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B32. 영화음악가? 뮤지션! /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 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양윤옥 옮김, 청미래
지난 2023년 3월 28일에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는 저한테 당연히 영화음악가입니다.
제가 그를 영화음악가로 처음 인지한 영화 〈마지막 황제〉(1987,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서부터 지금까지 죽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영화음악은 그를 담기에는 매우 협소한 틀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2023, 브래들리 쿠퍼)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스스로를 지휘자나 작곡가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규정했던 것처럼 류이치 사카모토도 ‘뮤지션’으로 규정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는 매우 수준 높은 교양인이자 명실상부한 예술가입니다.
이것은 그가 직접 쓴 자서전 격의 책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예술적으로 어떻게 성장, 발전해 왔는지를 통시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베토벤과 드뷔시와 비틀즈를 만난 것을 자기 생애의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특히 드뷔시에 대해서는 자신을 ‘드뷔시의 환생’이라고까지 스스로 믿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며, 무엇보다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 그가 처음으로 철저히 열중해서 해독해 본 곡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저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제5번 ‘황제’를 가장 먼저 좋아하기 시작하여 제4번, 그리고 제3번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제1번과 제2번까지도 애정하게 되었는데, 이런 저만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다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일이기는 합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제3번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데,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에서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매우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는 점이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경연곡의 하나로 바로 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한 사례 등을 감안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베토벤의 이 3번은 저 같은 일반 음악 애호가로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연주가나 작곡가나 지휘자를 위시한 전문 뮤지션만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숨은 매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지금은 저도 이 곡을 매우 좋아하지만, 역시 전문가의 안목에는 아마추어가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는 거겠지요.
그는 어린 시절 음악 선생님께 바흐의 곡을 배우던 때를 회상하며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정말 즐거웠다. 와아, 음악이란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적 성장 과정에 이런 배경이 있다는 것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한 매혹적인 뮤지션이 다른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이 아닌, 귀한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육성이 그의 음악만큼이나 매혹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