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두 번째 - ‘자산, 부채, 자본’
부르르 부르르-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요즘 너무 힘들어요.]
지인의 하소연이었다.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지인이 직접 문자로 힘들다고 하소연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쭙잖은 내 위로가 그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힘이 되어주고 싶어 답장을 보냈다.
[ 행복과 불행은 저울에 올려두면 그 무게가 같다고 해요. 힘든 만큼 좋은 일이 한꺼번에 오려니 생각하고 기운 내봐요. 저도 힘들 땐 이런 위로 버겁고 듣기 싫은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진짜 맞는 말 같더라고요. 사람관계도 인생도 영원한 건 없듯이, 감정도 변해요.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감정도 사그라들거니 스스로를 토닥토닥해 주세요. 파이팅! ]
다시 진동이 울렸다. 고맙다는 답장이 온 것이다. 10여 년 전 내 모습과 닮아 있는 이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위로받고 싶은데 위로받지 못하는 그 외로움을 나는 너무 잘 안다. 20대 중반에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이야기를 하면 다 겪는 일이다, 너만 겪는 것 아니다, 어른이니 감정처리 알아서 해라, 등의 날 선 반응들을 겪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 세월이 있어서 감정표현이나 상황설명이 어수룩했던 내 탓도 있었다. 그래서 차분히 내 마음을 잘 짚어가며 상담받을 곳이 있나 퇴근하고 찾아보니 오래된 건물 5층에 위치한 심리상담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긴장한 채 그러나 현실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들어갔다.
비용을 확인해 보니 1시간 상담에 5만 원이나 되었지만, 마음이 급하니 결제하고 설문조사 여러 장 쭈욱 마음 가는 대로 답했다. 그런 후에야 상담사와 마주할 수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길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고 끝났다.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와서 하자는 것이었다. 1시간 만에 내 마음이 해소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잘 들어줄 곳이 필요하여 갔는데, 제대로 된 위로조차 못 받고 돈만 비싸게 지불하고 다음에 다시 와서 위로받으라 한다니. 급한 마음에 아무 곳이나 들어선 내 잘못도 있었지만, 자격증만 있으면 전문가인 것처럼 속이는 자본주의 세상 속 비양심적인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절망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 선생님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공짜로 먹는 물도 언젠가 돈을 주고 먹어야 하는 미래가 다가올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지 않았는데. 그런 세상이 너무나도 빨리 다가왔고 위로조차 자격이 증명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회차별로 끊어서 받아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가 겪었던 (좋지 않았던) 경험과 달리, 심리상담센터를 통해 치유받는 사람들도 분명 많다. 많은 사람들을 접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해주는 위로이기에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신과에 대해서도 긍정적 인식으로 변화되어 마음 치유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내가 아쉽게 느끼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위로는 꼭 전문가가 해줘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돈 내고 받아왔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고 느낀 것은 '아, 이 사람이 나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서 이야기해주고 있구나. 진심이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였다. 현란한 언어구사능력이 아닌, 서툴더라도 진심을 다해 내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위로인 것이다.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도록 동력이 되어준 과거를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본 구름은 유독 크고 하얗고 두툼해 보였다.
구름은 작은 얼음 알갱이나 물방울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야 만들어진다고 한다. 강과 호수, 바다에서 올라오는 얼음 알갱이나 물방울은 아주 가볍기 때문에 공중에도 뜰 수 있고 그런 존재가 수십억 개가 보여야 구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구름처럼 우리들도 서로를 향해 아주 조금의 위로라도 진심으로 전한다면 그것이 뭉치고 뭉쳐 고운 빛깔을 내는 구름과 같은 포근함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강력한 것이니까. 그러한 포근함을 받는 사람은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로를 건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거칠고 차가운 사회를 살아가다 지쳐서 본인조차 지켜내기 바쁘기에 그런 것이라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진심을 전한다면, 미래에는 내가 그 진심을 받으며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아픔 덕분인지 살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웃어넘기지만 안간힘을 다해 버티려는 많은 사람들의 이면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내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개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알지도, 위로를 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발치에 머무른 사소한 행복을 눈여겨보지도, 감사하게 여기 지도 못했을 것이다.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너만 그런 것 아니야. 다 힘들지.’라는 말보다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힘들겠지만 함께 힘내보자.’라는 말을 해준다면 참 좋겠다.
현금(자산)으로 대출금(부채) 상환하듯, 위로의 말(자산)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내리사랑(부채)을 타인에게 갚는다면 다시 나에게 더 큰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사실 지인에게 해준 위로에 더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행복과 불행은 저울에 올려두면 그 무게가 같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불행 뒤에는 늘 내 발치에 머무른 사소한 행복들에 감사하게 되니 오히려 행복하게 여길 것들이 더 많아진다고. 회사의 재무상태표처럼 간단하게 표현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행복을 200이라고 두었을 때 오른쪽 부채와 자본은 200이라는 수치를 쪼개서 넣어야 대차평균의 원리가 어긋나지 않는다.(자산 = 부채 + 자본)
이렇게 보니 자신의 삶(자본)을 포기하지 않고 고통, 불행(부채)을 극복해 나가는 삶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단단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 더 많은 행복(자산)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시련을 겪는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대추 한 알]이라는 장석주 시인님의 시에서 보듯 대추 한 알이 알맞게 영글기 위해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다. 더욱 깊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불행을 겪는 것이고, 고통을 극복해 나간 노력들은 분명 깊고 아름답게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담보할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작은 거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순간에는 거인처럼 커 보여서 고통이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형태조차 기억나지 않을 작디작은 인생의 과정일 뿐이니까. 힘든 길 위에서 잘 극복한다면 마음이 단단해져 오히려 많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내 인생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지인 또한 지금의 나처럼 힘들었던 현재의 고통을 미래에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로 전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햇빛의 영향을 받아 하얗게 윤이 나는 풍성한 구름이 보기 좋다. 작은 거인들을 무찌르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우리의 미래를, 시중에 화폐가 많아지면 물가가 상승하듯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성숙한 내면의 눈높이가 향상된 미래를, 계속 상상해 본다.
에세이를 쓰고자 했으나 자기 계발서처럼 쓰인 글. 잘 쓰고 싶어서 노력했던 글인데 지금 보니 에세이가 아닌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술에 배부르고 싶어서 쓴 글이라 그런가.
그래도 애쓴 글이니까 이곳에 옮겨본다. 이 글을 쓸 때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며 썼다.
몇 년 동안 연락 안 하던 지인도 힘들 때는 내게 전화했으니까. 친한 지인은 '감정 쓰레기통'이냐며 화를 냈고, 처음에는 나도 다르지 않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힘들 때 생각났다며 전화하는 지인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힘들 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존재로 나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것이 내 강점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무엇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 것이.
'진심'과 '경청'은 기본, '추임새'는 적절하게, '조언'은 신중하게.
앞서 살펴본 자료처럼, 조건 없는 사랑의 이자는 법정 최고율을 훨씬 넘는 것이니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풀장착해야 한다.
가만 보자. 내가 힘든 일을 겪고 나서의 어떤 변화를 겪었지? 노트에 적어봐야겠다 싶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알아야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행복과 불행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행복과 불행이 같다는 말에 예전에는 어느 정도 위로를 얻기도 했는데, 너무 심하게 고통을 겪은 후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 이거야. 그 당시 나는 행복이 불행보다 더 커야지 왜 불행과 같아야 하지?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으니까 이걸 주제로 에세이를 써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행복이 더 커야 한다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 써 내려간 것이 이 글이다. 또한 자산, 부채는 거래의 이중성과 대차평균의 원리에 따라 함께 발생하기도 해서, 제목 자체에도 모순형용법을 구사하였고 행복과 불행을 자산과 부채로 표현했다. 며칠을 고민해서 썼지만 역시나 큰 인기는 끌지 못했던 글.
나의 글을 천천히 살펴보니 앞서 소개했던 자료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시간을 자산이라고 했지만, 나는 자본이라고 언급했던 것. 삶 자체가 시간이다. 삶이라는 자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산과 부채를 언제든 균형 있게 이루어내며 나아간다는 내 주장은 기존 자료와 차별점을 갖는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썼던 첫 글을 바라보니 엄마품에 안긴 아기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독자 반응 없어 우울했지만 다시 보니 애틋하다. 고민하고 썼던 과정 자체는 내 작가 인생에서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글, 나만의 자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