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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Jul 04. 2024

#12.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알콩 달콩이가 나에게 찾아온 순간부터 알콩이를 만나고 달콩이를 보내주던 그때.

알콩이를 보며 행복하지만 달콩이를 그리워하던 시간.

남에게 들킬세라 괜찮은 척하던 나의 모습.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억년만큼 긴 그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슬픔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해서

달콩이를 마음껏 그리워하지 못해서

그래서 그 마음들이 억 겹이 쌓이고 쌓여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를 외롭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용기를 내어 이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하고, 

어떤 흐름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제목을 정해야 할까 고민했을 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랐던 나의 복잡한 마음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상실로 인해 슬픔, 우울, 무기력, 자책으로 감추어진

깊은 곳에 숨겨있던 나의 내면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사실. 

       난.

       위로받고 싶었나 보다.






달콩이의 심장이 멈췄던 그때.

가족. 친한 친구 몇 명, 친한 동료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말 친했던 친구들에게도 카톡으로만 대화가 가능했다.

통화를 하고 싶어도 너무 많이 울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여전히 울먹이는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싫었기에 

최대한 통화를 피했다.


입원이 길어지고, 교수님을 만나 어느 정도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모든 임신과정을 함께해 주신 친한 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왔다.  

나는. 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슬픔을 줄까 봐 신신당부했었다.


     "쌤. 나 이제 교수님 만나고 

      진짜 많이 괜찮아졌어요. 

      근데.. 그래도 달콩이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는데..

      나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쌤들 만나면 안 울고 웃고 싶어요.

      그러니까 학교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하다가 가는 거예요. 

      알았죠?"


그렇게 내가 걱정이 되어 오롯이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온 선생님들은

나의 부탁대로 학교 이야기, 일상이야기 다양한 신나는 이야기들을 하고 가셨다.

나 역시 맞장구치고 웃고 떠들고 예전과 다름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이 떠나고 병실에 혼자 남은 시간. 

너무 보고 싶었던 선생님들을 만나서 좋았는데, 

분명 즐거운 이야기를 해서 신이 났는데.

눈물이 났다.


마음을 나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도 내 마음을 편히 드러내지 못하는 내가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그 마음을 받아들일 틈조차 주지 않은 내가

안쓰러워였을까. 답답해서였을까. 

바보 같아서였을까.





둘째는 자라면서 또래보다 작고, 발달도 남들보다는 조금 느렸다.

36개월이 되어 또래 수준의 언어 수준이 올라오지 않았을 때 언어치료를 시작했었다.

태어나면서 다양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검사결과가 정상이더라도 발달 과정에 조금의 문제라도 느껴지면 걱정이 되었다. 

집 근처 언어치료가 가능한 발달센터를 수소문하여 전화상담을 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이벤트가 많이 있었어요. 

       이른둥이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신체발달도 또래보다 많이 느려요. 

       하위 1% 곡선에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리고 사실 이 아이는 쌍둥이었는데, 

       한 아이가 잘못되어 한 아이만 태어났어요.

       우리 아이 말을 잘 못하고 

       눈 마주침도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 걸까요..?"

 

       "어머니. 힘든 시간을 보내셨겠군요. 

        전화상으로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으니 

        센터 오셔서 검사받아보세요."  


센터를 방문하여 검사했을 때, 다행히 발달은 정상이었다. 

다만 언어평가 중, 수용언어(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는 정상범주였지만 표현언어(구어 혹은 문어의 방법으로 의사소통하는 것)가 10개월이 느렸다. 

한창 코로나 시기였기에 어린이집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고, 집에서는 말이 빠른 누나와 대화하는 엄마아빠의 모습만 보니 천천히 정확한 발음을 배울 기회가 적어서 표현언어가 적절히 발달될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어머니. 우리 아이 언어발달은 느리지만 

      잘 자라고 있어요.

      어머니가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느린 아이들은 그만큼 아이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양육방법을 배우면 돼요. 

      출산 때 힘든 일 겪으셔서 많이 힘드셨죠? 

      자책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책과 불안이 우리 아이를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 걱정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의심이 되고, 의심이 다시 자책이 되고.


사실 둘째가 느리다고 하더라도 그건 달콩이의 영향이 아닐 텐데 

달콩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고 가슴 깊숙이 박혀있는 죄책감이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예상하지 못하는 일 앞에선 모든 것이 멈춰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우리 아이를 불안한 아이로 만들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에게 달콩이의 이야기를 꺼냈던 건,

어쩌면 나의 두려움을 누군가 보담아 주길 바라서이지 않았을까.

나의 불안함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실의 외로움을 위로받고 싶어서이지 않았을까.







[내 마음에 손을 내밀 때] 

브런치북 소개글에 이렇게 적혀있다.


      - 글을 통해 저와 같은 상실을 품은 사람들, 

        육아로 힘든 분들께 위로를 건네고, 

        또 위로를 받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벼울 작가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저 근데 지인들에게 알리기가 어려워요. 

      너무 걱정하고 같이 슬퍼할까 봐요."


벼울 작가님이 나에게 물었다.


    "민경님은 친구분들이 위로해 주는 게 

      부담스러우신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늘 위로받고 싶었는데 막상 위로를 받으니 

그 위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위로받고 싶지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



나의 불안하고 슬픈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걱정. 착각. 






어렸을 적, 

늘 칭찬을 받고 싶었지만, 

막상 칭찬을 받으면 부끄러워 숨어버리는

어린 내가 서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롤링 페이퍼를 쓸 때면 내 종이엔 어김없이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늘 밝고 에너지 넘치는’

      ‘함께 있어서 힘이 나는’

      ‘먼저 다가와 주고 잘 웃어주는’ 


이런 수식어들이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사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불안한 아이여서 어쩌면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동한 것이었을 텐데. 

그래도 내가 되고 싶어 하던 수식어를 듣다 보니 저절로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또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렇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으로 자랐지만, 부정적인 감정 표현에는 서툴렀다.


10대, 20대, 30대..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교 시절을 보내고, 일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차츰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안아주고 표현할 만큼 마음의 크기가 커졌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신랑도 한몫했다.


그래도 여전히 부정적인 나를 직면할 때,

나도 정확히 모르는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 때,

나의 감정 버튼이 멈춰버릴 때는

두렵다.





하지만 점차 나아지리라는 걸 안다.


용기를 내어 내 마음에 손을 내민 것처럼

그렇게 달콩이를 기억해 주는 것처럼


     쭈뼛쭈뼛 남들의 눈치를 보지만 

     부족한 것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그 시절부터 참 열심히 살았던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싶고 

     괜찮다고 위로받고 싶어 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손을 내밀고 

'토닥토닥' 안아주다 보면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내 마음이, 지금의 외로움이


나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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