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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0. 거짓말, 영화, 의기투합, 이 세 가지 매력

- 미타니 고키, 〈매직 아워〉

by 김정수

C50. 거짓말, 영화, 의기투합, 이 세 가지 매력 – 미타니 고키, 〈매직 아워〉(2008)

추억의 힘 혹은 영화의 힘

인간이 어린 시절의 불행조차 행복한 것으로 기억하는 까닭은 실제 경험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통념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기 때문이라고 올리버 색스는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신비로운 두뇌의 작용이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추억의 힘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마비 작용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긴 이런 작용이 없다면, 그래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과거의 고통이 전혀 완화되지 않는다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의 힘도 추억의 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영화 한 편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에서 힘들고 번잡스러운 일들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그렇게 하여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그 모든 과정의 고생을 한순간에 다 잊어버릴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힘 때문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매직 아워〉는 바로 그런 힘의 바탕 위에서 출발하는 영화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거짓말의 매력

참 여러 가지 매력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영화입니다.

우선, 거짓말의 매력입니다.

‘거짓말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명제는 너무 빤하여 심드렁합니다. ‘거짓말은 인간의 조건’이라는 명제는 조금은 철학적으로 들려서 그래도 좀 낫다는 느낌이긴 하지요.

어떻든 인간이 거짓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이 윤리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현실적인 필요성과 그 자체가 지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또 그것이 통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인간에게는 분명히 있는 거겠지요.

흔히 거짓말이 모티브인 영화가 매력적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배형준)의 매력도 바로 이 거짓말에 있는 셈입니다. 김하늘의 거짓말이 들통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끝까지 탄로 나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서로 부딪히면서 빚어내는 긴장감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되어 있는 형국이니까요.

이는 영화 속의 범죄가 공권력의 힘으로 저지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끝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속에 모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더러는 범죄가 완벽하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쪽이 더 크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현실이 아니라 영화 속의 일이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히트〉(1995, 마이클 만)에서 우리는 로버트 드 니로의 은행털이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계속 보게 됨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현실에서라면 당연히 알 파치노가 로버트 드 니로의 범법을 저지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어야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알 파치노가 로버트 드 니로를 끝내 잡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바로 이런 관객의 심리를 〈매직 아워〉는 절묘하게 건드립니다.

조직의 보스를 속여 넘기려는 츠마부키 사토시의 거짓말을 관객은 심지어 간절히 지지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거짓말이 탄로 나 그가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함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하여, 아슬아슬하게 그 거짓말이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계속될 때 우리는 어떤 쾌감마저 느낍니다. 역시 인간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쟁이인가 봅니다.

이것이 〈매직 아워〉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


영화의 매력

〈매직 아워〉의 두 번째 매력은 당연히 영화 그 자체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 만들기의 매력이지요. 실제상황과 허구의 상황을 이런 식으로 엮어놓은 영화가 또 있을까요.

비슷한 사례로 〈바르게 살자〉(2007, 라희찬)가 얼른 떠오릅니다. 여기서는 실제상황과 허구의 상황이 한데 엮여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이 두 가지 상황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이 그 엮임의 상황에서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실제는 실제대로, 허구는 허구대로 자기 존재감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헷갈릴 일이 없지요. 거짓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르게 살자〉의 독특한 점입니다.

하지만 〈매직 아워〉에서는 명백히 거짓말이 실제상황과 허구의 상황을 엮어주는 매개체 구실을 합니다.

요컨대, 누군가는 허구의 상황을 실제상황으로, 또 실제상황을 허구의 상황으로 오해하거나 착각해 주어야, 그러니까 믿어주어야 이야기가 성립되는 형국이라는 뜻입니다.

한데, 여기서 거짓말이 뿌리박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영화라는 점이 참 독특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사토 코이치)은 실제상황을 영화 속 상황으로 믿어주어야 하고, 다른 한 사람(니시다 토시유키)은 영화 속 상황을 실제상황으로 믿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이 양쪽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려 딱하리만큼 동분서주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맙니다.

이 동분서주의 과정이 이상하리만큼 매력적인 것은 이 과정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고스란히 대응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영화 만드는 현장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는 있어도 재미없는 영화 현장은 없다는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물론 그곳도 엄연한 노동의 현장이니 당연히 힘들고 고달프겠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만큼 즐거운 일터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영화 사랑하는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영화를 만드는 현장이 될 수밖에 없나 봅니다.

〈매직 아워〉는 바로 이 ‘즐거운 일터’를 실제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관객은 거짓말의 매력과 더불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매력에 흠뻑 젖어든 채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대로 영화가 무사히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확히 포개져 있는 이 기이한 국면―.

영화 속에서는 하루 가운데 가장 하늘이 아름답게 빛나는 해 질 무렵을 가리켜 ‘매직 아워’라는 명칭으로 부르지만, 저는 바로 이 국면 자체가 그대로 ‘매직 아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츠마부키 사토시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츠마부키 사토시가 거짓으로 감독 노릇을 하며 만드는 척하고 있는 영화가 무사히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둘 가운데서 도대체 어느 쪽이 더 간절한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의기투합의 매력

어쩌면 이것은 불필요한 군더더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사족이지요.

거짓말의 매력이든, 영화 만들기의 매력이든, 결국 이 둘은 모두 의기투합의 매력인 셈입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서로 힘을 합쳐 애를 쓰는 일 자체의 매력이지요.

설사 그것이 거짓말이든, 영화 만들기이든,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동료들과 함께 은행을 터는 것과 같은 범죄든,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이하리만큼 매력적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이면 범죄조차 무사히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히트〉 같은 영화에서 범죄가 공권력의 손으로, 또는 어떤 개인의 손으로 저지되는 순간의 실망감은 윤리의 차원에서 어떠한 반성도 소용이 없을 만큼 큽니다.

바로 이 의기투합의 매력을 〈매직 아워〉는 마지막 순간 말 그대로 대폭발의 불꽃놀이로 기립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거짓말이 탄로 나는 것도, 영화 만들기가 실패하는 것도 다 감수할 수 있지만, 의기투합이 무위로 돌아가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관객은 거짓말의 탄로와 영화 만들기의 실패가 빚어내는 실망감을 보상받습니다. 이 대목에서 감독의 선택은 훌륭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그야말로 마술 같은 순간(매직 아워!)이니까요.

더하여,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연극무대 같은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것은 덤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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