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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1. 지휘자가 글로 들려주는 인간 말러

- 브루노 발터,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by 김정수

B41. 지휘자가 글로 들려주는 인간 말러 /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마티

물론 브루노 발터는 저한테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의 지휘자입니다. 저는 아직도 발터의 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전원교향곡’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말러에 대해서 손수 ‘글’(!)을 썼군요.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입니다.

음악가의 글이지요. 이 이유만으로도 저한테는 이 책이 참 귀합니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의 관계는 정평이 나 있지요.

말러 해석의 계보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어 레너드 번스타인과 오자와 세이지로 이어지는 것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사실이고요.

브루노 발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오토 클렘페러, 에리히 클라이버,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조지 셸, 프리츠 라이너, 유진 오먼디,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레너드 번스타인 등등 20세기 ‘거장의 시대’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지휘자들 가운데서도 제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선배 격에 해당하는 지휘자의 한 사람입니다.

또는, 들을 만한 수준의 음질로 녹음을 남겨놓은 거장 지휘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모노 녹음밖에 남겨놓지 못한 푸르트벵글러와 달리 그는 스테레오 녹음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도 참 행운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쓴 것으로, 스승이자 선배인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일종의 평전입니다. 그것도 아주 ‘개인적인’ 평전이지요.

어째서 개인적인 평전이냐 하면, 십 대(열여덟 살) 때 처음 말러를 만나 인연을 맺은 이후로 브루노 발터는 그를 스승으로, 벗으로, 동료로, 더러는 같은 길을 걷는 경쟁자로 섬기고 대하면서 그에게서 음악과 삶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고, 깨달았으며, 말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와 누구보다도 깊이 예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귐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음악가 말러와 한 인격체로서의 말러를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깊이 알 만한 자리에 브루노 발터가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발터가 말러 해석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앞자리에 놓이는 것은 그 덕이 크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어느 지휘자의 것이 더 명연주냐에 대해서는 개인별로 이견이 많을 테지만요.

하여튼,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말러와 알게 된 것을, 또 자신이 말러한테서 음악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받은 수많은 영향을 두고서 이렇게 한마디로 단호히 고백합니다.

나의 전 생애에 내린 축복이었다’라고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발터는 말러라는 한 음악가, 한 인간을 ‘내가 생애의 그토록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는 사람, 결정적인 시기에 나의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 깊은 인품이 언제나 나와 함께 남아 있을 그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스승이자 선배인 말러를 향한 제자이자 후배인 발터의 존경과 애정이 참 뜨겁습니다.

읽다 보면, 더러 드러나는 마땅한 비판의 시각이나 견해도 이 존경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발터의 지성이 매우 성숙하고 깊다는 점 또한 넉넉히 미루어 헤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브루노 발터라는 훌륭한 필터를 통하여 새로운 말러를 만날 수 있고, 동시에 브루노 발터라는 불세출의 지휘자를 지휘봉이 아닌 펜을 든 필자로서 또한 새로이 보게 됩니다.

지휘자 발터가 들려주는 음악이 아닌 말 또는 글이 참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제가 그의 ‘전원교향곡’에서 느꼈던 것처럼, 타고난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인성 또는 예술적 감수성 덕이 아닌가, 하고 넘겨짚어 봅니다. *

(이 책은 뒤에 제목이 《구스타프 말러》라고 바뀌어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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