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둠과 빛

키워드 두 번째 - ‘자산, 부채, 자본’

by 지혜


[4번째 에세이 제목 : 어두운 빛]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그대의 장점, 당신의 빛, 등 뒤에 붙어있는 좋은 점들이.

그런데 네 눈에는 그게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그대의 단점, 당신의 어둠, 안 좋은 점들만 아른거리나 보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너의 좋은 점에 대해.

하지만 너는 부정했다. 너의 좋은 점에 대해.


네 등에 붙어있는 예쁜 점들이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데, 넌 그 장점들을 등 뒤에 얹어가느라 못 보는 것 같다. 네 눈은 어디에 달렸나, 보려는 사이에 종적을 감춘 너. 열심히 기어가던 너는 사라졌다. 평생 네 장점을 모른 채 살아갈까 봐 난 그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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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노란색 무당벌레네!"

아직 6월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푹푹 찌는 더위였는데도 기어코 그늘에서라도 신나게 놀고 싶다던 아이들이 무당벌레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무당벌레를 나뭇가지로 콕콕 찔렀다. 무당벌레도 생명이니 괴롭히면 안 된다고 제지하고는 아이들이 안 볼 때 나도 신기해서 몰래 등을 건드려봤다. 빨간색은 많이 봤지만 노란색 점이 박힌 무당벌레는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니 발도 보였다. 영차영차 열심히 기어가는 거북이처럼, 노란색 점박이들을 등에 얹고 나아가는 무당벌레의 모습이 앙증맞았다. 무당벌레는 자기 등의 점들이 무슨 색으로 몇 개가 놓여있는지 알기나 할까. 보이는 점들 말고도 무당벌레 마음속에는 우리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많은 점들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좋은 점, 나쁜 점, 싫은 점, 아름다운 점 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점들 또한 내면 깊숙이 놓여있을 것이다.


그런데 등에 얹혀있든 마음속에 품고 있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곤충이나 스스로를 모르는 건 매한가지다.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생명이 몇이나 있을까.


예전에는 타인을 만날 때마다 제일 먼저 장점이 보였다. 진심을 다해 그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면, "얘 뭐야? 놀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싫어했던 지인들도 있었다. 가식적으로 지어낸 말이 아닌데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장점'으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계하고 무시했다. 그 이후로는 함부로 칭찬을 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역효과였고, 사실 나도 스스로의 장점을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잘 아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등에 노란 점을 얹고 가는 무당벌레처럼, 무엇이든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우리들 모두 자신의 장점을 등에 얹은 채 모르며 살아가는 듯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정받고 지냈던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다행히도 나는 육아하면서 내 장점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아이는 내게 '친절한 엄마'라는 말을 망설임 없이 많이 건넸다. 아, 나는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보다,라는 걸 느꼈다. 그런 아이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엄마인 나도 부정보다는 긍정의 언어를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하지만 공기 중으로 넓게 흐트러져있던 내 일상 언어들을 곱씹어보았을 때, 긍정보다 부정에 가까운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퍼져있다는 걸 느꼈다.


좋은 말을 많이 하기 위해 일단 '나'를 더욱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금통을 구매했다. 갑자기 저금통 이야기에 의아해진 여러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 저금통은 특별하다. 돈을 저금하는 공간이 아니다. 돈이라는 '자본'은 이미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저금하고 재테크를 하고 있지 않는가. 이 저금통은 '자산'과 '부채' 저금통이다. 일상을 보내면서 얻었던 것을 종이에 단어 혹은 간단한 문장으로 적어 '자산' 저금통에, 잃어버렸던 것 혹은 잘못했던 것을 종이에 적어 '부채' 저금통에 넣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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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아이도 함께 해야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총 네 개의 저금통을 구매했다. 아이는 '자산'과 '부채'에 대한 개념에 생소해했지만, 차근차근 잘 설명해 주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했다. 무엇이든 가시화하지 않으면 정말 자신의 '점'들을 망각한 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얻었던 점, 그래서 감사하게 여겨야 할 점들을 글로 적어 저금한다면,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점, 그래서 되찾아야 하는 점들을 종이에 각인시켜 저금한다면, 나중에라도 저금통을 열어보았을 때 내가 갖고 있는 무수한 '점'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둠과 빛을 경험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어둠은 한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 정도로 빛나고, 빛은 사람들이 보지 못해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의 장점, 타고난 점, 그래서 잘 발휘해야 하는 자신만의 '점'들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다. 모른 채 살아가는 빈자리에는 타인의 '점'들이 채워진다.


문득 험담하거나 이상한 이야기를 지어내며 타인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스스로를 모르기 때문에 더 타인을 헐뜯고 그것으로 삶의 의미를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채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이 나약한 사람들, 학교폭력, 악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학부모 갑질 등 사회 이슈로 늘 화두가 되는 이유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그나마 자신에게 있던 값진 자산 또한 있었는지도 모른 채 소멸되고 과오들이 부채로 누적된다. 결국 손실만 안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금통'은 의미가 깊다.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점과 잃게 된 점 모두 적어 저금해 놓는다면 향후 저금통을 펼쳐보았을 때 내가 망각했던 점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가장 두려운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라도 해서 어둠 속에 가라앉은 우리의 빛나는 점들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싶다. 느꼈던 점들을 종이에 적어 자산과 부채 저금통이 쌓여가는 매일매일이, 그리고 그걸 펼쳐볼 미래가 참 기대된다.






굉장히 도덕적이고 선비 같은 말을 담았던 글이다.

사실 20대에 접했던 장영희 작가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을 보며 많은 위로를 얻었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다. 내게 조언해 주신 브런치 작가님 말씀을 듣고 나서 더욱, 작가로서 길게 가려면 너무 솔직한 글 말고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진 이유도 있었다. 모든 글이 마무리를 좋게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어떻게 마무리해야 여운을 줄 수 있는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위에서 쓴 것처럼 '어둠은 한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 정도로 빛나고, 빛은 사람들이 보지 못해서 어둠 속으로 가라앉' 기 때문에, 내 글을 보면서도 나 스스로가 좋은 점을 발견 못하고 계속 부족한 점만 보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젊음이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줄 '전환사채'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내 글도 성공으로 바꾸어줄 '전환사채'와 같은 글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혼자 하는 고독한 문학에 아주 조금이나마 따스한 한줄기 희망이 내려앉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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