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un 09. 2024

 재미있는게 너무 많아!

심심할 틈 없는 제주라이프

“제주도 살면 심심하지 않아? 백화점도 없고, 문화시설도 별로 없잖아.”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도 쇼핑을 즐기고, 친구들과 주로 백화점을 가는 타입이었다면 아마 나는 제주에 산 지 반년만에 이 곳을 탈출했을 거다.


하지만 나란 인간, 창문이 없는 쇼핑몰은 너무 답답하고 특히 사람 많은 것을 유독 싫어하여 2002년 거리가 붉은 악마로 물들던 월드컵 기간에도 집 밖에서의 그 어떤 응원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아이인 것을 감안한다면 제주는 내게 천국이다. 여기는 사람 사이의 거리도 넉넉하고, 유일한 대중교통인 버스에서조차도 사람끼리 밀착될 기회가 거의 없다.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치가 아주 많이 감소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머리 위로 한없이 펼쳐지는 넓은 하늘! 흐린날이면 다이나믹한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아름다운 노을이라도 지는 날이면 실시간으로 붉게 넘실대는 모습을 풀 스크린 HD 아이맥스 스케일로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서라면? 두더지처럼 땅 속으로 들어가 이동하고 있는 시간이 더 많고, 높디 높은 빌딩들로 하늘이 칸칸이 토막나서 그 광활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 것이다.


사람이 창조한 도시와 문화도 물론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지만, 내게 있어서는 수억년에 걸쳐 지금에 다다른 자연이 더 재미있다. 쉬는 날 에너지가 남는 날이면 나는 산으로 오름으로, 올레길로 바다 속으로 성큼성큼 어간다. 꼼꼼한 성격이 못되어서 올레길 스탬프는 단 하나도 찍지 않았지만, 거의 웬만한 올레길은 한번씩은 다 가보았고 오리지널 제주인들조차 ‘그런 오름이 있어?’ 하는 오름들도 많이 다녀보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계절마다 다른 길의 풍경과 300여개가 넘는 설문대 할망의 자녀분들 덕분에 기실 수박에 겉핥기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코로나가 터져버려 육지로도, 다른 나라로도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 동료의 꼬임(?)에 현혹당해 스쿠버다이빙도 시작했다. 처음엔 수트와 호흡기의 답답한 느낌때문에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던 내가(스노쿨링이랑은 완전 기분이 다르다. 아무래도 나는 갑갑한 기분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도 하다. 목티 입는 것도 굉장히 싫어한다.) 겨우겨우 4m 풀에서의 교육을 마치고 범섬 근처에 입수하는 것을 3번만에 성공했을 때의 그 뿌듯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바다 밖에서 파도만 관람하는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제주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게되었다. 문섬의 직벽에 있는 색색의 연산호와 햇빛을 몸 속에 끌어 담은 듯 반짝이며 무리지어 가는 멸치 떼, 그리고 때론 아득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저 바다 깊은 심연의 암흑까지.


올레길이나 숲길을 찾아다니는 것도 소소한 재미인데, 싱그러운 숲의 향기와 철마다 바뀌는 꽃의 향연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잎은 잘 구분 못하지만 꽃은 그래도 꽤 구분이 되어가는 요즘이다. 스마트폰 선생님은 사진만 찍어 검색을 돌리면 황송하게도 이름부터 그 꽃의 특성까지 알려준다. 언제 피고 어디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사람들은 그 꽃에 어떤 이야기를 엮어 꽃말을 만들었는지. 덕분에 안그래도 꽃밭인 내 머릿속엔 계절마다 오만가지 꽃들이. 꽉꽉 들어찬다.


최근에는 회사 선배가 그렇게도 권하던 ‘고사리 수집‘을 하게 되었다. 북유럽에서 버섯따기가 그들만의 놀이이자 힐링인 것처럼, 제주에서는 4월 정도가 되면 아기 손처럼 웅크리며 올라오는 어린 고사리 순을 따러다니는 것이 국룰이다.(물론 MZ세대는 안하는 것 같고, 어르신들이 주로 즐기시는 것 같긴 하다. 이때 숲 속에서 고사리를 따라 동화속 빨간모자처럼 길을 잃는 분들이 많아 이때쯤이면 항상 실종 주의보가 뉴스며 현수막에 낭낭하게 보인다.) 사실 선배가 여러번 내게 함께 고사리 따러가자고 했을 때도 나의 반응은 “응원합니다. 함께 가드릴 순 있어요. 전 거기서 지켜볼게요.” 였다. 고사리를 따려면 약간 허리를 굽힌 상태로 이리저리 탐색하다 타겟이 포착되면 냅다 웅크리고 앉아 손으로 톡톡 꺾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내겐 그건 학창시절 선생님께 받던 오리걸음 기합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거. 좀 먹자고 저 허리와 무릎에 안좋은 자세를 한다고? 왜? 사먹으면 되잖아?’ 당시로선 굉장히 똑똑한 생각이라고 여겼다. 아무리 꼬셔봐라. 내가 가나.

그러다 선배가 “제발 이거 딱 하나 요거. 내가 발견한거 그냥 한번 따보기만 해봐. 그 담엔 뭐라고 안할께.” 라고까지 말하니, ’그래. 그냥 이거 한번 따고 이제 소원수리 한것으로 도장 찍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 고사리를 톡 하고 꺾는 그 순간. 알수 없는 간지러운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것은 마치 뽁뽁이를 ’뽁‘하고 경쾌하게 터뜨렸을 때의 그 느낌? 하나 더 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상을 말할 생각도 잊은채 고개를 휘휘 돌리며 주변을 탐정같은 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앗! 저기있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바보처럼 히히힛 웃으며 고사리를 또 톡 따고 있었고, 그때 바라본 선배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걸려들었군. 윤슬녀석’ 하는 그 만족스러운, 그럴 줄 알았다는 승리의 미소. 그 이후론 내가 졸라서 주말 새벽에 선배만 아는 고사리 스팟에서 함께 톡톡이를 즐겼다. 반성한다… 먹기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그냥 그 행위가 즐거워서 하고야 말았다. 아무 생각없이 집중해서 새소리를 들으며 손 끝 사이로 느껴지는 그 경쾌한 성과의 쾌감!


어떤가? 제주도… 너무 재미있다. 아직까지 하나 못해본게 있다면, 겨울에 오름이나 여러 비탈길에서 그야말로 진정한 ‘자연농원’의 눈썰매를 즐기는 것이다. 그동안은 눈이 오는 날도 바빴고, 어쩐지 혼자 타러 가기도 쑥쓰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거 뭐 얼마나 재밌겠어? 라는 생각 때문에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꼭! 꼭! 탈거다. 애들이 “저 아줌마 뭐야? 이상해!“ 라고 외쳐도, 나는 제주에서의 나를 한단계 더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하하!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방정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