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이젠 정말 혼자가 되었다. 이것저것 조금씩 도전해보기.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평생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무엇을 할까?
가족들을 LA 국제공항으로 데려다준 후,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정말로 혼자가 된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LA 첫날부터 2주 동안 함께했던 가족들이 (물리적으로)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허전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좀더 잘해줬어야했다고 좀더 많은 곳을 구경했어야했다는 생각들을 하며 끊임없이 후회를 하였다. 함께 있을 때는 여러번 다툼도 있었는데, 막상 가족들이 돌아가고나니 그들의 소중함이 크게 느껴졌다.
가족들이 돌아간 후 다음 날까지는 허전하고 슬픈 마음이 가득했으나, 시간이 지나갈 수록 '학기 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물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만 가득했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LA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학기 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서툴렀던 나의 프로젝트들을 소개해보겠다.
실패를 하기도, 중간에 포기하기도 한 나의 홀로서기 프로젝트.
지금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알게되었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던 '초급 유학생'의 프로젝트를 돌이켜보겠다.
첫번째 프로젝트: 뮤츄얼 프렌드를 통한 인맥 넓히기 (초급편)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나의 좁은 인맥이었다. 물론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친하다'는 범주에 드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할까?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친구가 많지 않을까?
수도 없이 고민을 해봤지만 그 당시 나는 제대로 된 답을 내리진 못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할 당시, 우리 회사는 회식이 유달리 많았다. 수많은 상사들이 각자가 주재하는 회식을 만들기도 하였고, 수많은 선배들이 자신들이 주재하는 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연차가 비슷한 동료들이 '번개'라는 이름의 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98% 가량의 회식에 참여하기도 하였다(내가 초대되는 경우에만). 처음에는 회식이 좋기도 하였다. 특히 미식가인 상사나 선배의 회식에 갈 경우에는 미식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좋았고, 회식 중 상사나 선배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폭탄주 회식이 반복되면서 집에 들어가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그냥 누워 자거나, 다음 날 숙취로 인한 어지러움과 구역감을 느끼면서 일어나거나, 술에 취한 채 편의점에 들려 컵라면, 핫바, 삼각김밥 등을 한가득 사들고 들어와 걸신들린듯 먹고 잔다거나,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강아지를 껴안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폭음을 한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숙취로 인해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
다양한 이유들로 술을 줄이거나 끊기 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회식이나 번개 모임에 초대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술을 마시는 동료들끼리 갖는 끈끈한 전우애를 더이상은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회사 내에서 인간관계가 좁아지게 되었다. 그래도 크게 불편함은 느끼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가까운 동료들이 있었고, 회사 내 '네트워킹'을 하지 않더라도 낮은 연차였던 나로서는 회사 생활에서 불이익을 입는다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없었다.
회사 밖에서의 인간 관계도 비슷했다. 쉬는 날에는 운동을 하러 가거나 영어학원을 가거나 집에서 재충전을 하였을 뿐,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에너지가 부족했다. 오랜 친구들과는 주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을 뿐, 바쁜 일상이 지속되면서, 그리고 친구들의 일상도 바빠지면서(육아, 학업, 일 등) 대면 만남은 줄어들게 되었다. 간혹, 소모임이나 동호회를 하여 인맥을 넓히는 동료나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소모임이나 동호회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인맥이 넓지 않더라도, 자기계발(요새는 자기개발도 표준어가 되었다고 하나)이나 가족들 그리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관계의 니즈'는 충족되었다.
하지만, 미국에 혼자 떨어지게되니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1. 직업적인 부분에서의 '인맥관리': 미국을 들어가서 당장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인맥' 즉, '네트워크(네트워킹)'가 커리어 성공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살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굉장히 '개인의 (지적) 능력'을 중시해주는 곳이었다. 미국은 '지적' 능력 이상으로 개인의 '인맥'을 중시한다. 회사 지원 시에도 '가족, 친지 중에 우리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보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되어있다. 회사 지원 포털 자체에서 입사 지원서 제출 시 저런 내용을 물어볼 정도이다. 당연히, 인맥이 있는 사람이 취업에 있어 우선시된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이 사회 시스템은 그렇게 구성되어있었다.
2.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인맥관리': 친구들 중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다녀온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미국이 매우 넓다보니 막상 같은 지역에 있는 친구는 한명도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친구를 만들어야했다. 한국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휴일, 자기계발 등으로 막상 친구가 많지 않더라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학기 시작 전) 미국에 홀로 남겨지니 혼자있는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학교 한국 학생 모임을 이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각 학교들은 한국학생회가 있거나 한국학생들 교류 모임이 존재한다. 내가 다닌 단과대학 역시 한국 학생들의 비율이 낮지는 않아서 한국학생 교류 모임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 검색을 해보며 한국학생 모임, 카카오톡 채팅방 등에 대한 정보는 얻었다. 그러나 막상 모임에는 단 한번도 나간 적이 없었다. 막상 한국학생 모임을 나가보려고 하자,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단체 모임에 홀로 나간다는 두려움이 발동했다. 결국 한국 학생 모임을 통한 친구 사귀기는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갔다.
두번째,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이 부분은 물론 내가 마음을 먹고 적극적으로 '연결'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고, 친구나 지인들 중 내가 유학가는 것을 알게된 분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신들의 지인을 연결해주었다. 일면 '뮤츄얼 프렌드(Mutual friend)'.
지인의 지인들이라 사실 나에게는 '공감대'가 거의 '공통된 지인' 밖에 없는 타인들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미국에 유학을 오거나 파견을 오거나 가족들 따라 와있는 사람들인지라 '한국에서 낯선 땅에 와서 거주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나처럼 미국에 온지 1개월이 채 되지 않은 사람들과는 '정착'이나 '외로움'에 대한 니즈가 비슷하였기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또한, '뮤츄얼 프렌드'의 장점은 학교 학생모임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신원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처음보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에서 워낙 사건사고가 담긴 뉴스를 많이 접해서 그런지 어느 정도는 경계를 하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는 최소한 파악은 하는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뮤츄얼 프렌드의 경우에도, 막상 그 사람과 실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즉, 나와 '코드가 맞는지'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착 초기에 사귄 뮤츄얼 프렌드들은 서로의 성향에 따라 어느정도의 정착기간이 지나게되면 관계가 정립이 되었다. 처음에는 다함께 정착을 하는 끈끈함으로 다소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정착 기간이 지나게되면 '같은 고충을 공유'함으로 시작된 끈끈함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와 똑같이, 성향이 맞는 사람과는 계속하여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관계가 끊기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정착 단계의 인연을 '미국 생활 인맥의 전부'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뮤츄얼 프렌드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거나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는 지인들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과의 좋은 시간들을 많이 보냈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나와는 시절인연들이었다.
미국에서 알게된 (한국) 친구들 중 대부분은 '시절인연'을 겪었다고 한다. 정착 초기 등 마음이 맞아 굉장히 가깝게 지내다가 삼삼오오 흩어지는 경우들 말이다.
세번째로는 학교 내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 방법을 통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확실히 공감대와 관심사가 비슷하게 되면 그만큼 '친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학교 내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한국인도 있었지만 내 친구들은 주로 중국 본토, 동남 아시아,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살아온 배경과 문화는 달랐지만 나는 그들과 진정한 교우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도 물론 '시절인연'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인간관계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인간관계는 학교 친구들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들은 추후 포스팅할 예정이다.
미국 정착 초기, 인간관계를 넓혀보겠다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시작한 '인맥 넓히기'는 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우선,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을 굳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인간관계의 니즈'를 충족시켜보고자 '인맥 넓히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그닥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은둔형 외톨이도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모임을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친구들과 잦은 모임을 갖는 '사교적 성격'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학교 학생 모임이나 뮤츄얼 프렌드를 통한 인맥 넓히기는 나에게는 처음부터 어려운 도전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맥 넓히기' 자체가 나에게는 어려운 도전 과제였다.
적어도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넓은 인맥이 아닌 '내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소규모의 인간관계'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