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는 개미

키워드 두 번째 - ‘자산, 부채, 자본

by 지혜

직장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는 '노비' 혹은 '개미'라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른다고. 전업주부인 지금은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쟁이 직장생활이 부럽다. 재취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전업주부는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개미도 참 부럽다.

개미... 개미... 우리는 개미. 그래 이걸 소재로 써보자 싶었다.


노트북을 꺼내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제목은 '큰 난쟁이'.






[두 번째 에세이 제목 : 큰 난쟁이]


자신의 몸집보다 큰 것을 들고 이동하는 개미를 보며 나는 늘 생각했다.

'얘는 큰 난쟁이 같아. 난쟁이지만 큰걸 들고 가니까, 사실은 큰 존재가 아닐까.'

아이도 개미를 볼 때마다 흥분한다.

"개미는 자기보다 더 큰 물건을 들고 가니까 대단하고 신기해. 난쟁이인데 거인 같아 보이기도 해."

이쯤 되면 나도 무척 궁금해진다. 개미는 어떤 힘이 있길래 자신보다 큰 물건을 잘 들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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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무게보다 몇십 배 무거워 보이는 먹이를 턱에 물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심지어 벽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개미. 무려 30~40배나 무거운 것들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몸무게와 근육의 힘이 증가하는 비율이 다르고, 6개의 다리 마디마디마다 힘을 분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몸길이가 2배가 되면 부피와 몸무게는 8배, 근육의 힘은 4배나 증가한다. 자기 몸무게의 0.9배까지의 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자신의 몸무게보다 40배까지의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는 개미의 힘은 더욱 대단해 보인다.


고백하자면, 나도 사실 개미다. 내 몸무게보다 30~40배나 되는 무거운 걸 들 수는 없지만, 몸무게와 근육의 힘이 증가하는 비율이 많이 다르진 않지만, 현실에서 나는 개미와 같다. 지금 내 핸드폰 주식창에 떠있는 파란불이 내 정체성을 일깨워주니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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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을 바란 적은 없지만 원금손실은 좀 아니지 않은가. 파란불을 볼 때마다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감정기복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팔지 않으면 손해가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 회복이 될지 모르는 주가. 거기에 전전긍긍하는 나는 '개미'와 다를 바 없다. 국내주식에도 조금 투자하고 있으니 동학개미이기도 하고, 해외주식도 서너 개 갖고 있으니 서학개미이기도 하다. 일단 개미는 맞다.


퇴사 후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돈'과 '부자'라는 단어에 한동안 몰입하며 살았다. 남편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제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초등 저학년인 아이를 두고 취업할 수 없는 초조함이 계속 '돈'으로 이끌었다. 유명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모두 읽기도 했고, 무얼 해야 미래가 안정이 될지 늘 '자본'에 치우쳐 고민도 했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와도 얼른 전화 끊고 자기 계발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빨리 무언가 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한동안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가정경제만 생각하며 달려온 노력을 비웃듯 주식창은 파란불로 장식했다. 주식 회복은 아직 어려운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기분전환 삼아 사진첩을 열어봤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저장해 두었던 엄마의 기록을 보게 되었다.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어 어두컴컴한 방 안을 가로지르듯,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엄마의 기록이 내 착잡한 마음 틈새로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눈물이 핑 돌았다.


첫아들 돌 때 가진 애기들이 쌍둥이인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
병원에도 몇 번 가려고 했지만 첫째 때와 달리 겁이 나면서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안 가고 기다리는 동안 입덧을 가끔 하기도 하고 모든 게 힘도 들고 해서 잘 견디는 동안 개월 수는 점점 차고 고통도 심하고, 그러다가 이사하는 날이 다가왔다.

무사히 이사를 하고 추석도 잘 지내고 추운 겨울이 되면서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예정일 두 달 앞두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초음파와 엑스레이가 쌍둥이라고 했다. 그이한테 이야기하니까 믿지를 않으려고 했다. 하기야 나도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살아가야 할 길이 막막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이는 병원비 때문에 아침에 식사하고 나가면 오밤중에 들어오고,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픈데 그이는 나가면 무소식이었다. 어떨 때는 야속하기도 하고 울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정은 지내지 말자고 동서들한테 말을 했는데, 시누는 반대했다. 내가 구정을 안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애들이 구정날 태어날까 봐 차례를 못 지내겠다고 한 것인데 이해해주지 않았다.

구정날 아침이 되었다. 차례를 준비하면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진통이 시작되어서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 나중에는 바깥에서 쉬면 괜찮아질 줄 알고 기다리는데 배는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쌍둥이를 낳았다.


위 기록처럼 어려웠던 가정형편, 부족했던 주변의 배려, 의지할 사람 없어 외로웠지만 아이를 위해 버티었던 당신의 마음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을, 난 또 망각했다. 몇 년 전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우울해하고 있을 때 당신의 기록을 꺼내어 보여 주셨던 그 마음을, 힘든 상황에서 아무도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을 때 봐달라고 했던 당신의 마음을 왜 잊고 살았을까. 그때 당신이 말씀하셨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널 이렇게 지켜주었던 사람 여기 있노라고.


이처럼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태어난다.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라든, 누구나 부모님 품 안에서 성장한다. 그만큼 우리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소중하게 품어주었던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삶이라는 자본을 내어주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당신의 내리사랑 덕분에, 우리는 용기와 희망이라는 자산을 갖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온통 파란불 투성이인 주식창을 다시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기업도 우리 인간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들었다. 영리(營利)를 위해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체지만, 꼭 그것만으로 그 회사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CEO의 말 한마디, 해당 기업체의 이슈, 사회에 대한 헌신과 신뢰도 등 무형의 가치에 따라 사람들은 그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주가 등락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개미'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성실성의 표본이었던 '개미'가 물가 상승으로 인해 평가절하된 요즘이지만, 그래도 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월급의 액수만으로 함부로 우리를 평가할 수 없다고. 개미의 몸길이가 2배가 되면 근육이 4배 증가하듯, 우리 또한 삶에 대한 성실성만큼 마음 근육이 4배나 자랄 것이라고. 자본주의에서 필요한 현금을 우리는 매월 받는 것일 뿐, 액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재된 가치는 우리가 노력한 만큼 크게 성장할 것이다. 지금 노력했던 일들의 결과가 미미하더라도 언젠가 우리 스스로를 분명 충분히 빛나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개미 또한 단순히 근육과 다리의 힘만으로 무거운 걸 들고 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이 세도 조직에 질서가 있고 서로를 향한 믿음과 끈끈함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걸 테니까.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질서로 저렇게 매일 부지런히 움직이는지 모를 생명체지만, 우리의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개미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 삶 위에도 사랑, 믿음, 경험 등이 다양하게 녹아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작디작은 우리의 존재는, 우주에서 볼 때는 유가치하고 무한한 무형가치를 품고 있는 큰 존재일 수 있다. 어찌 저리 작은데 많은 고통과 불행을 극복하고 나아갈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인지, 다채롭고 용감한 한 인간의 삶을 다른 행성의 누군가가 감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큰 난쟁이'와 같다. 작아 보이지만 각자 지닌 삶에 대한 용기, 사랑은 너무나도 크니까.

오늘도 부지런히 길을 나서는 개미를 본다. 삶을 향한 여정을 부지런히 나서는 그 길 위에 개미도 우리도, 사랑과 믿음이라는 유가치한 무형자산을 한가득 지고 나아간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자산과 부채를 삶에 엮어 글을 완성했다. 제목은 모순형용법으로, 내용은 아주 따뜻하고 다정하게 적어 내려갔다. 첫 화와 일관성 있게 이어가고자 했으나 특별히 다른 점 없이 비슷한 내용이다. 키워드만 달랐다.

첫 번 째는 행복과 불행, 두 번 째는 내리사랑과 용기. 사실 지금 다시 보니 뻔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브런치스토리에 글 게시 후 딱 2개의 하트만 받았다. 역시 '돈'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중얼거리며 브런치스토리 출간 프로젝트 탈락 후 미련 없이 내려버린 글.


반응 생각 말고 내 속도대로 가보자 해놓고 매번 반응을 살피는 나, 그러면서도 이렇게 애증의 글쓰기를 이어온 나.


누군가가 말했던 투자의 제1원칙, 시간이 흘러도 공간이 변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은 것들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었다. 글에 스며든 그때의 내 생각과 마음이 내게 변함없이 전해져 옴을 느낀다. 투자금을 잃지 않을 현명한 곳에만 선별적으로 투자하라고 했는데, 내 글에 녹여낸 가치가 지금도 빛바래지지 않는 걸 보니 나는 적어도 내게 잘 투자하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만족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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