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설 같은 실화

키워드 두 번째 - ‘자산, 부채, 자본’

by 지혜

이 글을 쓸 때는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아픈 기억이었고, 이걸 회복하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내게 두려운 존재였다. 무섭고 싫었다. 아버지가 아픈 이후로 우리 가족은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돈독한 부녀사이는 결국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눈을 감아도 많이 슬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증오든, 사랑이든, 평생을 함께한 존재는 있을 땐 모르지만 옆에 없을 때는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는 걸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깨달았다. 빈자리에 가장 먼저 차오른 것은 후회와 슬픔이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힘들었는데, 장례 치르기 전부터 나는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앞서 괴롭힘을 당했던 직원이 퇴사했고, 그다음 차례가 내가 된 것뿐이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힘든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준 것일까, 철없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만큼 직장생활이 힘들었으니까, 그 마음이 든 게 죄스러워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그동안 무척 감사했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엔 내가 겪은 일들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잠시 꿈꾼 것이라고, 아버지가 아직 내 곁에 살아계실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북받치는 슬픔을 느낄 때마다 현실이라는 걸 자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했고 마음만 추슬러보자 다짐하며 주부 생활한 것이 벌써 3년이 된 것이다. 육아를 위해 그만두었다고 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직장이 힘들었고, 장례 치르고 마주한 인간의 본성에 충격받았고, 이제 평생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눈앞이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회복하기까지 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란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에세이를 잠시 소개해본다.




똑딱똑깍.


구두 소리다. 그녀가 왔다. 그녀의 등 뒤에 떠있는 주가가 눈에 들어왔다. 우상향 중이다. 다들 긴장한 채 모니터에 코를 박는다. 다른 이들 등 뒤의 주가는 조금씩 우하향하고 있다. 긴장해서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지? 다들 업무 준비는 다 됐어?"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니터 앞으로 목을 쑥 내밀었던 팀원들은 그녀의 말에 일동 기립하며 순서대로 보고 한다. 일순간 그들의 주가는 오른다. 긴장감과 자신감 사이에 결국 그들은 균형 잡아 열심히 보고하고 있으니까. 모두 준비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내가 보고할 차례. 미미한 성적만을 보여준 내 주가는 이 보고를 완벽하게 하면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여는 순간, 그녀는 내 시선을 무시한 채 뭉툭한 서류 한 묶음 책상 위로 탁탁 치며 자리를 나선다. 없던 자신감 더 떨어져 내 주가는 나락으로 향한다. 다른 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 나도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주가를 회복하려면 '왕따'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이전의 왕따였던 남직원은 3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전의 왕따였던 여직원도 반년을 못 버텼다. 자신의 주가를 지키기 위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나도 고민했다. 집에서도 먼 이 회사, 이렇게 따돌림까지 당해가며 버틸 이유가 없지 않을까. 더군다나 내 주가도 이렇게 마이너스인데...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 부르르, 부르르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친정오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바쁜 시즌이라 여유가 없는데, 평소에 연락이 잘 없던 오빠가 계속 전화한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화를 받았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일단 여기 병원인데, 휴가 쓰고 와봐."


다짜고짜 병원으로 오라고 하던 오빠에게 화가 났다. 내 상황도 모르고, 바쁜 상황에 휴가 쓰고 빠지기까지 하면 직장 내의 내 위치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아, 왜? 이유를 말해야지. 왜?"

"아 더 이상 말 말고. 일단 아빠가 여기에 있으니까 와봐."


아빠는 늘 누워있었다. 15년 전에도 지금도. 그래서 늘 아픈 아빠였는데 대체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된 것일까. 하지만 일이 너무 바빠 길게 통화할 여력도, 생각할 여유도 없다. 대답 없는 내게 친정오빠는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아빠 돌아가셨어. 얼른 와."




어떤 정신으로 병원을 향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주가도 어디까지 최저점을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콧물 범벅으로 우리 부서의 팀장인 '그녀'에게 전화를 해 급히 휴가를 썼고, 택시 타면 엄청 막힐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갔으며, 그 와중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돌아가셨다.'라고 이야기한 것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만큼 아득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었다. 다만, 지하철 안에서 짐승 울음소리처럼 꺼억꺼억 우는 내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닿고 있다는 것만 인식되었다. 뭐가 저렇게 슬퍼서 우는 것인지 다들 아는 것 같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만큼은 내 주가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향한 미안함, 사랑, 절망감 등 복잡한 감정들을, 잊혔던 생생한 감정들을 느껴서였을까.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는 내게 다가온 사람들의 무언의 위로가 날 따뜻하게 감싸주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내게 문자를 보내 언제 복귀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일주일 뒤인데, 바쁜 시즌이라 빨리 돌아오라는 그녀의 마음이 뻔히 보였다. 예전 같았다면 눈치 보며 최대한 빨리 복귀하겠다는 말을 했을 텐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발인은 3일 뒤, 휴가는 5일 쓰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형식적인 그녀의 문자가 도착했다. 가증스러웠다.




수의를 입고 잠시 눈 감고 자고 있는 것 같은 아빠의 모습. 발인 전 마지막으로 보는 아빠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곧 일어날 것 같은데, 발인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아빠 주변에는 어디에도 그의 주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 돌아가셨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외쳤다.

"사랑해요, 죄송했어요. 다시 만나요."

귀가 제일 마지막에 닫힌다던데, 다 듣고 가시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복귀했다. 냉랭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 업무를 대신한 동료의 이메일 보고가 수두룩 쌓여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내 주가도 위아래로 지그재그 혼란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구두소리를 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울리는 내 메신저 창을 켰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다.


"차 한 잔 하러 갈까?"


우리는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 사주던 그녀는 대화를 시도했다. 나도 대답했다. 원래 눈물이 많은 데, 그녀 앞에서는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공감이 없는 가식적인 대화가 오가서였을까. 70에 가셨으니 오래 살다 가신 거라는 그녀의 위로가 와닿지 않았다. 요즘은 100세 시대인데 70세에 간 게 왜 오래 산 거야?라는 삐딱한 의구심만 들 뿐이었다.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후 타 부서 몇몇 분들만이 부의금을 전해줄 뿐, 우리 부서의 어느 누구도 내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내 위치는 사실 그 정도였을 뿐이었고 그걸 증명하듯 내 주가도 마이너스였으니까.


그런데, 어라. 내 주가가 이상하다. 위아래로 곤두박질치던 주가가 조금씩 우상향을 하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분명 우하향 최저점을 기록했던 주가가, 왜 살아나고 있지? 내 자리에 울리던 사무실 전화를 받을 때도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럴 때마다 작게 우상향 하던 주가가 더 큰 간격을 벌이며 위로 올라갔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뭔가 예전과 달랐다. 동료들의 주가가 이상했다. '그녀'의 주가도 이상했다. 완벽주의자 '그녀'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었고, 동료들의 주가도 같이 하락했다. 눈물로 가득했던 눈을 휴지로 급하게 닦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항목이 보였다.



배려, 신뢰


왕따의 주동자, 방관자의 주가 그래프는 위 항목으로 재구성되었다.

없던 항목이 생기니, 업무능력으로만 반영되어 있던 주가가 하향하게 된 것이다. 아빠를 잃고 나니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업무로 평가받는 조직에서조차 필요한 무형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형가치를 잃으면서까지 유형자산인 '돈'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 또한.


바로 사표를 냈다. 퇴사하고 한동안 날 위해, 가족을 위해 살아볼 생각이다. 냉정한 사회생활 속에서 잊었던 내 감정, 살아있었던 예전의 감각을 다시 살려볼 생각이다. 소중한 가족을 또 잃기 전에, 그리고 나 스스로를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의 삶 또한 소중하니까.




몇 년 전 겪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짧게 써 보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변동하는 주가를 상상해 보았다. 이걸 가시적으로 표현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고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나온 글이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이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중요하지만, 돈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시대에 있든 무형가치가 제일 강력하며, 그러니 이 사실을 잊고 살고 있다면 다시 제대로 잘 살아보자는 마음 또한.


과거를 떠올릴 때면 자주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의 자격을 운운할 만큼 난 훌륭한 사람인가, 생각했을 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우선 잘 살아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고통스러운 마음이 괜찮아지기도 했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글에 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일들을 마음속에 넣어두고 싶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믿고 싶으니까. 성과로 판단하는 조직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위 소설처럼 그런 시대가 진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마음을 내어주고 그 마음을 받으며 살아가는 좋은 세상이 멸망한 세상, 그래서 가시적으로 어떤 마음이 좋은지 알려줘야 하고 깨닫게 해야 하는 힘든 세상.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만들어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일일이 설파해야 하는 그런 세상이.

그런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이 오지 않길 바란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고통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큰 난쟁이'인 우리니까, 지금부터라도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살만한 세상으로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도 '소설 같은 실화'가 생겨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앞서 발행한 글 ' 작은 거인 '처럼 언젠가 그 고통은 잊힐 거라고, 그리고 더욱 단단해진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재탄생할 거라고. 그리고 그걸 발판 삼아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내 곁을 소중하게 지켜준 주변인들을 잊지 말자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우리들은 그 어떤 시련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Only 1인 1인 기업, 최고의 가치를 무형자산으로 갖고 있는 이 땅의 최상이고 이 세월의 최선인 하나뿐인 인생의 CEO니까.





하나뿐인 인생의 주인공인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을까, 이 글을 보며 반문한다. 적어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있는 감정 그대로 느끼며 익어가고 있으니 잘 살아온 것이리라 믿고 싶다. 미운 사람들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잘 지내왔다고, 잘하고 있다고,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격려해주고 싶다.


다시 내 글을 위에서부터 쭉 훑어본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겪었던 일을 약간의 소설을 가미해서 쓴 글. 큰 상처로 한동안 힘들었으나 글로 치환하여 기록했던 내면을 건드려봤다. 단단해졌다. 치유된 것일까, 쥐도 새도 모르게 '우량주'가 된 것일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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