위로가 되는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점차 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글도 쓰게 되었다. '글'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합가 한 것이다. 합가가 이 의미로 사용되기에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있지만, 각자 다른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의미를 차용해서 쓰고 싶었다.
그렇게 글의 세계에 푹 빠진 나는 지금까지 8년 넘게 글과 함께 했다. 등단을 준비하거나 소설을 쓰거나, 그렇게 치열하게 무언가를 쓰면서 긴 세월을 보낸 건 아니지만 늘 마음에서 글을 놓지 않았다. 책을 보면 볼수록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되어 겸손해지기도 하고, 가끔 삐뚤어질 때도 있지만 바로잡게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가 책이 되기도 했다.
내 삶의 혈색을 되찾기 위해 독서는 사유를 주었고, 글쓰기는 성찰을 선사했다. 부모님은 사랑을 주셨고, 아이는 기쁨을 주었다. 사유, 성찰, 사랑, 기쁨 등 내 삶을 이루는 이런 요소들이 글이란 수단을 통해 인생이라는 육수에 퐁당 빠져 내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색깔로 만들어주었다.
그걸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 '글'은, 내게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아직 대단한 무언가 이루지 않았지만, 이제 막 인생이 팔팔 끓기 시작했으니까.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늘 베스트셀러를 꿈꾸며 소재를 찾고 마음으로 어떻게 써 내려갈지 늘 고민하는 이 마음이 자양분이 되어 내 삶의 색깔을 더 깊게 물들게 만들 테니까.
처음으로 글과 함께 치열하게 보냈던 2024년, 계속된 낙방에 더 이상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 순간조차 나는 놓지 않았다. 그 과정도 깊어지는 또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것처럼, 빛과 어둠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혈색이 돌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여러 요소일 것이다. 결국 노력한 끝에 작은 공모전이지만 마지막에 입상했고 '안되면 될 때까지 다시 해보자.'라는 마음을 다시 갖게 되었으니.
그러므로 지금도 쓴다. 이렇게 쓰다 보면 언젠가 죽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도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