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B139. 삶을 넘어, 죽음을 넘어 /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장편소설,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죽음 직후의 풍경에 대해서는 실제로 증언들이 있습니다. 흔히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을 ‘임사’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죽었다면 그것은 체험이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그걸 체험한 순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증언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증언이란 산 사람의 몫입니다. 이미 죽어 저 세상으로 넘어간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증언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 ‘임사체험’이라는 다소 해괴한 명칭으로 부르기를 사람들은 그만두지 않고 있습니다.
궁금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죽을 때,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갈 때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느낌일지,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어떤 시공간에 속하게 될지, 너무너무 궁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히 고통스러울지 아닐지, 그곳이 천국일지, 지옥일지, 연옥일지, 하는 따위 궁금증에 더하여, 그 순간부터 겪게 될 모든 것이 궁금할 것입니다.
그래서 ‘임사’라는 말이 지니는 본질적인 모순을 잘 알면서도 그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이 책은, 아니, 이 소설은 바로 그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대한 아주 겸손하면서도 치밀하고 따뜻한 상상의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는 자신이 죽었는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그래서 어리둥절한 그를 위해 생전에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를 ‘누군가가’ 혹은 ‘어디에선가’ 그에게 보내어 그를 죽음의 세계로 안내하도록 한다는 설정의 낯섦과 낯익음―.
친구는 막 죽음의 세계로 넘어온 이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라고요.
욘 포세는 마침표를 거의 쓰지 않고 문장을 쓰는 작가입니다. 따라서 그런 문장들이 끝도 없이 계속되어도 결코 오기(誤記)가 아닙니다.
친구는 또 말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라고요.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라고요.
이미 자기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라고요.
그래서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란 어쩌면 지금까지 인간이 상상한 그 어떤 것과도 다르지 않을까?
그래서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가 어떠한 곳이냐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가 아닐까?
죽음 이후는 죽음 이후에 맡기고, 우리는 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노르웨이 사람인 욘 포세는 202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입니다.
이 책은 독일어 중역(重譯)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치고는, 그 소재와 주제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또 중역인데도, 문장이 신기하리만큼 매우 수월하게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