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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kate note Sep 18. 2024

관찰하는 중입니다

관찰자로서 나를 바라보기





내가 사랑하는 빛






기분이 조금 울적할 땐 집에 있기보다 가벼운 트레이닝 복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또는 좋아하는 커피 향이 가득한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장소가 좋지만 혹시라도 그날따라 사람이 많으면 창가를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쪽으로 앉아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군중 속에 있는 나 스스로를 느낀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짜릿한 배경음악이 내 어깨를 들썩인다면 멜론 앱을 켜서 음악 검색 탭으로 들어간다. 음악에 살짝 빠져있다가 그윽한 커피 향에 잠시 취해있다가 가방에 들고 온 읽던 어떤 책을 꺼내든다. 쉬러 나갈 때는 처음 읽는 책보다는 좋아하는, 좀 즐겨 읽는 책을 가지고 나가는 편이다. 아무 페이지나 폈을 때 그 작가의 문체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날 들고나간 책은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였다. 청춘에 대한, 학교에 대한, 일과 돈에 대한 담담하고도 시니컬한 문체가 나의 심리와 닮아있어 마음에 든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찬란한 긍정의 아이가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어, 조금 변한 것 같은데ㅋㅋㅋ”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기본 성정 자체는 착한데 좀 삐딱하게 시크한 친구.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감수성도 많이 채워졌고, 공감능력도 그때보다는 좀 나아진 느낌이다. 일종의 사회화가 된 셈이다.




대신 헤어질 무렵, 친구는 내가 천문학자가 되어서 좋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무엇이어도 좋았지만, 열정적이고 무해하고 아름다운 화가라는 점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잡지 속 우주로부터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향해, 한 사람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인생을 홀연히 살아가는 이들의 활기 속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면 혼자 있더라도 조금은 아늑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특히 울적한 마음이 들 땐 그냥 혼자 있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내면의 나와 만나는,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속상한 부분이 무엇인지, 힘들다고 느끼는 감정은 어디서부터 온 아이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얼 하고 싶은지 등. 책을 읽다가 마음 하나가 문장 하나에 걸쳐져 몇 분 동안 사색에 잠긴다. 맞아, 나에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지. 서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문득 만나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라며 깔깔거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옆에서 바라봐주고 그 모습들을 서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친구들.      





학창 시절에 책을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쉬는 시간에 책 읽기를 즐기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차분히 앉아있는 그 모습이 나는 멋져 보이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는 책들은 많았지만 그게 정말 재밌어서 읽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때의 나는 그저 먹을거리를 좋아하는 수다쟁이 짝꿍,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도 아닌데 별거 아닌 걸로 배꼽 빠지게 웃고 있는 그냥 그런 친구, 가끔 멍하게 다른 세상에 빠져있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현실 세계로 돌아왔던 좀 엉뚱한 친구였을 거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지나온 나를 관찰해 보면 참 웃긴 아이 같다. 지금도 남편이 가끔 나를 관찰대상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아직도 그 모습들이 남아있군 싶다가도 나 스스로는 많이 사회화가 된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싶다.




시원한 늦여름 밤바람 냄새 맡으며
그저 뛰어노는 게 재밌던 아이



대한민국 입시제도에서 공부를 피하기엔 용기가 없어서 그냥 했었다. 하다 보니 재밌는 부분이 생기기도 해서 또 했었다. 그러다가 시험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를 그득 받아 책상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겠다며 침대 위에 진을 치고 침대에서만 책을 본 적도 있었다. 결국 큰 시험공부를 하다가는 외워야 하는 똑같은 문장들에 신물이 나서, 책 냄새가 싫어서 한동안은 책을 멀리했었다. 난 사실 책 보다 시원한 늦여름 밤바람 냄새 맡으며 그저 뛰어노는 게 재밌는 달빛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해야만 하는 전공 서적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책을 피해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흘러 지금에 왔다. 이제는 내가 여백을 갖기 위해, 나에게 쉼을 주기 위해, 나를 채우기 위해 책 한 권쯤은 든 묵직한 가방을 메야 마음이 놓인다. 미운 정들면 못 놔준다고 하던데. 나에게 책이란 친구는 참 아이러니한, 나와 자꾸 엮이는 애증의 관계이다. 인생의 묘미는 멈추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고, 요즘은 그 흐름 속의 나의 변화 또한 즐기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다시
책을 읽는 중입니다




아, 그래도 학창 시절 흥미롭게 읽은, 책에 다시 재미를 갖게해 준 작품이 있었다. 그 책은 알랭드 보통의 몽글몽글한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 보통의 작품들을 읽다가 우연히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그를 만났다. 그의 생각과 통찰은 여전히 재밌었다.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지레짐작으로 작가의 나이가 가득 찬 어른일 줄 알았는데,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젊은 시절의 보통이 쓴 글이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피엔스의 미래>는 알랭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거,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를 엮은, 미래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살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묶은 대담 형식의 책이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사피엔스>, <초예측>과도 그 결을 같이하는 책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현상을 파악하며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야기들은 흡인력이 강하다. 무엇보다 지나온 역사와 지금의 모습을 한 발자국 물러 서서 관찰하는 시점으로 보는 유발하라리 특유의 포지션이 마음에 든다. 가치판단은 잠시 미루어 두고 담담하게 현상들을 관찰하며 논리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문체도 매력적이다. 읽다가 너무 깊은 이야기가 꾹꾹 눌러 담겨 있어서 못다 한 이해는 그 또는 주변 작가가 쓴 다른 책으로 채우거나 온라인 속 고견의 박사님들의 영상을 보며 정리한다.




다시 일상으로



추석 연휴 온전히 쉬고 싶었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다 보니 가족들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 있어 조용히 쉬지는 못한 듯하다.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기는 그른 것 같은 이번 생ㅋㅋㅋ) 이렇게 연휴를 흘려보내는 게 억울해서 오디오북으로 <초예측>을 한번 더 듣게 되었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대답 속에서 유발하라리가 던지는 목소리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나는 어떤 의문을 품어야 하는가, 중간중간 생기는 질문을 메모하며 또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글을 남기며 공상에 잠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관찰하는 시간,

일종의 메타인지적 시선은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과정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데

그 순간순간들을 기록해 두세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무언가가 쌓입니다.

그리고 그 dots들이

브랜딩으로 가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해요.


You have all you need !





작가의 조금 더 개인적인 공간

https://litt.ly/kate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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