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22

- 22. 병원, 두 번째

by 김정수

22. 병원, 두 번째

가만히 눈치를 살핀다. 의사는 나를 부드럽게 대하려고 짐짓 애를 쓰는 기색이다. 틀림없이 그렇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흔히 취하는 그저 의례적인 친절과는 다르다. 수많은 환자들 가운데서 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태도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CT촬영 결과가 나왔을 때 의사는 앞에 나를 앉혀두고 마치 나무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분명히 그랬다. 나는 의사의 말을 그동안 내가 내 신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데 대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 몸을 함부로 다루며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마땅한 질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단단한 심지가 의사의 말 속에 오롯이 박혀 있었다. 일종의 비난이요 꾸중이었다.

한동안 계속 몸이 안 좋았다. 단순히 피로한 것과는 달랐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증세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일손을 놓고 며칠 쉬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순간이 있었다. 뱃속에 주먹만 한 덩어리 같은 게 만져진 것이 바로 그즈음이었다. 아니, 그제야 가까스로 그 덩어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덩어리는 진작부터 있었다. 더는 미루적거리고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침내 병원을 찾은 것은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이었다. 그 과정을 의사는 어리석은 시간 낭비로 여기는 듯했다. 나이가 있잖아요. 이제는 몸의 증상 하나하나가 예전과 의미가 달라요. 자칫 때를 놓치면 돌이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아마도 그렇게, 그런 취지로 말했던 것 같다, 의사는. 생애 전환기. 그래, 이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나라에서 쓰는 말, 공적인 용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엄중함을 처음에는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내가 놓인 자리에 대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명칭이요 개념이다. 어쩌면 내 삶의 내용이 새롭게 결정되는 지점에 내가 다다라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의 내 삶은 이제까지의 내 삶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요컨대 이건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만 하는 고비. 그렇게 마음을 다져먹었다. 어쩌겠는가. 선택의 여지란 없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 한 귀퉁이에는 설마 하는 기대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틀린 말이다. 차라리 공포였다. 섬뜩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한테 책임을 추궁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댓바람에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의사가 어떤 말들을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의사의 말투나 음색, 고작 그 정도를 가까스로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하나같이 친절함이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행여 환자가 받을지도 모르는 충격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다는 태도였다. 오히려 의사는 내가 되도록 깊이 충격받기를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뜻일 터였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환자인 나한테 자기 몸에 대한 또렷한 자각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뜻일 터였다, 어쩌면.

하지만 그때는 미처 거기까지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내 몸이 문득 엉뚱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몸속 깊은 어느 곳에서 뭔가가 삐끗 어긋나는 소리를 들었다. 날카로운 금속성. 태어나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충실히, 단단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몸속 복잡한 톱니바퀴의 한 축이 그 순간 느닷없이 덜컥 제 자리를 이탈한 것이다. 열차의 탈선. 처음 겪어보는 사태였다. 이어서 뭔가가 밀물처럼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현기증이라고 부를 생각은 나중에야 떠올랐다. 심하게 뱃멀미를 할 때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격렬하게. 순간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어느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조회 시간.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똑바로 줄을 맞춰 열중쉬어를 한 채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었다. 지난밤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결석할 정도는 아니라서 우선 등교는 했다. 그래도 조회에는 나가지 말고 교실에 앉아 쉬어야 했는데, 누가 봐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증세가 아니라서 선생님께 차마 말씀을 못 드렸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다가 결국 현기증을 못 이기고 쓰러졌다. 그 순간 나는 내 몸이 무너진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 순간 내 눈에 비친 하늘이 노란빛이었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니, 정신은 선생님한테 업혀 양호실로 가는 복도에서 이미 돌아왔다. 옆에 같은 반 아이들 몇이 함께 달리고 있는 것까지 나는 실눈을 뜨고 확인했다. 하지만 그 당장 정신이 돌아온 척하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업힌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섣불리 눈을 뜨기보다는 차라리 그대로 가만히 있는 편이 사태를 더 완벽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섰다. 정신이 돌아왔다고 다짜고짜 고개를 번쩍 들고, 이제 괜찮아요, 하고 말하는 것은 거기까지 나를 업고 온 선생님의 노고를 헛되이 만드는 일이지 싶었다.

그때는 어렸다. 지금 나는 어른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뻔히 보고 있는 자리에서 창피하게 맥없이 쓰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알아서 뭐라도 조치를 취해야 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덥석 가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어쩌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짐짓 틀어막으려는 몸짓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정작 흠칫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몸짓이었다. 내 두 손은 그 순간 주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독립된 생명체였다. 설사 상대가 내 몸속을 훤히 들여다볼 권한을 지닌 의사라 할지라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내가 그런 괴이쩍은 동작을 과감히 취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의사의 말과 나의 몸짓. 두 개의 충격이 겹친 셈이었다. 나는 의사의 말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한테도 놀랐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내 몸이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얼굴과 목덜미에서 비어져 나오는 땀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이 벌써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그걸 느끼기가 무섭게 내 손은 벌써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덜미에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기 시작했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묵직한 추를 달아맨 것처럼 팔이 무거웠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사방이 핑글핑글 돌고 있었다. 눈의 초점을 한 군데에 맞출 수 없었다. 눈동자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의식을 잃나 보다 싶었다.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본능적인 노력이었다. 다른 것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의사 앞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의사가 고스란히 다 보고 있을 터였다. 그게 의사한테는 어떤 신호였을까. 나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는 바로 그 순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의사는 그때 내 진료기록부에다 일반인이 해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자로 그 점에 대한 주의 사항을 알뜰히 적어놓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 요주의 환자가 된 셈이다.

그때 그 길이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진료실 건너편의 작은 별실까지 걸어가는 동안이 생각보다 짧아서 나는 속으로 가볍게 소스라친다. 처음 그 길을 걸을 때는 현기증으로 휘청거렸다. 도중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온몸 구석구석의 기운을 남김없이 끌어모아야 했다. 그때의 위태로웠던 내 뒷모습 또한 의사는 놓치지 않고 보아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머쓱하다. 어쨌든 그때 나는 끝내 쓰러지지 않고 내 힘으로 걸었다. 멀고 먼 길이었다. 그 길이 지금은 뱃가죽에 흉한 걸 달고 있는 몸으로 걷는데도 길지 않게 느껴진다. 신기하다, 이 감각의 혼동이.

약간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젊은 전공의가 친절하게 내뱉는 말을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듣는다. 조금 귀에 설다. 그러고 보니 담당 의사도 전공의도 다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변한 것 같다. 태도도 생김새도, 목소리나 말투도. 이를테면 토씨나 접속어 따위를 좀 더 세련되게 손질한 문장인 셈이다. 이렇다 하게 고친 부분이 얼른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렇게 손질을 한 문장은 그 이전의 문장에 견주어 읽기가 한결 수월한 법이다. 그렇게 티가 나지 않도록 손질하는 것이 필자의 의도에 손상을 주지 않는 훌륭한 교열이다. 어쩌면 내가 환자로서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단순히 우중충한 날씨 탓일 수도 있다. 나도 그렇지만, 담당 의사도 정공의도 간호사도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다들 어딘가 모르게 한 뼘쯤 차분히 가라앉은 기색이다. 우선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를 만큼 기쁜 것도 아니다. 어째서 이럴까.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가 즐거우리라는 것은 역시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의 고질적인 편견일까.

체액 주머니를 제거하는 과정은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너무도 간단하다. 나는 또 한 번 소스라친다. 병상이 딱딱하다. 그 짧은 동안에도 몸이 배기는 느낌이다. 등을 대고 눕는 순간부터 몸은 이미 긴장하기 시작했다. 젊은 의사는 마취할 생각이 없다. 그래도 되는 모양이다. 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 내 아랫배가 음모의 윗부분까지 다 드러난다. 부끄러움 따위는 이제 없다. 나는 환자다. 떳떳하다. 무뎌진 것과는 다르다. 이 떳떳함에 이제 나는 제법 익숙해져 있다. 이윽고 뱃가죽에서 뭔가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프다기보다는 홀가분한 쪽에 더 가깝다. 나는 젊은 의사의 처치가 다 끝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을 작정이다. 의사가 간호사한테서 받은 소독약으로 솜을 적셔 관이 꼽혀 있던 부위를 몇 차례 넓게 문지른다. 그 과정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그려본다. 얼음찜질을 받듯 아랫배 전체가 차끈하다. 거기서부터 혈관 전체로 서늘해진 피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춥다. 마무리는 소독약 자국이 하나도 안 보이게 할 만큼 넓은 드레싱 밴드의 몫이다. 조금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눈을 뜬다.

병원 로비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빗줄기가 굵다. 소리가 요란하다. 마음이 가볍다. 아니, 가벼워진 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온전한 내 몸이 되었다. 자유롭다. 그렇다고 기운까지 돌아온 것은 아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인정한다. 받아들인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어느 집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어머니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하다. 내가 자리를 훌훌 털고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쯤은 어머니나 나나 잘 알고 있다. 의사의 말도 그랬다. 몇 달쯤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체액주머니를 제거한 것으로 다 끝난 일이 아니라고.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약도 계속 먹어야 한다고. 나도 아직은 어머니 곁에서가 아니면 적절히 섭생을 하며 지내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이건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은 다른 까닭에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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