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병원, 첫 번째
21. 병원, 첫 번째
체액 주머니에는 아래위로 두 개의 고무 밴드가 달려 있다. 각반 두르듯 거기에 발을 끼워 주머니를 종아리나 정강이 부위에 찰싹 들러붙게 차면 그대로 바지를 꿰입을 수도 있고, 거치적거리고 불편하나마 제법 걸을 수도 있다. 물론 뱃가죽에 관이 꼽혀 있으니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매기는 어렵다. 그저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만 조일 수 있을 뿐이다. 자세가 엉거주춤한 것은 속절없는 노릇이다. 허리를 곧게 펴려고 들면 대번에 뱃가죽이 쭉 당겨지면서 아프다. 포기한다. 몸이 긴장하는 걸 느낀다. 숨쉬기가 버겁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마루에 나와 서서 나는 어머니가 외출 채비를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아내가 이따금 와서 머리를 감겨주었지만, 하도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머리 모양이 흉하다. 결국 모자를 쓰기로 했다. 넓은 챙이 낯을 어지간히 가려준다. 그나마 겨우 마음이 놓인다.
마침내 병원에 가는 날이다. 조마조마하다. 의사가 체액 주머니를 제거해 줄지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체액이 더는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수첩에는 체액의 양이 0이라고 당당히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는 안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하긴 내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로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오랜만의 외출이다. 그동안 한 번도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 조금 두렵다. 잘 걸을 수 있을까. 날이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다행이다. 아직 환한 햇살 속에 나설 자신은 없다.
어릴 때부터 나는 흐린 날, 비 오는 날이 좋았다. 햇살이 눈부시게 환한 날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발가벗은 몸으로 사람들 앞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 체육 시간을 꺼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밝은 햇살 속에 몸을 움직이는 일이 너무나 싫었던 나머지 언젠가 한 번은 꾀병을 앓은 적도 있다. 통지표의 가정 통신란에 ‘내성적’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던 내가 무슨 용기로 그런 꼼수를 감행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신기했던 것은 꾀병을 앓기로, 그러니까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정말로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일까. 갑자기 온몸에서 썰물처럼 기운이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웠다. 짝이 나를 보고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야, 너 얼굴 완전 눈사람이야.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그 와중에도 속으로 쿡 웃었다. 왜, 백지장이 아니고? 나는 떳떳해졌다. 교실에 그냥 남아 있거나,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체육을 못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양호실에 가서 누워 있는 편이 훨씬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짐짓 짝의 부축을 받고 양호실로 갔다. 그러면 녀석의 입을 통해서 내 소식이 전해질 테니 굳이 내가 직접 선생님께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는 속셈이었다. 거짓말처럼 실제로 몸이 무거웠다. 양호실까지 이어지는 복도가 한없이 길었다. 싫지 않았다. 딴에는 몸을 조금이라도 더 혹사시켜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면서도 이것으로 오늘 체육은 면제라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러는 중에도 속은 계속 메슥거렸다. 하지만 게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복도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셨다. 꾀병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꾀병을 앓을 필요가 없었다. 운동장에서 체육을 못하니 교실에서 자습을 하거나 교과 내용과 상관없이 선생님이 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꾀병조차 앓을 필요가 없는 비 내리는 날을 나는 늘 손꼽아 기다렸다. 내 소망은 운 좋게 더러는 이루어졌지만, 대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소망이 이루어진 날이다. 아침인데도 집 안이 해 질 녘 모양 어둑어둑하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조금씩 더 짙어진다. 하지만 내 몸은 그 기운을 반긴다. 느낄 수 있다. 아직 허한 것이다. 설사 오늘 체액 주머니를 제거한다고 할지라도 몸이 온전하게 회복될 때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직 인내심을 버릴 때가 아니다.
옷을 다 차려입고 안방에서 나온 어머니가 나를 부축하려다 말고 밖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린다. 아직 못 잡았나? 멀리까지 걷기 힘든 나를 위해 아버지가 택시를 잡아타고 골목 안까지 들어오기로 되어 있다. 그때 여동생이 빠끔히 열려 있는 대문을 소리 없이 밀고 앞마당으로 성큼 들어선다. 아이들은 어쩌고? 어머니가 큰 소리로 묻고, 동생이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한다. 위로 둘은 학교에 갔고, 막내는 지금 막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오는 길이란다. 갑자기 그것으로 집 안이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반가운 것이고, 여동생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어떻게 알고 왔을까. 물론 반갑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꼴을 또 보여주어야 한다. 환자는 이런 느닷없는 상황에서 적절히 자기 방어를 할 수가 없다. 어쩌겠는가.
왔네, 가자.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닫으며 나를 보고 말한다. 멀리 골목 어귀에 들어와 있을 택시의 엔진음이 낮게 들리는 것도 같다. 나를 부축하려는 어머니의 손길을 나는 슬그머니 뿌리친다. 동생의 눈길이 의식된다. 쉽지는 않으나마 택시가 서 있는 곳까지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 몇 차례씩 화장실 드나드는 것으로 걷는 연습은 어지간히 되어 있다. 나는 내 몸을 믿기로 한다. 현관에서 어머니가 우산을 챙겨 든다. 비가 막 듣기 시작하는 기척이다. 마침내 집 밖으로 나선다. 골목이다. 때 묻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처럼 문득 눈앞 풍경이 뿌옇고 어둑어둑하다. 꼭 날이 흐려서만은 아니다. 시력이 나빠진 느낌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다. 걷는다.
풍경이 낯설다. 아버지의 지시대로 택시는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 거쳤던 길을 고스란히 되밟아가고 있다. 익숙한 길인데도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방향보다는 역시 색깔 때문이다. 아마 맑은 날이었다면 건물들은 조금 더 선명하고, 가로수들은 한결 더 짙푸른 색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계절이 바뀔 채비를 하고 있는 탓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날짜 감각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시일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여기로 오던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달력을 보지 않았다. 이따금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한 적은 있지만 날짜를 눈여겨본 기억은 없다. 엄연히 외래진료 예약일이 있으니 굳이 애를 쓴다면 숫자로는 계산을 할 수 있을 테지만, 감각으로는 그 간격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차창에 빗방울들이 자꾸 날아와 들러붙는다. 기시감과 낯선 느낌이 공존한다. 앞자리에는 아버지가 앉았고, 내 옆에는 어머니가 앉아 있다. 어머니 옆에 앉은 여동생을 빼면 병원에서 집으로 올 때와 똑같은 구도다. 하지만 내 기분은 너무나 다르다. 체액 주머니를 제거해 주리라는 기대감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들지는 않는다. 어느 쪽인가 하면 차라리 우울하다고 해야 맞다. 그저 날씨 탓이라고만 하고 말기에는 어딘가 막다른 궁지에 몰린 기분이 지나치게 강하다. 어째서 이럴까.
문득 울고 싶어진다. 우울증일까. 퍼뜩 떠오른 생각에 나는 속으로 살짝 소스라친다.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는 모른다. 그건 환자의 뜻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환자의 기분에 맞추려고 의사가 판단의 결과를 바꾸는 사태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낯에 엉겨드는 거미줄을 떨쳐내 버리려는 듯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한다. 차창에 와닿아 흘러내리는 빗물을 하염없이 구경한다.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의사의 눈빛에 망설임이 서린다. 아주 짧은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진 그 망설임을 유감스럽게도 나는 눈썰미 좋게 덥석 낚아채고야 만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예약증에 기록된 지시 사항대로 가장 먼저 채혈실에 들러 피를 뽑혔다. 그 검사 결과가 이제 나온 것이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의사의 입술이 조금 오물거리는 것도 같다.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인의 하명을 기다리는 종의 심정이 된다. 어떤 처분이 내리든 나는 거기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 무력감이 몰려온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선뜻 확신을 못 하겠다는 표시 같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회복이 더뎌서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도 보인다. 의사가 시간을 끈다. 어쩌려는 것일까.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갈데없는 환자의 마음이다.
이윽고 의사가 모니터에서 눈을 뗀다. 천천히 의자를 내 쪽으로 빙글 돌리고는 나를 마주 본다. 그런 채로 오 초쯤 시간이 더 흐른다. 견디기 힘든 침묵, 참아내기 힘든 눈길이다. 나오지는 않지만……. 의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도로 입을 닫는다. 체액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 고비다. 나는 조마조마해진다. 내 등 뒤에는 여동생이 서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동생이 그렇게 조치했다. 내 마음도 그랬다. 다행이다 싶다. 이런 긴장된 침묵을 어머니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의사 옆에는 간호사와 이제는 낯익은 젊은 의사가 다소곳한 자세로 나란히 서 있다. 역시 의사의 하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당연히 나와는 다른 심정으로.
의사는 말에 앞서 고개부터 몇 차례 끄덕인다. 마치 우선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확신할 필요가 있다는 듯이. 이윽고 의사가 뭔가 지시하려는 것처럼 손을 든다. 젊은 전공의가 움찔하고 먼저 반응한다. 이어 간호사도 의사 쪽으로 윗몸을 기울이며 한 발짝 다가선다. 제거해 드리지. 마침내 의사의 하명이 떨어졌다. 나는 의사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재빨리 곱씹어본다. 그 의미를 내가 미처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도 전인데 전공의는 벌써 어디론가 서둘러 자리를 뜨고, 간호사는 팔을 뻗어 나를 안내하려고 한다. 이리 오시지요. 간호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의사를 바라본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직하게 뭐라고 말한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말을 한 것인지 입만 오물거린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의사의 입가에 희미하게 배어 나온 웃음기만이 내 망막에 잔상으로 남는다.
의사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 밖으로 나서는데 여동생이 의사한테 다가가 뭐라고 말을 거는 모습이 힐끗 보인다. 그 짧은 순간 여동생의 존재를 잊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궁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드렁하다. 어느 쪽이 내 진짜 마음인지 알 수 없다. 오빠를 위해서, 오빠의 증세에 관해서 나름대로 묻고 싶은 사항이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한테로 모인다. 그렇게 느낀다. 어떤 눈빛들인지 고개를 들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어쩐지 아까보다 좀 더 북적이는 것 같다. 숨쉬기가 조금 거북하다. 거기 어딘가에 섞여 있을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다 무시하고 나는 간호사의 옷자락만 보면서 내처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