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자 같은 거 쓰는 일은 절대로 안 할 거야.
중학생 시절, 다가올 시험을 위해서 내가 당시 정말 외우기 싫어했던 한자를 외우면서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던걸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일본과 일본어에 대한 존재를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통해 접하여 빠지게 되었고, 한자는 나에게 있어서 바늘과 실 같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럼 지금은 한자가 좋아지셨나요?라고 묻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대답은 이전보다 편해졌긴 했지만 좋아졌는가를 묻는다면 물론 No이다.
나는 절대로 문과는 안 갈 거야. 미술 전공을 할 거야,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야.
나는 어린 시절 꿈이 정말 많았지만, 패션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가지고 싶었던 시기가 무척 길었고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미술과 음악을 전공했던 형제들의 영향도 깊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좋아했고, 무조건 이 쪽으로 나아갈 거라 생각했었다.
라고 말했던 나는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인문계에 진학하게 되고, 대학교는 미술이나 디자인이 아닌 일본어를 전공하게 될 줄 어린 시절에 나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난 일본에 절대로 못 갈 거 같아.
대학입시를 앞두고 미술과 일본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본에 꼭 가고 싶다. "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3 초입에 뒤늦게 일본어특기자 전형을 준비하기 시작. N1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적을 올리기 위해, 머릿속에 도저히 들어오지 않는 한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외웠던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일본에 가고 싶어. 하지만 이대로는 못 갈 거 같아. 못 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수십 번 수백 번 머릿속에 떠올렸던 적도 많았고, 당시 엄청 인기가 많았던 일본 드라마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 도쿄 상경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일본에 못 가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본에 여행을 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 나는 일본에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에 빠져있었고, 일본 관련 전공을 한다 = 일본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랬던 내가 여권에 일본 출입국 도장이 무수히 찍히고, 일본 비자를 3번이나 받고, 일본에서 5년간 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나는 절대로 어디 혼자서 놀러는 못 다닐 거 같아.
하고 싶은 건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았던 10대 때의 나는, 이루고 싶은 건 많지만 그걸 해내지 못했을 때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컸었다. 그래서 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혼자서는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고, 좋아했던 일본 가수의 내한 공연도 혼자서 가기 두려워서 못 갔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그랬던 내가 일본에서 살면서, 거주했던 교토와 도쿄 이외에도 일본 이곳저곳을 혼자서 여행하게 될 줄은. 하루에 25000보는 거뜬히 넘기면서 여행을 하거나, 야간버스를 타고 교토에서 도쿄까지 7시간 가까운 이동을 하거나, 휴일 아침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전철 첫차에 몸을 싣고 당일치기 여행을 떠날 줄은. 누가 예상 할 수 있었을까?
서비스직은 나한테 안 맞을 거라서 절대로 안 할 거야.
낯도 많이 가리고, 특히나 사람 앞에 서면 너무 극도로 긴장을 해서 발표하는 것도 꺼려할 정도로 무대공포증이 있던 나로서는, 서비스직은 절대로 절대로 단연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나의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성격을 바꾸고 싶어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원어연극부에 입부하고, 해외 교류활동이나, 홍보대사에 참여하는 등 성격을 바꾸려 노력을 했었지만, 매일매일 다양한 국적과 성별, 연령의 수천 명이 넘는 손님들을 대응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서비스 직종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그것도 일본의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도 못 꿨던 일이다.
나는 절대로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절대로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로 해내고 말겠다!라는 경우라면 지금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절대로 못할 거야, 해도 안될 거야.라는 느낌의 절대로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로라는 말은, 입 밖으로 뱉게 되면 부메랑처럼 돌아와 버리는, 결국 복선 회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일본 여행에서 나아가 교환학생으로.
교환학생에서 나아가 워킹홀리데이로.
워킹홀리데이에서 나아가 취업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서 살면서, 힘들면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라는 마음으로 일본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무려 20대의 반틈을 일본에서 살았었고 현재는 한국에 귀국을 하게 되었다.
위에서는 적지 않았던, 언젠가의 편집부에 소속이 되어 알바로 일을 했던 시절, 난 절대로 다시는 글 적는 일을 하지 않을 거라 다짐을 해놓고는 이렇게 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적게 되었다.
결국, 추억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모든 기억은 나에게만 남아있고,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일본 생활 시절을 글로 되돌이켜보며 블로그에도 일본 여행기를 작성 중에 있지만,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 어떻게 보면 조금 흔하지 않은, 일본의 어느 미술관에서 근무를 했던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주변에 일본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일본어 공부, 여행, 유학, 취업 등 정말 다양한 일본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나갔던 10대의 나처럼. 나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누군가의 미래의 꿈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