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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88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88

by 김정수

CA936. 루벤 웨스틀룬드, 〈슬픔의 삼각형〉(2023)

아마 이 영화와 비슷한 사례를 찾으라면 윌리엄 골딩의 장편소설 《파리 대왕》이 아닐까. 이 영화는 그 주제가 무엇이든, 또는 그 주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든, 하나의 ‘우화’다.


CA937. 국동석, 〈공범〉(2013)

그가 저지른 저 유괴라는 용서받기 힘든 범죄를 자기 딸한테 끝까지 숨기는 것은 단지 공소시효 때문일까. (설마!) 그도 아는 것이다. 아버지로서 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딸을 지키는 과정을 통하여 그 딸은 속절없이 아버지의 공범이 되고 만다. 이는 필연적인 사태다. 여기에다 굳이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CA938. 크리스토퍼 맥쿼리, 〈잭 리처〉(2012)

이 영화의 최종 빌런 역에 왜 뉴 저먼 시네마의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를 캐스팅한 것일까. 역시 톰 크루즈는 아무리 다른 역으로 나와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이단 헌트를 조금이라도 닮았을 때 가장 빛난다. 그리고 톰 크루즈의 여성 조력자는 그 능력치와 감정의 양태에서 007의 여성 조력자와 분명히 다르다는 것―.


CA939. 에드워드 즈윅, 〈잭 리처: 네버 고 백〉(2016)

이 영화에서 여성 조력자인 군인 역에 〈어벤져스〉 시리즈의 코비 스멀더스를 캐스팅한 것은 어쩌면 〈잭 리처〉(2012)의 여성 조력자 로자먼드 파이크의 직업이 변호사였던 것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일까. 그래도 톰 크루즈에게 혼외 자식 설정까지 덧붙여 멜로드라마스러운 긴장감까지 섞어놓은 것은 무슨 극적 필요성에서였을까. 이를 감독이 〈가을의 전설〉(1995)의 에드워드 즈윅으로 바뀐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CA940. 한준희, 〈차이나타운〉(2015)

이 영화를 박보검이나 김고은이나 엄태구의 출발로만 보기에는 김혜수의 또 다른 출발의 성격이 워낙 도드라진다. 언제나 그렇듯, 출발도 도전이지만, 새 출발은 더 힘겨운 도전이다. 이미 출발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출발. 그런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쌓아 올린 것을 죄다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굳이 차이나타운이어야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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