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수 Jun 19. 2024

16. 내 삶의 시대 구분법, 이십 대의 동경 이야기

   - 오쿠다 히데오, 《스무 살, 도쿄》

16. 내 삶의 시대 구분법, 이십 대의 동경 이야기 / 《스무 살, 도쿄》 -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오즈가 아닌 오쿠다의 ‘동경 이야기’

   아마 이 소설의 의미나 본질을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스무 살’보다는 ‘이십 대’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제목만으로는 ‘이십 대’보다는 ‘스무 살’이 더 명확하고 쿨한 이미지로 다가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소설은 1959년생 주인공의 열아홉 살 시절 어느 날에서부터 그가 서른을 불과 한 주 앞둔 어느 날까지의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이 소설의 원제가 ‘동경 이야기(東京物語)’라는 점은 지적해 두어야겠습니다. 맞습니다. ‘세계영화베스트 10’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며, 일찍이 〈파리, 텍사스〉(1984)의 감독 빔 벤더스가 〈도쿄가〉(1985)라는 다큐멘터리로 기린 바 있는 감독인 오즈 야스지로의 걸작 〈동경 이야기〉(1953)와 똑같은 제목입니다. 도쿄 모노가타리―.

   그러니, 번역하는 분이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이런 혼동을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쿠다 히데오의 ‘동경 이야기’입니다. 참 즐거우면서도 가슴 시리게 읽었지요.

   즐거운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니 당연한 일이고, 시린 것은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인생 최고의 황금기, 바로 이십 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운데도 가슴이 시리다는 것―. 이는 오직 이십 대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서적 감흥 아닐까요.     


내 삶의 시대 구분법

   여러분은 자기 삶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십니까? 아니, 나누고 싶으십니까?

   그 해에 서울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렸고, 그 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올랐고, 그 해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구분할 수도 있겠지요.

   그 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독일이 통일되었고, 그 해에 9·11 테러가 일어났고, 그 해에 흑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시대구분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해에 김현식이 세상을 떠났고, 그 해에 유재하가 세상을 떠났고, 그 해에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고…… 그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를 사무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게 시대구분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요.

   그 해에 피카디리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았고, 그 해에 동시상영극장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았고, 그 해에 단성사에서 〈서편제〉를 보았고, 그 해에 서울극장에서 〈터미네이터2〉를 보았고, 그 해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비디오가 아니라 필름으로 〈동경 이야기〉를 보았고…… 물론 이것은 저만의 시대 구분법입니다.

   이처럼 영화를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데 저는 아무런 저항감이 없습니다. 아니, 그래야 비로소 시대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오쿠다 히데오의 이 장편소설(정확히 말하면 연작소설이지만, 저는 그냥 장편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스무 살, 도쿄》를 읽으면서 그리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인데도 거기에 금세 깊이깊이 빠져들었던 것은 이 소설이 바로 그와 같은 시대 구분법을 도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낚였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만의 시대 구분법

   이 소설은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열한 해 동안에 걸친 삶의 이야기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열한 해를 여섯 개의 챕터로 나누었습니다. 한 개의 챕터가 단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소설은 모두 여섯 날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고작 여섯 날로 열한 해라는 세월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여섯 날이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네 가지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개인사입니다. 이는 소설이니 당연합니다.

   또 하나는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1979년 6월 2일은 프로 진출 과정에서 물의를 빚어 구설수에 올랐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괴물 투수 에가와 스구루가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첫 등판을 해서 보기 좋게 패전투수가 됐던 날로, 1981년 9월 30일은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의 고향인 나고야가 1988년도 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서울에 밀려 탈락한 날로, 1985년 1월 15일은 도지샤 대학 팀과 신일철 가마이시 팀이 역사적인 럭비 일본 선수권 대회 결승전을 벌인 날로, 각각 주인공에게는 기억됩니다.

   또 하나는 음악입니다.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는 현재(소설 속에서는 1989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는데, 실은 학생 시절부터 록 음악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의 삶에서 음악과 관련한 사건들이 주요한 기억의 근거가 되는 것은 속절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1978년 4월 4일은 여성 3인조 그룹 캔디스가 고라쿠엔 구장에서 마지막 해산 공연을 했던 날이고, 1980년 12월 9일은 비틀즈의 존 레넌이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날이고, 1989년 11월 10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이면서 동시에 이듬해 2월 롤링 스톤즈가 일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을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입니다.

   이쪽은 구체적인 날짜 따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영화 개봉 시기가 각기 달랐으니까 그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냥 영화의 제목만 들어도 시대감각이 기억 속에 파릇파릇 되살아납니다.

   〈미지와의 조우〉와 〈스타워즈〉, 이건 1978년입니다. 여기에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이야기가 슬쩍 끼어들고요.

   〈디어 헌터〉와 〈에일리언〉은 1979년입니다. 여기에 당시 일본 영화계의 독특한 성격배우였던 스가와라 분타 주연의 〈트럭 녀석들〉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가 덧붙여집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올 댓 재즈〉는 1980년입니다.

   〈고스트 버스터즈〉와 〈그렘린〉, 그리고 〈고질라〉와 〈W의 비극〉, 이건 1985년의 풍경이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9년은 단연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블랙 레인〉입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다카쿠라 켄, 그리고 앤디 가르시아―.

   하지만 이 소설에서 〈블랙 레인〉은 그즈음에 돌연 사망한 이 영화의 출연자 마쓰다 유사쿠의 영화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이 이십 대의 이야기는 동시에 고스란히 ‘꽉 찬’ 팔십 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것은 소설

   그래도 《스무 살, 도쿄》는 기록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설입니다. 이야기가 맛깔스럽지 않다면 끝까지 읽기가 쉬울 턱이 없지요.

   하지만 이야기가 맛깔스럽지 않으리라는 우려는 오쿠다 히데오라는 이름 앞에서 그만 접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이야기가, 그러니까 여섯 개의 챕터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긴밀한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앞에 나온 어떤 인물과 주인공의 관계가 뒤에서 어떻게든 연결되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언뜻 보기에는 긴밀한 듯하지만, 실은 비현실적이고 안일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네 삶에서 예전에 관계를 맺었던 사람과 세월이 흘러 어떻게든 또다시 연결되는 일 따위는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개는 그걸 간절히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그냥 흘러가버린 것이니까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따라서,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주인공이 사랑에 빠졌던 여자와 하나도 연결이 되지 않은 채 나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방식, 혹은 태도가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쪽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식의 이야기 구조는 실상 저급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지경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런 ‘관계의 인과성’에 얽매이지 않고 이야기를 과단성 있게 죽죽 밀고 나아갑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이십 대

   또 하나는, 이 주인공이 참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형이라는 것입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혹은 제가) 살아왔던 이십 대에서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성실함이요 부지런함입니다. 독자를 어떤 식으로든 압도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혹은 제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결국은 그 때문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너무나 애달프기에 그리운 것이 아닙니다. 딱 우리가(혹은 제가) 지나왔던 그 길과 너무도 비슷하기에 그리운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이런저런 국면들에서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분명히 비슷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맥락이 그러하니까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는 평범 이상의 특별한 인간도 아니요, 평범 이하의 모자란 인간도 아닙니다. 이 점도 참 마음에 듭니다.

   일본의 팔십 년대와 우리의 팔십 년대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가 이십 대를 거쳐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니, 이십 대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지 않은 이십 대는, 혹은 그런 이십 대조차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밉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쿠다 히데오만의 스무 살, 이십 대, 팔십 년대의 ‘동경 이야기’입니다.  *

이전 03화 15.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