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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15. 2024

經(경)9. 어떤 사람을 들어 써야 하는가?_1

  - 거이소지 이소부지 인기사저 / 《논어》 〈자로편〉 제2장

經(경)9. 어떤 사람을 들어 써야 하는가?_1 / 擧爾所知(거이소지) 爾所不知(이소부지) 人其舍諸(인기사저) - 《論語(논어)》 〈子路篇(자로편)〉 제2장

   ‘擧爾所知(거이소지) 爾所不知(이소부지) 人其舍諸(인기사저)’는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 제2장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거/이/소지 이/소/부지 인/기사저’ 정도로 끊어 읽는데, 2자와 2자로 끊어서 ‘거이/소지 이소/부지 인기/사저’로 읽어도 문제 될 것은 없겠습니다. 이쪽이 전통적인 끊어 읽기에 가깝기는 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정도로 번역합니다.

   “네가 아는 이를 들어 쓰면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사람들이 놔두겠느냐?

   이를 바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맨 앞의 ‘들 거(擧)’자는 여기서 ‘기용(起用)하다’나 ‘등용(登用, 登庸)하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둘 다 인재를 선발하여 적재적소에 쓴다는 뜻의 말이지요. 저는 우리말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들어 쓰다’라고 살짝 풀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이 ‘기용’과 ‘등용’에 대해서는 국어사전의 풀이에 약간의 편차가 있습니다. ‘기용’은 어떤 사람을 높은 자리에 올려 쓴다는 의미고, ‘등용’은 단순히 인재를 골라 쓴다는 의미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쓰이고 있는 이 두 말의 의미 차이는 실제로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기용’은 ‘선수 기용’ 정도로, ‘등용’은 ‘인재 등용’ 정도로 통상 쓰이니까, 서로 의미는 같아도 각기 쓰임새가 약간 다르다는 정도로만 구별하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글자가 쓰인 단어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인재 선발 시험을 가리키는 ‘과거(科擧)’라는 명칭을 들 수 있겠지요?

   다음의 ‘爾(이)’자는 ‘너(당신, 그대)’라는 이인칭 대명사입니다.

   문제는 ‘바 소(所)’자입니다. 이 글자가 ‘알 지(知)’자와 합쳐져서 ‘所知(소지)’가 되면 그대로 ‘아는 바’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所(소)’자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바’, ‘것’, ‘곳’ 따위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저는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좀 평범한 느낌이 들어서 다른 말 뒤에 붙어 사람을 뜻하는 구실을 하는 의존 명사인 ‘이’를 고른 것입니다.

   이제 다 합쳐서 ‘擧爾所知(거이소지)’ 전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정도가 되겠습니다.

   ‘네가 아는 이를 들어 쓰다.’

   여기서 ‘爾(이)’자를 ‘당신’이나 ‘그대’라고 하지 않고 ‘너’라고 한 것은 이 ‘爾(이)’자가 가리키는 사람이 공자님의 제자인 중궁(仲弓)이기 때문입니다. 중궁은 나이가 공자님보다 스물아홉 살 아래입니다. 스승이 자신보다 스물아홉 살 아래인 제자한테 하는 말이므로 ‘당신’이나 ‘그대’보다는 ‘너’가 아무래도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지요?

   다음의 ‘爾所不知(이소부지)’는 앞의 ‘爾所知(이소지)’와 구조가 똑같으니, 그대로 ‘네가 알지 못하는 이’라고 번역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이 ‘不知(부지)’를 그냥 ‘모르는’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다 새긴다는 기분으로 ‘알지 못하는’이라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마지막의 ‘人其舍諸(인기사저)’가 조금 어렵습니다.

   우선 ‘집 사(舍)’자는 여기서 ‘버릴 사(捨)’자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처럼 한문에서는 음(音)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모양의 두 글자가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역사적으로, 처음에는 한 글자가 여러 의미로 쓰이다가 후대에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 그 여러 의미 가운데 특정한 의미를 새로운 글자가 맡도록 하는 식의 분화와 변천이 한문에서는 계속 있어 왔습니다.

   여기 나오는 ‘舍(사)’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애초에는 이 글자가 ‘집’과 ‘버리다’라는 의미로 다 쓰이다가 나중에 ‘捨(사)’자를 만들어서 ‘버리다’라는 의미를 맡도록 하고, ‘舍(사)’자는 ‘집’이라는 의미로만 쓰이도록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 글일수록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글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내용 이해나 해석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의 ‘모두 제(諸)’자는, 이달충(李達衷)의 《愛惡箴幷序(애오잠병서)》에 나오는 마지막 구인 ‘盍亦求諸己(합역구저기)’에서처럼 ‘저’라고 읽어야 합니다. 물론, 요즘은 그냥 ‘제’로 읽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저는 꼭 구별해서 ‘저’로 읽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저’로 읽을 때는 대개 이 글자를 ‘之於(지어) 또는 之乎(지호)’의 준말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미 맥락상 여기서는 의문사처럼 쓰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人(인)’자 다음의 ‘그 기(其)’자는 바로 앞의 ‘爾所不知(이소부지)’ 곧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럼 ‘人其舍諸(인기사저)’의 ‘其(기)’는 ‘舍(사)’의 목적어로 보아야겠지요. 따라서 ‘人其舍諸(인기사저)’는 ‘사람들이 그를 놔두겠느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그’는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其舍(기사)’는 ‘그를 버리다’니까, 타동사와 목적어의 순서를 제대로 잡으려면 ‘舍其(사기)’로 해야겠지만, 한문에서는 이렇게 순서를 무시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其(기)’자를 무시하고 그냥 ‘사람들이 놔두겠느냐?’라고 번역해도 의미가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앞에 ‘其(기)’에 해당하는 ‘爾所不知(이소부지)’가 있으니까요.

   또, 여기서 ‘놔두겠느냐’는 ‘버려두겠느냐’ 또는 ‘내버려두겠느냐’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는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라는 뉘앙스를 조금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놔두겠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이 세 개의 구를 합쳐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구와 둘째 구의 연결입니다. 왜냐하면, 둘째 구가 첫째 구가 아니라 셋째 구와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첫째 구인 ‘네가 아는 이를 들어 쓰다’와 둘째 구인 ‘네가 알지 못하는 이’가 서로 호응한다고 보고 연결하면, ‘네가 아는 이와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들어 쓰다’가 됩니다.

   이러면 셋째 구까지 합친 전체 문장은 ‘네가 아는 이와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들어 씀을 사람들이 놔두겠느냐?’ 정도로 번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번역문대로라면, 공자님은 지금 제자한테 너는 아는 사람만 등용하든지,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사람만 등용하라고 조언하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한눈에도 문장의 의미가 요령부득으로 이상하지요?

   이제 둘째 구인 ‘네가 알지 못하는 이’와 셋째 구인 ‘사람들이 그를 놔두겠느냐?’를 어색하지 않게 연결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이, 그를 사람들이 놔두겠느냐?’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 번역문을 가운데 쉼표 없이 더욱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다듬으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사람들이 놔두겠느냐?’

   물론 여기서 ‘사람들이’를 ‘남들이’라고 해도 별문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 전체를 앞뒤 논리 관계를 고려하여 토씨까지 맞추어서 번역하면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네가 아는 이를 들어 쓰면 네가 알지 못하는 이를 사람들이 놔두겠느냐?

   중궁이 알지 못하는 이를 사람들이 놔두지 않는 사태는 중궁이 아는 이를 등용한 것의 결과이기 때문에 ‘들어 쓰면’이라고 조건문의 모양새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번역문만으로 그 속뜻, 그 진정한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글에서 바로 이 점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과연 ‘어떤 사람을 들어 써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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