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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Jun 14. 2024

#10. 너의 부재에 마주할 때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더 이상 쌍둥이를 품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쌍둥이를 품은 적이 있었던 사람.

나의 지난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앞으로 나를 알아갈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달콩이의 존재.


떠나보낼 수 없는 달콩이는

나의 허망한 마음속,

그리고 글자로 표기되는 서류상에만 존재했다.





출산 후 처음 달콩이의 부재를 마주했던 순간은 달콩이의 사산 증명서를 받았을 때였다.


오직 다섯 글자의 사산증명서라는 단어는

오조오억만 큼의 속도로 다가와 내가 처한 현실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었다.


더 이상 내 품이 아닌, 차디찬 영안실의 작고 작은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아기.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장례절차에 대한 서명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해야 했다.

신랑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 혼자 갈까? 자기가 힘들다면.. 나 혼자 가도 돼."

     "아니야. 같이 갈래. 난 엄마잖아.'


장례식장 빈소들을 지나가는 길.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애도하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 휠체어를 타고, 누가 봐도 출산을 했구나 보이는 나의 모습.


예전 달콩이의 심장이 멈춰 초음파실에 가야 했을 땐,

산부인과 대기실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 숨었다.

생명을 기대하고, 생명을 마주하는 것을 앞둔 사람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보여주기 싫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슬픈 눈빛들이 마주치면

  

    괜찮을 거라고.

    아무 아픔도 슬픔도 없는 하늘에서 편안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늘로 향하는 무지개 계단을 건너는 모두가

    외롭지 않기를.


글썽이는 두 눈에 위로의 마음을 가득 담아 주고받을 뿐이었다.


삶과 죽음.

그저 자신이 탄생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다시 또 다른 생명으로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달콩이는 어린 영혼들의 나비정원으로 향했다.





글자에 담겨있는 달콩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부재를 설명해야 하는 일은 더러 있었다.

출생증명서가 그랬고,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위한 서류에서 그랬다.


둘째의 출생등록을 위해 동주민센터로 향했고, 출생증명서를 제출했었다.

담당자는 꽤나 오래 서류를 확인했다.

다태아 칸에 표기가 되어있었기에 두 명인가 확인했다가,

왜 한 명이지? 확인했다가, 태중 사산이라는 단어를 확인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담당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애써 웃음 지을 수밖에.


출생증명서 속에서 마주하는 달콩이의 존재는

한눈에 보이긴 하지만, 여러 번의 해석을 해야 하는

단 몇 칸 속에 있을 뿐이었다.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위해서는 달콩이의 부재에 대해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다태아 임신으로 사전에 휴직을 신청했었기에,

두 명이 아닌 한 명만 태어난 상황에서

모두의 혼란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여전히 상실을 마주하지 못한 채

혼자서만 꽁꽁 싸매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달콩이의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 당시 다태아(쌍둥이)에 대한 출산휴가는 4개월이었다.

그리고 출산 전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힘든 시기였기에


    출산 전까지 첫째의 육아휴직-

    출산 후 출산휴가-출산휴가 후, 육아휴직


이렇게 사용하길 희망했었고, 그대로 인정이 되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첫 3개월과 그 이후)에 대한 지원 금액이 달라서 정확한 날짜로 신청해야 했다.

쌍둥이를 출산한 것이 아니기에 출산휴가는 4개월에서 3개월로 변경되어야 했고, 절차가 필요했다.


사실 일하는 곳 인사담당자에게 말하고,

그곳에서 처리되기를 기다리면 되었지만

달콩이의 부재에 대해, 상실에 대해 마주하지 못했던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먼저 고용노동부에 전화했다.  


혼돈.


     "쌍둥이 출산예정이었는데 한 명만 출산하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변경해야 할까요?"

     "네? 그러면 지금 출산을 하신 건가요?

     "아니요. 한 아이가 뱃속에서 심정지가 왔고,

       아직 임신유지 중입니다."

     "네? 그럼 사산됐다는 건데..

      그러면 사산휴가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 임신 중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제가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담당자의 당황하며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미세한 떨림이었는데도, 나에게는 기관차가 지나간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저 사실을 말한 건데,

    그 사실이 거짓이었다면.

    거짓과 같은 이 사실이 꿈이었다면.



몇 번의 통화를 거쳐 결론은 이러했다.

달콩이의 심정지가 있기 전까진 육아휴직이고, 달콩이의 심정지~출산 까지는 사산휴가, 출산~3개월은 출산휴가, 그 이후엔 다시 육아휴직을 쓰면 된다고 했다.


이제 일하는 곳으로 가서 인사담당자에게 변경되는 내용을 전달해야 했다.

나의 임신과정을 함께한 곳.

쌍둥이 임신을 그 누구보다도 축하해 줬던 곳.

그곳에 난 갈 수 있을까.





알콩 달콩이의 존재로 축하받고, 함께 소통했던 곳에서

달콩이의 부재를 그 어느 곳보다 서늘하고 날카롭게 마주한 이 있었다.


쌍둥이 엄마들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소통공간이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노하우, 공감, 소통을 하고 싶기에 온라인 커뮤티니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나 역시 첫째를 임신했을 때부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곳은 정보가 너무 많았고, 다양한 상황을 겪고있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했기에 쌍둥이를 임신하고 나서는 다른 온라인 커뮤티니에 가입을 했다.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증명을 해야지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카페였다.

모두가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거나 육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기에 그 안에서 보다 많은 도움을 받고, 정보를 얻으며 소통할 수 있었다.


임신사실을 안 순간부터 입덧의 순간, 육아용품 구입의 순간, 만삭사진의 순간, 알콩이달콩이의 차이가 벌어지며 걱정이 되는 순간까지.

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들에 대해 글을 작성했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공유하며 많은 응원과 공감, 위로를 나누고 나의 임신과정을 함께해 주었다.


달콩이의 심장이 멈췄을 때에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곳이었다.

나의 상황을 표현할 용기가 없어 글은 쓰지 못하고 검색을 했던 것 같다.

  

   '사산',  '유산',  '만삭사산',  '심정지'

 

임신기간 중에 알고 싶지 않았던, 찾아보고 싶지 않았던, 멀어지고 싶은 그 단어들은

이제 나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나보다.

그리고 간절할 땐 찾게 되는.

이 이기적인 마음.


글을 클릭하지도 않았고, 댓글을 달지도 않았던

무의식 속에서 밀어내버린 슬픈 내용의 글들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 속 엄마들의 글 혹은 댓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글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출산 후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 없었다.

글이나 댓글로 확인되는 아이디로 쪽지를 보내 소통을 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도 이 커뮤니티에 종종 들어왔다.

사실 달콩이 생각이 날 때마다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글들을 읽었다.

달콩이가 나와 함께 있었을 때의 소중한 기록들.

현실은 아닐지라도 그 당시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어느 날, 한 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두 아이의 중 한 아이의 심장이 멈춰서 출산할 때까지 함께 품고 있어야 하는데

잘 출산할 수 있을지, 태어나고 나서도 건강할지에 대한 걱정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뱃속의 그 아이는 16주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엄마의 걱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역시 그랬기에.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댓글을 작성하고,

용기를 내어 글을 썼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날, 출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알콩이와 달콩이의 이야기였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위로와 격려,

한 명만 출생하더라도, 일찍 태어나더라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이 오갔다.

용기를 낸 나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슬프지만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방문하던 어느 날,

쪽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커뮤니티 운영진에게서 온 쪽지였다.


     "00님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의 상심이 크셨겠어요.

      그럼 한 아이만 출산을 하신 거죠?

      이 카페는 쌍둥이를 가져야만 들어올 수 있는 카페니,

      탈퇴해 주세요."


멍..


틀린 말은 아니다. 난 더 이상 쌍둥이 엄마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쓴 글들 속에는 달콩이가 살아있는데.

이대로 탈퇴할 수 없었다.


답 쪽지를 써서 보냈다.  

 

      "한 아이만 출산한 것은 맞지만,

       그 안에 제 글들이 있는데.

       그리고 저의 글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데

       탈퇴라니요."


       "이 카페의 규정이 있습니다.

        00월 00일까지 탈퇴하시지 않으면

        탈퇴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타올랐지만,

더 이상 무언가를 할 힘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쌍둥이를 품었던 그 시기의 소중한 순간들의 기록은 희미해져가는 나의 기억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랬다.

과거 내가 검색했던 나와 비슷한 상황들의 글들이 이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탈퇴해서, 혹은 탈퇴당해서였다.


'탈퇴해 주세요'라는 글을 본 순간부터

달콩이의 부재에 대한 현실의 무게에 그대로  파묻혀버렸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달콩이의 부재를 앞으로도 계속 마주해야 하겠지만

달콩이는 살아있음을 알고 있다.


나비정원에서 수많은 순수한 어린 영혼들과 함께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고,

하늘의 뭉게구름으로 떠다니고 있을 것이고,

그리고 이곳. 여기 글에서도 살아있다.


내가 다시 용기를 가지고 내 마음에 손을 내밀게 해 준

우리 달콩이.


그렇게 달콩이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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