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첫 번째 - ‘전업주부’
1) 전업주부라는 키워드로
전업주부라는 키워드로 쓸 수 있는 글들은 많을 것이다.
재테크, 육아, 아이교육, 살림, 경단녀(=경력단절여성, 경력유보여성) 등
나에게는 어려운 주제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이미 위 주제로 출간한 작가들도 많고, 난 그분들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되물었을 때 자신이 없었다.
최근에 읽었던 도서 '내가 엄마들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도 정확하게 포인트를 짚어내어 많은 엄마들의 공감을 샀다. '초등맘이 꼭 알아야 할 국어영어 독서법'도 오랜 기간 경험하고 체득한 내용을 잘 기록하여 펴낸 어떤 전문가의 책이다. 읽어보니 도움 되었고 메시지도 명확했다. 앞서 소개한 도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더불어 타인에게도 도움 되는 것, 그러한 지점을 잘 포착해서 써 내려가야 대중의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머리로는 이해하고 고민해도 도무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 교육에 열정적이라서 아는 게 많고 성취한 기록들이 많다던가, 살림을 잘해서 그 노하우를 풀든가.
현재 나는 전업주부니까 그 틀 안에서 '키워드'를 찾아 신선함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심했다.
우선, 교육. 관심은 있지만 선행은 원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이를 태권도와 영어, 미술학원 보내고 집에서는 수학, 독서, 논술도 조금씩 하지만, 딱 그것만 한다.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부부라면 이것도 많다고 하겠지만 요즘 사교육은 넘사벽이다. 학원 3개는 결코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시키는 공부도 다 합쳐봐야 1시간도 되지 않는다. 현행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차원에서 공부는 아이의 속도대로 맞춰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학군지 이사도 잠시 고려해 봤으나 '선행'을 하면서 힘들어할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건 아니다 싶었다. 책상 앞 공부만 하느라 정작 세상에 대한 공부를 놓칠까 두렵기도 했다. 어른도 일이 너무 많으면 지치고 화가 나는데, 아직 한참 놀 나이에 벌써부터 이것저것 시키면 나중에 쉽게 지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에세이는 쓸 말이 없다. 교육에 대해 책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명확하게 아이 교육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들일 테니까. 우리 아이들 천천히 키워봐요,라는 메시지는 내가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좋은 성취를 이룰 때에만 설득이 가능한 이야기일 테니 지금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도 없을 테고.
그리고 공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공부에서의 끈기와 성실성은, 사회인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끈기와 성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끈기와 성실성을 배운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잘 지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학생으로서는 본분에 맞게 '공부'를 잘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건 어른이 아이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어른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부에서의 끈기와 성실성은, 사회인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한 끈기와 성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모순을 이미 체득한 어른들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잘 포장해서 말할 수 있을까.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성실성과 끈기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서, 남들보다 더 빨리 나아가길 원하는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은 여유가 부족하다. 여유가 부족한 자리에 어떤 성실과 끈기를 배울 수 있을까. 공부에 대한 성실과 끈기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사회인으로서 잘 성장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아이 잘 키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언급되는 말은, 인서울 학교 입학, 대기업 입사, 전문직 시험 합격이었다. 그걸 성취함으로써 아이가 좋은 건지 부모가 좋은 건지, 아이가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꿈을 가지고 준비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나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과거를 떠올려봤다. 입사하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는 걸, 오히려 그때부터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을 많은 아이들은 겪게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직업을 가져도 그 무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잡음이 나오는 걸 보면 그런 배경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이 키워드로 에세이를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 살림에 대해 쓰면 어떨까.
나는 호불호가 강한 편인데, 불행하게도 살림은 내 '불호'에 속한다. 관심도 없다. 노력은 조금 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이다. 그나마 설거지하면서 떠오른 단상들을 썼는데 너무 짧고 여운도 없다. 말할 소재가 없는 건지, 내 안의 문학의 세계가 아직도 그리 좁은 건지. 차라리 살림보다 직장에 다니는 게 더 낫다는 마음이 들 정도니까.
아니면 경력유보여성으로서 재취업도전기를 쓰면 어떨까.
도전기만 쓰다가 취업이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 번 쓰다 말았다. 우선 전업주부라는 키워드로 썼던 글들을 다음 장에서 소개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