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연, 《촉진하는 밤》
P21. 내가 갈게 가서 들을게 – 김소연, 《촉진하는 밤》(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우리는 지금
말이 참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할 말을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듣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아나 봅니다.
‘내가 갈게 가서 들을게’라고
시인이 말하는 걸
보면요.
내가
할 말이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 할 말이 있구나.
해봐.
내가 들을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참 드물지 않나요?
심지어 시인은
그에 이어서
이렇게까지 말해줍니다.
‘내가 가서 더러워질게 조금만 기다려봐’라고요.
세상에,
더러워질 것까지도
불사하면서,
또는
감수하면서
듣겠다는 것,
들어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나한테
있다면
저마다 자기 할 말만
하느라고
귀가 따가울 만큼
소란스러운 이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들어야겠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달려가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시인은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내가 생각이 되어버린다’라고요.
세상에,
생각하던 내가
생각이 되어버리면
이걸
어쩐답니까.
울리지 않는 메아리?
그래서 시인은
분명하게 똥겨줍니다.
‘당신이 당신임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당신에게 새로이 생긴 유일한 목적’이라고요.
아,
이것인가 보네요.
가서 듣겠다고 말하는
시인의 본심이요.
당신을,
너를 위해서라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당신이 되기를,
네가 네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누군가 나한테
기다리라고,
가서 네 말을
듣겠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정말
얼마나 고마울까요.
그럼,
시인처럼 이렇게
느낄 수 있겠지요.
‘누군가의 응원이 미행하듯 나를 따라오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미행은
남몰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요.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준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
응원일 겁니다.
그런 응원을 받는다면,
그게 응원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살 만하구나’라고 하면서
한시름
덜 수 있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