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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Jul 11. 2024

#13. 괜찮다가 괜찮지 않고,
괜찮지 않다가 괜찮은.

모든 것을 받아줄 것 같은 포근한 햇살,

퐁퐁퐁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
물가에 일렁이는 윤슬,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바라만 봐도 슬며시 입가에 번지는 미소, 

까르르 거리는 함박웃음,

두 손을 잡는 것, 서로 껴안는 것.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유머.


난 이렇게 몽실몽실하고 살랑살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국엔 극복하고야 마는 초긍정 에너지를 가진 엄마의 영향이 컸다. 

힘들고 우울한 일이 생기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얼른 머릿속에 긍정 주파수를 작동시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 거야.” 


엄마의 삶을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었던 도서 [시크릿, 론다 번]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 엄마였다.


그렇게 나는 긍정적으로 컸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과 유머를 좋아하는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제는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 않고 슬픔, 우울, 불안, 상실과 같은 아이들과도 친숙하게 지낼 뿐이다.






왜 내 마음이 달콩이에게 닿아 그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난이도 최상이지만 행복한 육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혼자만의 세계에 멈춰버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일상에 나의 삶에 나의 육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달콩이에 대한 상실의 슬픔은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 간직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안에서 승화시킬 있는 내면의 단단함이 생겼다고 믿었기에 괜찮았다.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큰 사건이 있었다. 

나의 행동, 존재에 대해 이유 없는 공격을 받으면서부터 단단하다고 믿었던 내면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얼토당토않은 나를 험담하는 온갖 말들은 나를 공격했다.

(달콩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깊숙이 자리 박혀있어서였을까.) 

들을 가치조차 없던 말들은 '나'에 대해 사전적 정의를 내리며 무섭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 자신을 잃어갔다.

매일 불안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은 날들도 있었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학교에서 누군가 레모나를 건네주기만 해도 울었고, 소진 예방을 위한 연수에서도 울었다. 

이미 눈물 버튼은 고장 난 지 오래였다. 


아이들도 불안을 감지하고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웠는지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아이들의 불안을 받아줄 조금의 여유도 남아 있지 않을 무렵, 작은 일에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를 아이들에게 풀 순 없었기에 나 자신에게 향하곤 했다.


그 이후에도 내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나를 공격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모든 불안이 내 몸을 감싸고 모든 세포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유 없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그 상황들이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났다.


멍..


그저 멍 하게 있다 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상실을 경험한 한 엄마의 글을 보고 나서 알았다.


상실을 품은 사람의 마음. 

내가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추었던 마음.

감당할 수 없던 예측불가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마음.

상실에 대한 슬픔을 드러낼 힘이 없었던 마음.

달콩이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했던 마음.

그래서 점점 짙어져만 가는 외로움. 죄책감.



유산, 만삭사산을 경험한 엄마들에게 의사들을 말한다.


     "산모님. 산모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저 교통사고와 같은 거예요.

      몸 잘 추스르고,  다시 아기를 가지면 돼요."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다. 

알고 있지만 모른다.


현실에서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가해자가 있을 테니 

모든 원망 분노를 표현할 대상이라도 있는데 뱃속에게 교통사고라니. 

가해자가 없는 교통사고. 

나의 잘못은 아닌데, 그건 알고 있는데. 

내가 잘 지키면 되지 않았을까? 죄책감이 드는 마음. 

다시 아기가 찾아와 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또다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모든 문제가 나로 인해 생겨날 것 같은 끝없는 좌절감. 






'이제는 더 이상은 도망치지 말아야지.' 굳은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어 달콩이를 마주하며 내 마음에 손을 내밀게 되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끔찍한 일이 나에게 생긴다면?'

이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려운 상황들을 떠올리면 진짜로 그렇게 돼버릴까 봐 무의식적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나의 의지는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던 온 우주가 나를 외면해 버린 듯

예상하지 못한 큰 일을 마주하고 나니

왜 그동안 좌절이나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생각해 본다.

(하긴.. 배운다 하더라도 적용되긴 어려웠겠지)


글을 쓰며 내 마음속 꽁꽁 감추고 있었던, 나 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감정의 협곡사이로 빠져들었고, 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고민으로 잠 못 드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울기도 하고, 울분을 토해내기도 하며 글을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내가 숨기지 않아도, 애써 알리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꺼내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글이 되어 

나의 마음을 감싸주며 내 마음의 둘레를 한 뼘 두 뼘 넓혀주고 있다. 



힘들고, 어둡고, 감당해내기 어려운 기억들의 감정을 꺼내어 놓아서 그런가


   "와. 이 글이 주인공은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을 읽은 사람들이 우울하고 어두운 공기에 같이 갇혀버리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이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눈치 보지 말아야지.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놔야지.






이 글의 주인공은 힘들지 몰라도. 어쨌든 난.

평범하게, 행복하게, 모든 순간, 모든 날들을 

살아내고 있다. 



    괜찮다가 괜찮지 않고

    괜찮지 않다가 괜찮은



지금은 나아졌다 하더라도 

언제 다시 감정들이 내 마음을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언제 다시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오늘이 힘들더라도. 오늘이 외롭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기에

그렇기에 오늘도 산다. 

  


"우리 모두 충분히 잘 살고 있어요."







그동안 [내 마음에 손을 내밀 때] 브런치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모든 순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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