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인가.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나와 너무 비슷한 그녀와 1:1 커피챗을 진행했다.
마케터를 희망하는 취준생들이 모인 교육 프로그램에 담당자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싶었고, 그들도 진심이길 바랐다.
그 중에서도 왜 하필 그녀였는가 하면,
클래스메이트를 자처하던 모습부터 매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던 태도에 눈길이 갔고
그래서 더욱 기대가 컸지만 생각보다 부진한 모습에 의아해 하며, 그녀가 품고 있는 고민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녀의 포트폴리오에선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보였다.
그래서 정돈이 되지 않았고, 더 명확히 말하자면 취준용 포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분명 감각도 보이고, 가지치기만 잘하면 가능성이 많은 사람인데
무엇이 자신을 붙잡고 있는지.
왜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지.
궁극적으로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직무가 ‘마케터’가 맞는지 그게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여태 해온 일련의 행위들을 하나로 묶어 자신감있게 보여주는 것에 주저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마케터를 원하는지→그렇다면 그것을 위해 지금 당장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그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었다.
그래, 누구나 그런 방황의 순간이 있지
나는 숙제를 내주었다. ‘나’를 찾는 방법.
그 첫단계는 마인드맵이다.
나를 중심에 놓고 수많은 가지를 뻗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것.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무엇보다 응당 해야하는 것들에 강요받고 자라와서 온전히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덜컥 겁을 내기도 한다.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끊임없이 방황 했던 나. 그리고 여전히 그것은 지속되고 있지만, 결국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커피챗을 제안했다.
너무 오지랖인가 싶어 조심스럽기도 했는데 어렴풋이나마 나는 그녀가 그것을 승낙할 줄 알았던 것 같다.
나를 너무 닮아 있는 그녀.
하고싶은 것도 많고 재능도 많다보니
정작 자신이 정말 하고싶은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기로에서서 갈팡질팡하는 모습.
그렇다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에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불안한 마음에 쫓겨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그 모습.
나 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이들이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쳤으리라.
현실을 바라봐야하는 나이에 가까워지면 고민은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꼭 그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현실에 타협함과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나만의 해법을 찾는 것.
나는 나름대로 지금 나만의 해법대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나도 '아직 20대니, 더 많이 방황하고 경험을 자산적 가치로 여기며 살자’하던 때가 있었다.
틀린말은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른다고 했지. 내게 현실을 생각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생겼다.
남들에겐 속 터놓고 할 수 없어 끙끙앓던 어떤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귀를 틀어막던 내가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평탄히 살아왔던 내 삶에 큰 바위가 내려앉은 기분.
한편으론 극복해내고 싶었다.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을 겪으며 난 아주 조금은 성숙해진 듯하다. (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다.
불과 몇년 전 그 시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그녀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하나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요.
그녀는 해온 숙제를 내게 건넸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했다.
중구난방으로 뻗쳐있는 관심사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선택. 눈앞에 있는 기회 사이에서..
나는 그 혼란의 가지들 속에서 연결성을 발견했다.
훗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게 꿈이라는 그녀에게 “지금 나열 해 놓은 직무들이 훗날 당신의 공간을 만드는 데에 연결 될 요소가 너무 많아요”라 말했다.
[하고 싶은 일]
-제품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이모티콘 디자인 등), 브랜딩 디자인(로고 등)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서비스직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얼추 이런 내용들이었다.
가장 연관이 없어 보이는 패키지 디자인을 예시로 설명했다.
‘패키지 디자인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뭔지 아세요?’
‘형태 설계부터 실물까지. 어떤 지류를 선택하는지. 양각을 할지 박을 씌울 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후가공에 따라 천차만별로 그 디테일이 달라져요’
‘지금 만약 패키지 디자이너로써 몇년 커리어를 쌓고 난 뒤 훗날 당신만의 공간을 만들 때,
그 공간은 얼마나 디테일한 매력이 숨어있는 공간이 되겠어요?’
난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질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뭘 배울 수 있는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외양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어떠한지. 그럴듯해 보이는지. 연봉은 많이 주는지(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외형에 빠져 정작 내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뜬 구름 잡는 소리하지말고 어떻게 취업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라'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겐 나의 철학적 망상같은 이야기가 와 닿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는 그녀에게
조금은 그 생각이 가벼워 질 수 있도록 ‘회사에서 자아를 실현할 생각을 버려라’ 는 개념을 심어줬다.
“위 직무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쉬운게 뭘까요?
이모티콘 디자인은 지금 당장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쫌쫌따리 그린 귀여운 이모티콘을 제출해보는 거에요. 거기서 이미 해낸거나 다름없죠!”
이미 이모티콘 시장에서도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기 많은 이모티콘은 너도나도 이용한다.
'내가 저런 사람들처럼 흥하는 이모티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그녀는 내말에 이마를 탁 쳤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모두 직업이 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함을 내려놓기로.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우선은 무엇인가 하는것에 의의를 두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오늘 당장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른 것이다.
매일 30분씩. 아니 정 힘들면 10분이라도 한사람과 안한사람의 차이는 명백하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