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네 번째 - ‘글’
아침에 일어난 후 아이에게 밥상 차려주자마자 법정스님 유튜브를 틀었다. 오늘의 사연자는 40대 미혼여성인데, 좋은 대학 중퇴했고 공무원 시험 최종낙방 2번 했고 지금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서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괴롭다고 했다.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이 상황이 괴로워 위축된다고,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다. 법정스님은 대답했다.
"병원은 다녀요? 진료를 더 깊이 받아야 합니다. (중략) 우울증 이런 것도 심하기 전에는 법문 듣고 자가치료 가능한데, 도를 넘으면 치료받아야 합니다. 약간 과대증이 있어 보입니다. 열등감의 뿌리는 우울감이에요. 내가 남보다 잘나고 싶은 거죠.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데 다른 사람보다 잘나고 싶은데 이게 안되니까 열등감이 생기고... 정신에서 잘나고 싶은 생각이 자기를 사로잡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자기가 잘나 지지가 않아서 그래서 움츠러들고 열등감 갖는 거거든요. 이 우울감을 내려놓으면 자동으로 열등감이 없어져요.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잘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학이 일어나는 거예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성 2086. 인생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우울감에 사로잡혔던 작년의 내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어 몇 개월간 고심해서 브런치북을 만들었으나 보기 좋게 탈락했던 내 모습이. 어차피 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공모전이었고 다른 걸로 재도전하면 된다고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무기력한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브런치스토리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작가님들 글도 접하면서, 왜 나는 브런치스토리를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지 내겐 글에 있어서 운이 없는 건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브런치북에는 호기롭게 'BEST'가 아닌 'ONLY 1'을 외쳤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나는 내심 BEST를 원하고 있었다. 법륜스님 말을 듣고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남보다 잘나고 싶은 욕구, 이것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별 볼 일 없는 학벌과 학력을 지녔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가정형편 상 빨리 취업해야 했기 때문에 실업계고로 진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고, 1년 6개월 만에 퇴사하고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직장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4년제를 다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4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대를 졸업하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별 볼 일 없는 학벌과 학력을 지닌 내가 무엇으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고심했다. 누구나 원하는 기업, 크고 우량한 기업에 들어가면 바뀔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 집착한 것이. 이직할 때도 누구나 들으면 한 번에 알 수 있는 회사로 했다. 지금에야 회사 이름보다는 작은 회사라도 경력과 여러 사항을 따지면서 입사를 고려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대기업 소속감이 누구보다 잘난 사람처럼 비칠 것이라는 허영심이 내 마음을 한없이 자극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이력서에 채우는 경력사항은 꽤 괜찮아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떠한가. 전업주부가 되어있다. 경력단절 3년이란 시간을 과거의 경력으로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만 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잘나고 싶은 욕구가 지금도 있다. 경력이 단절되었으니 무엇으로 내가 잘나게 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니까. 매 순간순간마다 어떤 것들이 글감이 되는지 하이에나처럼 찾고 또 찾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글'에 모든 걸 걸고 천천히 나아가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내심 빨리 'BEST'가 되어 내 공백기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이 마음을 법륜스님 말씀 듣고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마지막 작은 공모전에 입상하기 전까지는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졌다. 글 쓰는 것도 버거워졌다. 많은 기대를 내 어깨에 짊어지고 겉으로는 ‘천천히’를 말하면서 내면에서는 스스로를 ‘빨리’ 가라고 채찍질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한 번 소재를 찾으면 끝까지 해나가는 근성 자체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나는 늘 부러워했다. 브런치스토리를 하면서 좋은 변화를 겪었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부러워했고, 공모전에 당선되고 베스트셀러까지 된 작가님들을 질투했다. 왜 내겐 그런 운이 주어지지 않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들도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과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을. 나는 고민만 할 뿐 제대로 된 실천을 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솔직하게 글에 기록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소재를 찾았고 그걸로 몇 개 써 내려갔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글들을 몇 개라도 풀어놓으니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다. 소재를 찾고 어떻게 구성해 나갈지 기획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근성이 내게 없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누군가가 옆에서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글로 성공하고 베스트셀러까지 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나처럼 소재를 찾았지만 끝까지 어떻게 기획해서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한 끝에 중단한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 근성을 인정하고 누구나 나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 ‘그래, 실패작 이것 자체도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매끄럽고 완벽한 글보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글도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신선한 접근으로 이렇게 다시 한번 글을 쓴다.
부족한 글에는 욕해도 좋고, 괜찮은 글에는 격려해도 좋다. 이건 모두 독자의 자유이며 부끄러운 글이라고 이미 고백했으므로, 비판 어린 댓글은 참고하고 격려하는 댓글에는 감사를 보낼 생각이다.
사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은 욕구, 그 이면을 생각해 보면 인세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경제적인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까. 지금 내 상황은 외벌이에 아이 한 명, 남편과 나이차이가 있어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지 불투명하고 외벌이를 지속해도 될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가장 빨리 가정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은 '글'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무거웠고 힘들었고 지쳤고 우울했다. 다른 작가님들 필력을 보면 내 고개가 자동으로 떨구어졌다. 알면서도 한껏 내 어깨를 누르고 꾸역꾸역 글 쓰니 힘들었던 거다. 힘든 마음이 가득하니 제대로 된 글을 쓸 수나 있었을까. 탈락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모든 걸 인정하고 남들보다 잘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지금은 행복해졌다. 이렇게 행복한 글쓰기가 얼마만인지. 이런 내면을 보아줄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내 인생에도 볕 들 날이 오지 않을까.
위 기록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엄마가 남겼던 기록이다. 내가 베스트를 원했던 이유는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미 나는 엄마에게 베스트였다는 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타인에게 Best 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이미 Best였던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차분히 알려주는 징표.
그래,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으니 다시 한번 천천히 가보자 다짐한다. 이미 우린 우리 가족에게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견줄 수 없는 귀한 존재니까.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가난하고 지난했던 지난날을 악착같이 잘 살아왔던 당신들이 있었기에 나는 꿈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