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라카미 하루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B31. 음악, 생명 유지의 수단 /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오자와 세이지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재즈와 더불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과 안목과 조예에서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작가입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와 음악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군요.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고, 섬세하고, 특별한 대담입니다.
이것은 그 기록이자, 그 기록의 내용에 대한 하루키 자신의 다양한 생각의 결을 드러내놓은 책입니다.
지휘자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음악에 대한 하루키의 혜안이 번득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지휘자의 대답은 말할 것도 없고요. 평생토록 쉬지 않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사람의 경륜이 매우 흥미롭고 감탄스럽습니다.
오자와 세이지는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의 계보를 잇는 지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말러 해석과 연주의 계보이기도 합니다. 이 계보를 통하여, 또는 이 계보의 이바지로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말러 붐이 일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오자와 세이지 씨’는 지난 2월 6일, 향년 88세로 타계하셨습니다.
두 문장이 가슴을 칩니다.
‘음악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 사람은 체내에 음악을 정기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면 생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앞의 문장은 음악에 대한 하루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고, 뒤의 문장은 오자와 세이지에 대한 하루키의 논평입니다.
저는 이 두 문장에 모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요. 음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음악을 듣는 것입니까.
‘예(禮)’와 더불어 ‘악(樂)’을 그토록 중시하신 공자님도 아마 같은 생각 아니셨을까요.
음악이 없다면 도대체 이 험악하고 무도하고 몰인정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싶은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 갑자기 음악이 없어진 세상을 가만히 상상해 보면, 그런 세상에서는 정말 ‘생명 자체를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이 책과 더불어 최근의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2023, 브래들리 쿠퍼)을 함께 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