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37. 아름다운 침묵, 또는 침묵의 아름다움

- 사라 바론, 《로봇 드림》

by 김정수

B37. 아름다운 침묵, 또는 침묵의 아름다움 / 《로봇 드림》 - 사라 바론 지음, 놀

SF영화에서 로봇 또는 A.I.가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에 준하는 주요한 역할로 나올 때 그 로봇 또는 A.I.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캐릭터인 경우가 곧잘 있습니다.

이 계열에 속하는 영화로 〈바이센테니얼 맨〉(1999, 크리스 콜럼버스)과 〈A.I.〉(2001, 스티븐 스필버그)가 얼른 떠오르네요.

이 영화들에서 로봇 또는 A.I.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심지어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1991, 제임스 카메론)에서 그 무자비한 살인 기계인 터미네이터 T-800조차 마지막 순간 자신을 희생하는 매우 ‘인간적인’ 미덕을 발휘하여 인간을 눈물짓게 만들지 않습니까.

이 책, 아니, 이 만화책 《로봇 드림》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 로봇 또한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로봇은 아름다운, 또는 어른스러운 이별을 할 줄 아는, 또는 이별을 아름답게, 또는 어른스럽게 할 줄 아는 로봇이라는 점에서 여느 사례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만화책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2023, 파블로 베르헤르)이 풍부한 디테일에 다양한 음향과 음악으로 훨씬 더 다채롭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소리’가 없는 책만의 고유한 특장으로 고요하고 잔잔하게 독자를 감동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자 그대로 독보적입니다.

이 책은 ‘옮긴이’가 없습니다. 대사(臺詞)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소란스러운 지금 이 세상에서 이 책 속의 침묵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가장 순정한 형태가 ‘흑백 무성 영화’이듯, 만화 역시, 모든 회화가 그런 것처럼, ‘말’이 없는 그림만의 것이 가장 순정한 형태 아닐까요.

만화에서 말풍선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장치인지를 새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는 독서 체험이었습니다. 이 매우 드물게 맛보는 체험이 참 귀합니다. *

keyword
이전 12화B36. 오직 악보, 오직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