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몬 드 보부아르, 《둘도 없는 사이》
B38. 우정의 파국, 사랑의 완성 / 《둘도 없는 사이》 - 시몬 드 보부아르 장편소설, 백수린 옮김, RHK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인 친구의 이야기지요.
제가 처음 읽어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지극히 자전적인 내용의 장편소설입니다.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이고요. 따라서 문장이 믿을 만하고, 읽기에 유려합니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가독성이 있습니다.
미성년 시절 동성끼리의 우정은 각별합니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따지기가 쉽지 않을 만큼요.
헤르만 헤세도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런 성격의 테마를 직간접적으로 줄곧 그려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해피 엔딩의 영화와는 다르게, 문학 작품 속에서 사랑은 대개 어떤 모양새로든 파국을 맞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밟는 것 같고요.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파국은 겉보기의 파국일 뿐입니다. 그들의 우정은 결코 깨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끝까지 오롯합니다.
게다가 그것은 이성과의 사랑이 빌미가 된 파국입니다. 그래서 그 파국은 파국이라기보다는 이별의 느낌이며,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화자는 실비고 상대는 앙드레입니다. 소설 밖 현실에서 실비는 보부아르이고 앙드레는 보부아르의 절친인 자자입니다.
이 소설에는 기어이 친구를 잃고 만 보부아르의, 실비의 슬픔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제2의 성》을 쓴 작가 또는 철학자 또는 사상가답게 보부아르는 슬픔의 감정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는 벗의 상실과 그 상실의 슬픔에 대하여 면밀하게 그 원인과 배경을 따져봅니다. 이 따져보기를 감행하는 보부아르의 통찰과 분석의 깊이, 그리고 그 명민함이 남다릅니다.
백수린은 책 뒷부분의 ‘옮긴이의 말’에서 앙드레와 실비가 당시에 느꼈던 여러 가지 차원의 억압을 가리켜 이렇게 규정합니다.
‘옳다는 명목으로 각자의 가치를 실현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요.
그 억압을 통과하면서 그 어리고 아름다운 영혼들이 어떻게 고뇌하고 상처받고 성장하는가를 보부아르는 이 책, 이 소설에서 무한한 애정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가감 없이 그려내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