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잠시가 아닌 잠시만

키워드 두 번째 - ‘자산, 부채, 자본

by 지혜

드라마나 웹소설, 에세이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래도 부럽다. 그 노력 끝에 맺은 결실이 이리 크니까.'


내 마음 안에 부러움만 잔뜩 채워진다. 한숨도 쉰다. 시무룩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힘내보자 다짐한다. 이렇게 잘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들도 그만큼 힘든 과정을 거쳤을 거다. 보이지 않는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결과물만 보지 말고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고 나도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후 내 글을 본다.





[3번째 에세이 제목 : 잠시가 아닌 잠시만!]


나는 1인 기업이다. 그러나 부득이한 사유로 20대 후반에 다른 기업과 합병했다. 나 혼자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 미래에 많아질 것 같아서, 시너지를 창출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합병을 감행한 것. 그리고 1년 후 자회사를 설립했다. 아주 잠깐 설립 후 분할하고 싶었는데 왜인지 잠깐이 잠깐이 아닌, 더 길어질 것만 같은 느낌은 왜일까.


"엄마, 핸드폰 하는 거야? 나 보고는 '잠시만'이라고 해도 안 들어주면서. 나 아직 안 자고 있는데 핸드폰 잠깐 몰래 하는 것도 '잠시만'하는 거랑 똑같아. 얼른 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애를 재우고 몰래 핸드폰 보다가 들킨 나. 그렇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아이가 나에겐 '자회사'다. 내가 1인 기업이고 남편이 합병된 기업이다. 우리 세 식구 으쌰으쌰 잘 살아보고 있지만 육아는 쉽지 않다. 얼른 잘 키워서 독립시키고 싶은데 8살짜리 초등학생을 어느 세월에 키울까.


다른 분들은 세월 금방 간다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자라고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나는 이 과정이 더디게만 느껴진다. 너무나도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난 전업주부다. 외벌이에 아이를 키우면서 아끼고 아끼는데 저축이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근로자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버는 돈이 없을까?


아이가 자는 걸 확인한 후 내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비용절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일단 아이에게 매일 한글과 수학을 가르친다. 한 달에 공부방 보내려면 10만 원 넘게 지불해야 하는데, 일단 그 비용은 세이브. 영어는 영상을 꾸준히 보여주니까 이것도 비용 세이브. 물가가 올라서 집에서 집밥을 해 먹는다. 외식 비용도 세이브. 장 한 번 볼 때도 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등 가격 비교를 하며 저렴하고 괜찮은 것으로 사니까 그만큼 비용이 절감된다.


그리고 어떤 비용들이 아껴져 저축과 같은 효과를 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평소에는 많이 절약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올리려고 애쓰니 생각나질 않는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생활비를 줄이고 있는 일상을 더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어떤 한 카페에 접속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고민글 하나. 순간 놀라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이 어떻게 배우자에게 저런 말을 할까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다가 힘들어서 30분 정도 쉬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5년 넘게 쉬었으면 됐지, 지금도 그렇게 놀고 있냐?'라고. 육아를 하는 동안 경력단절된 아내는 자존감도 바닥이 되어 대꾸하진 못했지만 너무 속상해서 카페에 글을 올린 것이다. 너무 안타까워 고민 끝에 댓글을 달았다.


자산에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이 있듯, 부부가 한 가정을 이루면서 얻게 되는 자산들 또한 유형과 무형으로 나뉠 거예요. 배우자가 유형자산인 돈을 번다면, 전업주부는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며 인성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무형가치에 힘쓰게 되는 것이죠. 돈 버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육아도 쉽지 않아요.

우리는 아이 인성과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을 뿐,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를 잘 다독여주세요.


한 생명을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에 대해 배우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모진 말로 헐값 취급하다니. 너무 안타까워 댓글을 달았더니 그분이 바로 대댓글을 달아주셨다. 고맙다는 말이었다. 사적인 글이라 하루 지난 뒤 삭제되어 있었지만, 잠시나마 위로가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잠깐의 위로였지만 그분의 마음속에 꽤 오래 남아있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등원, 등교시켜도 전업주부들은 할 일이 많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전업주부들은 자진해서 한다. 학부모회의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나는 전업주부로서 학부모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집에서 청소, 빨래, 육아만 하지 않는다. 책도 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설계도 꾸준히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우리들은 배우자로부터, 사회로부터 충분히 존중받고 살아가도 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살아간다. 목표했던 것을 하지 못했던 어제는 부도수표처럼 잊고, 오늘 주어진 시간 열심히 활용하면서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전업주부도 근로자도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노후를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은 튼튼한 노후라는 '약속어음'을 발행하면서 살아가고, 미래보다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오늘의 시간을 '선물'처럼 아끼지 않고 살아간다.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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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애를 살다지는 벚꽃처럼 우리의 삶도 유한하다.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많은 것들을 잃게 되기도 한다. 기업과 달리 우리 삶은 회계상의 '대차평균의 원리'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산이 더 많을 수도 있고 부채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진솔한 글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부분이 내게 좋은 자산이 되었고 어떤 것들이 내게 부채로 남아있는지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면,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이 글을 쓴다.


단 일주일일지라도 주어진 생애 동안 위로를 건네기 위해 노력하는 성군과 같은 벚꽃. 사람들의 행복을 얻고 일주일 간의 생을 마친 그 자리에는 초록잎이 돋아난다. 일주일 내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했으니 어제도 부도수표가 아닐 테고, 오늘도 충실했으니 하루하루 선물과 같았을 것이며, 다시 내년 봄에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니 약속어음까지 지니고 있는 존재가 된다. 1년 내내 사람들 마음속에 예쁘게 남아있을 벚꽃은 정말 부채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딱 하나가 떠올랐다. 수없이 날아오는 작은 벚꽃잎들은 땅에 떨어지고 그것을 치우는 사람에게는 업무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 하지만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벚꽃이기에, 관리인들도 귀찮은 업무로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무심코 잠깐 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평생의 상처가 되고, 잠시의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된다. 잠시 피고 진 예쁜 벚꽃이 우리 마음속에는 늘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잠깐이라도 예쁘고 가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유가치한 무형자산을 많이 갖게 되는 사람으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 모두 그런 사람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며 걸어온 지 8년인데, 글은 따사롭지만 내 인생은 차가운 감옥 안에 있는 듯 외롭다. 타인을 위로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에게는 위로하지 못한 채 혼자 문학을 했다. 홀로 하는 문학은 외롭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글이 안 써진다고 하소연할 곳도, 글이 어떠냐고 물어볼 곳도 없다. 어떨 때는 너무 일기처럼 썼나 싶다가도, 재고 거르고 고민할수록 글만 더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쓰다가 글 자체를 놓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글을 대하는 무거운 마음부터 내려놓기로 했다. 일기처럼 보이면 어떻고 무거워 보이면 어때. 지금 당장 책이 되지 않아도 뭐 어때. 그냥 몸 안에 스며든 모든 기운을 자연스럽게 글에 내놓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글만 매달리기보다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싶어 요즘 드라마를 보고 있다. 어제는 (2025년 1월 27일 기준) 사극드라마 [옥 씨 부인전]을, 오늘은 [중증외상센터] 드라마를 정주행 중이다. [옥씨부인전]도 감동적이었고 [중증외상센터]도 재미있고, 역시 작가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어야 하나 싶어 또 우울해졌다. 난 3편 쓰는 것도 힘겨운데, 장편을 쓰는 작가님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싶어, 나는 포기해야 하나 소심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작가'인가 보다. 물론 등단작가도, 웹소설작가도, 드라마작가도 아닌 베스트셀러를 희망하는 무명작가지만.


쓰는 동안 행복했으니 지나간 과거 또한 부도수표는 아닐 테고, 오늘도 내 복잡한 마음에 충실하며 글을 썼으니 선물과 같았을 것이다. 내년에는 지금과 달라진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도록 약속어음까지 꽉 쥐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눈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잠시 두고 아주 잠깐 나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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