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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6. 오직 악보, 오직 작곡가

- 이덕희, 《토스카니니》

by 김정수

B36. 오직 악보, 오직 작곡가 / 《토스카니니》 - 이덕희 지음, 을유문화사

저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아템포(a tempo:본디 빠르기로)’의 지휘자로 기억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허기지게 빨아들이던 학생 시절의 어느 날 저는 라디오에서 토스카니니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허설 음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토스카니니의 입에서 그 특유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아템포!”였습니다.

그걸 듣고 저는 ‘토스카니니는 템포를 무지하게 중요시하는 지휘자로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브루노 발터의 저 상대적으로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던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허설도 들은 적이 있는데, 둘은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때는 라디오에서 음악을 파일도 CD도 아닌, LP로 틀어주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서 예기치 못하게 바늘이 튀는 경우가 생겨서 사과의 말과 함께 서둘러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웃지 못할 일이 더러더러 생기곤 했습니다. 옛날이지요.

그렇게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확실하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토스카니니의 리허설을 브루노 발터의 리허설과 혼동한 것일 수도 있고, ‘아템포’도 ‘인 템포(in tempo:정확한 박자로)’를 착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가 템포를 매우 강조한 지휘자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나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의 경우, 그 전체 연주 시간이 악단과 시기를 달리하는 여러 연주를 통틀어 견주어봐도 그 각각이 고작 몇 초 정도의 차이밖에 안 날 만큼,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템포 감각을 지닌 마에스트로라는 당시 라디오 진행자의 보충 설명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지요.

이는 악보 그 자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그의 음악 해석의 원칙과 관련이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내가 토스카니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대중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단코!

그래서 그는 동시대의 또 다른 거장 지휘자였던 푸르트벵글러에 대해서 이렇게 논평합니다.

푸르트벵글러 같은 지휘자는 이른바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계속 스코어를 남용했다.

그러면서 덧붙이지요.

악보를 해석하기 위해서 지휘자는 오직 원고에, 그리고 작곡가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직감과 감식안에 의존해야 한다.

이 책은 토스카니니의 그런 면모가 단지 예술관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그의 어떠함을 설명해 주는 근거임을 풍부한 자료들을 동원하여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말을 모국어로 하는 저자의 문장이 매우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책과 제가 앞서 이미 소개했던 책인 《푸르트벵글러》를 함께 읽는다면 음악 해석에서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흐름 또는 경향을 견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스카니니의 이런 원칙주의적인 음악 해석은, 특히 메트로놈의 빠르기 표시를 일일이 해둔 베토벤 악보의 해석에서 뒷날의 존 엘리옷 가디너와 같은 원전 악기 연주의 흐름과 맥이 닿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특히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이 베토벤 해석에서 악보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는 이 메트로놈 빠르기 표시를 무시해 온 그간의 연주 관행에 일침을 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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