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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0. 사랑은 기억이요 노력입니다

-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by 김정수

B40. 사랑은 기억이요 노력입니다 /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아작

SF입니다.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리셋〉과 〈7교시〉가 특히 마음에 들지만, 제 가슴을 가장 깊이 울린 것은 〈리틀 베이비블루 필〉의 한 대목입니다.

첫사랑이 조금 더 많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개 사랑이 바래는 것은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므로, 이제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사랑은 유지되었다.

제목의 ‘필’은 ‘pill’, 곧 ‘알약’을 의미하지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을 어쩌면 지나치리만큼 높은 수준으로까지 증진 또는 고양시켜 주는 알약이라는 설정이지요.

예,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 또는 그녀와 잘 지내고 싶다면, 기억하고 또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소중한 순간들을요.

그래요.

사랑은 기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알약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기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다면 사랑은 노력입니다.

이 통찰이 놀랍습니다.

역시 지력(知力) 또는 지력(智力)을 가공할 만한 수준으로 높여주는 알약이 소재인 영화 〈리미트리스〉(2011, 닐 버거)보다는 훨씬 더 인간의 냄새가 짙게 나는 단편입니다.

정세랑 소설이 늘 그랬듯이 말이지요.

여기에 실려 있는 여덟 편의 소설이 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김초엽과는 결이 다르지요.

이 ‘다름’이 저는 참 소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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