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47. 그 말에 그냥 눈물이 나

-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

by 김정수

P47. 그 말에 그냥 눈물이 나 -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 시인선 445, 문학과지성사)

예,

세상에는

아니,

우리 각자한테는

그런 말이

정말

있을 겁니다.

듣기만 하면

그냥

눈물이 나는

말이요.

그래서

시인의 이 고백이

아프고

눈물겹습니다.

그 말에 그냥 눈물이 나’라는 고백이요.

저도 ‘그 말’이

있든요.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 말’이요.

여러분도 지금

한 번

속으로 가만히

떠올려보시지요.

이때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일 수도,

슬픔의 눈물일 수도,

분노의 눈물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그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눈물이면

충분한 것을요.

눈물이 있어야

비로소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

눈물 없는 인생이

무슨 삶이랍니까.

그 말에 그냥 눈물이 나’라는

시인의 고백에

그냥

눈물이 나네요.

그러니

그 말’을 해준

상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찌

이상하겠습니까.

당신이 날 안아줄 거라고 믿는다’라는 말을요.

듣기만 하면

그냥 눈물이 나’는

바로 ‘그 말’을 해준

상대라면

예,

얼마든지

나를 안아주지

않을까요.

아니,

아무 말 않고

그저

울고만 있어도

알아서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줄 겁니다.

이제 비로소

시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수많은 이름 중 가장 슬픈 이름은 너라는 이름이야’라는 말을요.

아,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합니다.

‘나’와 ‘너’에 대해서요

내가 상대를

너라고 부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상대가 나를

너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나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두 인칭대명사는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르다는

아니겠어요.

‘나’와 ‘너’가

서로 다르다는 뜻.

상대가 ‘나’를

‘너’라고 부르는

순간

‘너’라고 불린 ‘나’는

‘나’를 ‘너’라고 부른

그 상대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인식이

‘너’라고 불린 ‘나’를,

시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기어이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합니다.

내 수많은 이름 중 가장 슬픈 이름은 네가 불러준 이름이야’라고요.

아마도 그래서

‘나’는 ‘당신’한테

안기고 싶었나 봅니다.

둘 사이의 거리를

가장 가깝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예,

서로 안는 것이지요.

이쪽이 저쪽을,

저쪽이 이쪽을,

예,

안아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둘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시인은

철없는

아이가 아니에요.

새삼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요.

삶은 미묘한 차이를 견디는 일이다’라고요.

아,

시인은

견디기로 한 거네요.

견뎌야 한다는 걸

아는 거네요.

‘나’와 ‘너’의 거리를

‘나’를 ‘너’라고 부르는

당신’과 ‘나’ 사이의

차이를

견뎌야 하다는 걸

말입니다.

견디는 건

결국

참는다는 것이고,

참는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정의라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여,

시인은

헤어지면서 다정해지는 습관’을

들이기로 한

모양이네요.

왜냐하면,

헤어져야 하니까요.

‘나’와 ‘너’는

서로 다른

존재니까요.

언젠가는,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하니까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왜 있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날 안아줄 거라고 믿는’ 나는,

시인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다정해지’기로 합니다.

나아가

숫제 그것에,

그 ‘다정’에

습관’을 들이기로 합니다.

아마 그것이

헤어짐을

부정하는

시인만의

비결인가 봅니다.

그럼 이제

생각해보세요.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이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당신’에게서 나온 것인지를요.

나는 죽어서도 너를 떠올린단다.

저는 어쩐지

이 말을

분명히 ‘날 안아줄

나처럼,

나만큼이나

다정’한

다정해지’기로 한

아니, 숫제

다정해지는 습관’을

들이기로 한

바로 ‘당신’이 한

말이라고

믿고 싶네요.

죽어서도

‘나’를

떠올린다면,

떠올려준다면,

그런 ‘당신’한테라면

예,

온 마음으로

안기고 싶습니다.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P46. 자살은 매일 해야 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