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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Jun 20. 2024

#11. 복직을 앞둔 마음

나의 상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출산 예정일은 4월 중순이었다. 

하지만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일찍 태어날 것을 예상하여 2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일을 하다가 3월부터 육아 & 출산 휴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었기에 그보다도 더 일찍 1월 1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계획한 데로 이루어지는 인생이란 있는 것일까. 


이미 임신 6주 차의 나의 배는 존재를 내보이며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12주 차에는 누가 봐도 임산부의 모습이었으며,
22주쯤이 되자 이미 첫째 만삭 때의 배 둘레만큼 커져 있었다. 

그즈음부터 알콩 달콩이의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져 버린 배 둘레만큼 걱정과 불안도 커져 갔고, 

애써 걱정을 감춘 채 휴직에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한 직장에서 결혼하고, 첫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또 쌍둥이를 임신하니

가족 같았던 모든 동료가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다.      


     “어머! 쌍둥이라고? 그것도 아들? 국가에 이바지했네. 

      다 가졌네~”

     “일란성 쌍둥이면 두 아이가 똑같이 생긴 거예요? 

      슈돌의 그 아이들처럼? 너무 귀엽겠다~”

      “TV에는 쌍둥이들이 많이 나오지만, 

      내 주변에 쌍둥이는 쌤 아기들이 처음이야!”

     “건강한 것 많이 챙겨 먹어요. 

      배 속에 아기가 두 명이니까 두 배로 잘 챙겨 먹어야 해요.     


그 당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쌍둥이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심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복직의 시기가 다가오자, 일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아닌

아직 남에게 내보일 준비가 안된 나의 상실을.

아니, 나 역시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상실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드러내야 한다는 그 상황이

상상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조임으로 다가왔다.


훈장을 받은 마냥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마음을 먹었던

그 시절의 바보 같았던 난. 

반짝반짝 빛나던 훈장이 주홍글씨가 되어 되돌아올 줄 알았을까.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기에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 학부모들, 선생님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알콩 달콩이의 태몽도 매일 만나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던 학생이 대신 꿔 주었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 졸업을 앞둔 그 학생이 전해준 엽서에는 예쁜 코알라가족이 타고 있는 기차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중학교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어요. 

      늘 저한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첫째 딸이랑 알콩이달콩이랑 

      행복한 가정 꾸리세요.

      학교에 다시 오시면 놀러 올게요."  


학교에서 가족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친해진 가족도 있었기에 휴직에 들어간다는 나의 소식을 듣고 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쌍둥이 임신하시고 일 계속하시느라 힘드셨죠?

      이제 출산할 때까지 푹 쉬시면서 건강하게 출산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주고받았던 관계 속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걱정이 주변 사람들의 응원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까지의 난, 삶을 살면서 우여곡절이 있어도 힘듦이 있어도 가끔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생겨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아이콘이었다. 

그렇기에 가족 내의 분열이나 상실을 경험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내가 가진 긍정의 힘을 믿고 학생들을 대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고, 

그 상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의 힘든 내면을, 나는 보담아 줄 힘이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가지처럼 뻗어나가길 반복했다.




출산휴가&육아휴직 변경과 관련된 서류를 내기 위해 학교에 방문을 해야 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른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의 흔들리는 눈빛이 흐르는 눈빛이 될까 봐.


마음속으로 '난 괜찮아' 끊임없이 다짐하고,

혀를 몇 번씩 깨물며 울렁이는 마음을 참아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친했던 선생님들을 찾아가 수다도 떨고 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나의 첫 학교생활 시작부터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모든 나의 30대의 삶을 함께 지켜봐 주시고 지지해 주시던 부장님을 찾아뵀다.

전화할 용기가 없어 문자로만 나의 상황을 전달한 이후, 처음 뵙는 자리였다.


달콩이의 심장이 멈췄던 그날 이후, 달콩이의 상황을 쉽게 알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족, 친한 지인들, 친한 동료들 몇 명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고,

출산을 한 이후, 문자로만 상황을 짧게 정리하여 정리하여 알리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소식을 접하시고, 많이 놀라셨을 텐데. 

문자로만 알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연락드리지 못했던 나의 힘든 시간을 배려해 주셨다. 


문을 열자,  수업 준비를 하고 계신 부장님이 보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송선생님!"


하시며 '괜찮아'의 눈빛과 함께 두 팔을 벌려주셨다. 


그동안 눈 마주침을 최대한 피했는데, 

도망치는 나의 눈빛을 끝까지 쫓아와 나의 아픔을 품어줄 

부장님의 그 눈빛은 피할 수가 없었다.

품에 안기자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눈물을 멈추게 하는 나의 필살기들도 통하지 않았다.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울어도 되니 마음껏 울어요."


     "사실.. 너무 힘들었는데.. 계속 울고 싶었는데.. 

      그런데 집에서는 울 수가 없어서.. 슬퍼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참았던 눈물들이 지금 이렇게 나나 봐요.."

      죄송해요.."


      "그래 알아. 지금 여기서 실컷 울고 가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그래야 집에 가서 힘내서 애들 보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나를 감싸고 있는 잿빛 안개가 눈물에 씻겨 내려가는 듯 머리와 마음이 맑아졌다. 


그때 학교를 방문한 이후 복직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고

한 발짝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남에게 굳이 애써 감추려 할 필요도,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감정이 가는 데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흘러가리라.







드디어 복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는 여전했다.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학생들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선생님들을 만나면,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를 들키게 되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지?


복직을 앞두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그 질문에는 답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선생님들 모두 평상시와 똑같이 나를 대해주셨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닌,

그냥 '나'바라봐주심에 너무 감사했다.


달콩이에 대해, 나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더라도 

내가 먼저 표현하기 전까진 아무도 먼저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의 상실의 시간들을 배려해 주시고 존중해 주셨다.


학생들을 만날 때에도.

예전과 같이 마냥 '굳세어라 금순아'는 아니지만, 

같이 내면의 힘듦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감의 능력은 조금 늘어난 듯했다. 


물론... 

상실을 경험한, 혹은 돌봄의 부재가 있는 학생들에겐 극도로 심한 공감으로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렇게 여전히 10년째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때에도, 지금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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