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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17. 2024

15.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다

  - 노먼 메일러, 《예수의 일기》

15.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다 / 《예수의 일기》 - 노먼 메일러 지음, 조성기 옮김, 민음사

성경의 순정 부분

   성경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순정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신약, 그 가운데서도 복음서, 또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성경책에서 보통 붉은빛 계통의 색으로 특별히 구별하여 인쇄해 놓은 탓에 얼른 눈에 띄는 부분 말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뭐니 뭐니 해도 성경을 읽을 때 언제나 가장 마음에 큰 위로가 되고 깊이 감동을 받는 대목은 역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마치 《논어》에서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공자님의 말씀이 그러한 것처럼요.

   어찌 보면, 바로 이 가장 순정한 부분을 위하여 성경 전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의 핵심이지요.     


기록의 태도

   한데, 복음서의 저자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르포르타주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제외한 다른 부분,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인 양 너무나 무덤덤하리만큼 객관적인 태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좌판을 뒤엎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절)

   분명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는 장면입니다. 한데, 요한은 그 모습을 그저 이렇게만 묘사해 놓았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14절, 15절)

   어디에도 그 순간 예수님께서 ‘화를 내셨다’라거나, ‘눈을 부릅뜨셨다’라거나, ‘고함을 치셨다’라는 따위 예수님의 감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묘사나 표현이 없습니다.

   요는, 예수님의 마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죄다 행동에 대한 겉보기의 묘사와 말씀의 직접 인용뿐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이 화가 나셨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물론 헤밍웨이가 구사한 것과 같은 건조한 하드보일드 문체도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지요. 그래도 이것이 소설의 한 장면이라면 아무래도 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소설가의 묘사

   복음서에서는 대체로 모든 것이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거나 행동을 하실 때 과연 어떤 마음이셨을지, 그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를 얻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칫 오해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깊이나, 지식의 양이나, 상상력이나, 안목이나, 공감 능력이나, 감식안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적 상상력의 소유자인 누군가가 예수님의 마음을 어지간히 묘사해 준다면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바로 이 일을 해준 사람이 장편소설 《나자(裸者)와 사자(死者)(The Naked and The Dead)》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노먼 메일러이고, 그 책이 바로 이 《예수의 일기》입니다.

   하지만 이 일종의 역사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각주를 달듯 논평을 해놓은 책이 아닙니다.

   제목에 ‘일기’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도 미루어 알 수 있듯이(원제는 ‘The Gospel According To The Son’입니다) 이 책은 예수님께서 1인칭 화자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시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고백이요 독백인 셈입니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예수님의 육성을 눈앞에 앉아 직접 듣는 듯한 감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드러내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수님의 삶에 관해서라면 복음서는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늘 들어온 이야기일 테고, 교회와 무관한 사람이라도 평소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숱하게 봐왔을 터라,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어지간히 잘 알고 있다고, 심지어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셨고, 어떻게 자라셨고,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떻게 부활하셨고……

   하지만 이 모두는 어디까지나 겉보기의 삶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삶의 각 국면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우리는 감히 알지 못합니다.

   신앙심으로, 인지상정으로, 이심전심으로, 신학적인 안목으로, 혹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나름대로 간신히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을 따름이지요.

   《예수의 일기》는 바로 그 삶의 각 국면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예수님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이 소설을 쓴 노먼 메일러의 재능과 솜씨도 바로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노먼 메일러가 소설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거의 각색의 수준으로까지 함부로 손질한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작가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경외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놀라운 이적의 상황들보다는, 제자들과 가족을 포함하여 여러 인간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본인의 육성을 빌려 가만히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에서 작가의 솜씨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것도 그런 밑바탕의 태도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베드로, 유다, 어머니

   예수님의 예언대로 새벽에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야 만 수제자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때 수탉이 울었다. 아침이 아니라 밤인데도 수탉이 울었다. 그 순간 베드로는 내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가 현관을 떠나 슬피 울고 또 울었다. 베드로의 슬픔이 나에게로 몰려와 순식간에 창살 끝처럼 나를 찔렀다. 베드로는 수탉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시간을 생각하며 평생 동안 속죄하며 지내게 될 것이었다.’

   복음서에서는 대단히 무미건조하게 묘사되어 있는 문제의 대목이 얼마나 피가 돌고 살이 붙은 정감 어린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을 부인한 수제자 베드로의 찢어질 듯한 슬픔과 그 베드로가 장차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널리 헤아리시는 스승 예수님의 아픈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제자인 가룟 유다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도 읽는 이의 가슴을 저밉니다.

   ‘그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불과 세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유다가 무엇을 뉘우쳤는지, 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였는지, 아니면 내게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였는지,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온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칩니다. 배신한 제자를 가슴이 찢어질 듯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사람들한테 복음을 전하고 계신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어머니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내 형제인가?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내 형제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며 어머니이다.”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순간 예수님의 태도는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렇다 할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채 무심히 지나치는 이 대목을 두고, 그 순간 예수님의 속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작가는 이렇게 상상하고 헤아립니다.

   ‘내가 한 말을 어머니가 다시 들었을 때 어머니가 울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그 말을 도로 주워 삼켰으면 하고 내가 얼마나 바랐던지. 어머니와 내가 함께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는 너무도 많은 걱정 속에 살았다.’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깊은 애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모든 것이 이런 식입니다. 이런 사려 깊은 헤아림으로 가득 찬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아마 자기도 모르는 새 예수님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을, 아니, 어느 틈에 우리한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계신 예수님을 새삼스럽게 알아보고, 그 기쁨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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