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 요망진 것 같으니라고!
제주어 연수의 머나먼 길1
"이 아이 참 잘도 요망지다잉?"
구슬처럼 곱게 생긴 선배가 갑자기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했던 그 문장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순간 나는 사극 속 중전 앞에 흰 소복을 입고 무릎 꿇려진 후궁이 되어 있었다. 내 앞에서 그 선배의 얼굴을 한 중전이 "저 요망한 것을 매우 쳐라!" 하고 앙칼지게 외치는 듯 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 중이었다면 충격을 못이겨 흔들리는 동공과 잔뜩 얼어붙은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을 것이다.
'요망져?나... 이 분한테 뭐 잘못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말을 상큼하게 웃으면서 할 수 있지? 최상급의 무서움이다. 침착하자. 침착해. 잘못한게 있으면 사과하면 되는 거야. 자, 최대한 뉘우치는 듯한 얼굴로 여쭤보는 거야. 하나... 둘...셋...'
"저, 선배님 제가 뭐 혹시 잘못한거 있을까요? 말씀해 주시면 제가 다음부터는 최대한 주의할게요."
그 때 그녀의 표정도, 주변 사람도, 공기 마저도 싹 다 얼어붙어 버렸다고 느낀 건 기분 탓이었을까?곧 와하하하 울려퍼지는 모두의 웃음 소리에 다시 시계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야이 뭐랭하멘? 잘도 재미지다잉?"
"요망지다는 말은 서울말로 야무지다 똑똑하다 뭐 그런 말이야 윤슬씨 ."
"서울에선 요망지다고 안해?"
"아하하하 진짜 웃기다!"
그 반응에 떡 벌어진 입은 다물어 지지 않았고 눈은 행방을 잃었으며 어쩐지 코에서도 콧물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예? 아... 나쁜 말이 아니에요?"
"그래. 좋은 말이야. 너 참 야무지고 잘 한다고. 근데 이러는 거 보니 취소해야겠다. 하하하."
비슷한 경험으로 얼마전 "와리지 마라"라는 소리에 "예? 야린적 없는데요?"라고 답했고 ('와리다'는 초조해하면서 막 정신없이 군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제주 말씨를 따라한답시고 매일 말 끝마다 "잉~" 거리던 것에 대해 10년만에 처음으로 그건 사실 "이~"라는 것을 듣게 된 것들이 있다. (퀴즈: 해당 문법을 적용하여 다시 이 글의 첫 문장을 교정하시오.)
'애교 부리려고 잉 거리는게 아니었어요. 여러분... 아니 내 귀엔 진짜 잉 이라고 들린다니까요?'
이처럼 제주 방언에 산적한 새로운 용어들은 안그래도 삐걱거리는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단어의 차이를 넘어 말투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