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버트 칸,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B35. 저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 앨버트 칸 엮음, 김병화 옮김, 한길아트
음악의 아버지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면, 첼로의 아버지는 파블로 카잘스 아닐까요.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의 진가를 세상에 알린 카잘스―.
이 한 가지 업적만으로도 음악사에 영원히 기록될 인물―.
그런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계적인 첼로의 거장이 되었는가를 이 책은 카잘스의 육성을 통하여 자근자근 들려줍니다.
어째서 육성이냐 하면, 그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고스란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1인칭 소설의 화자처럼 카잘스 본인이 ‘나는’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음악적 인생을 진술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앨버트 칸 ‘지음’이 아니라 ‘엮음’인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 담긴 카잘스 본인의 이야기는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곧잘 방해하기 쉬운 지은이의 불필요하거나 성가신 논평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동시에, 인터뷰이므로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자의식의 늪으로부터도 적절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분명한 특장입니다.
무엇보다도 카잘스의 풍부한 인생 경험과 드높은 예술적 혜안에서 나온, 귀담아서 들어둘 만한 명언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와 무슨 아포리즘 모음집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일을 계속 하면 사람들은 늙지 않아요.’
‘내 일은 내 생명입니다.’
‘자연도 그렇지만 바흐는 하나의 기적이에요.’
‘수월한 연주는 최고의 노력에서만 나오는 결과입니다. 예술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11살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첼로를 만난 순간에 대한 그의 진술은 자못 아름답습니다.
‘첼로는 첫눈에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전에는 한 번도 첼로를 본 적이 없었어요. 첫 음절을 듣는 순간부터 압도되었습니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 소리를 들으니 무언가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답고 인간적인 빛이 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1876년에 에스파냐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난 카잘스는 양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비롯한 전쟁과 정치적 격변기를 살았습니다.
그 험한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예술을 키우고 지켜왔는지를, 그러면서도 무엇이 옳은가를 늘 고민하며, 특히 독재 치하의 자기 고국과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것에 대하여 용감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면모를 이 책은 그 자신의 육성을 통하여 상세하게 들려줍니다.
무엇보다도 음악회에 올 만큼의 경제력이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그의 마음과 음악이 사람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이 가슴을 칩니다. 그에게는 늘 인간이 음악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음악과 의술이 둘 다 치유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보는 그의 혜안이 그래서 참 귀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이 원자탄이라는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진 상황을 탄식하면서 그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원자탄에 대한 유일한 방어는 평화뿐입니다.’
그는 거듭 강조하여 표명합니다.
‘저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동료 인류의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내게 주신 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 의무에 봉사하려 합니다.’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아니, 그보다 앞서 한 인간이었던 그의 삶의 궤적이 장엄하면서도 더없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