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이 된 첫째는 이제 갓 100일이 된 둘째보다 더 자주 깼다. 밤에 잠을 자다가 잠시라도 내가 몸에 붙어있지 않으면 일어나서 나에게 왔다. 겨우 몸을 때어놓고 둘째 수유를 위해 자리를 옮겨 누우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꿀을 찾아 윙윙대는 꿀벌처럼 나를 쫓아왔다.
내 몸에 꿀이 발려있는 것이 분명했다.
둘째가 배고프다고 새벽에 ‘응애’하고 울며 깨면,
첫째는 ‘으아아악앙앙앙’ 하며 소리를 지르며 울며 깼다.
밤 기저귀를 뗐음에도 불구하고 밤에 실수하는 일도 잦아졌고, 잠도 편하게 들지 못했다.
자러 가는 시간은 1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으며,
늦은 등원으로 어린이집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시간도 길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첫째는 야경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야경증의 원인 중에는 정서적 불안,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라고 한다.
그렇게 첫째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안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주변을 돌아볼 힘이 없었던 나는.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나는.
그저 딸이 ‘미운 네 살’ ‘사(4살) 춘기’
그 예민함이 멈출 줄 모르고 폭주하는 기차처럼 보일 뿐이었다.
내가 힘들었던 그 시간 속에서의 딸의 힘듦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서 잠을 잔 적이 없었던 딸은
달콩이의 심장이 멈춰버렸던 그때,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게 되었다.
하룻밤도 아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그저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슬픈 소식만 접한 채,
고스란히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과 걱정을 견뎌냈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난 날.
동생이 태어난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기분 좋게 하룻밤을 할머니와 보낸 다음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친정 부모님, 바로 옆에 사는 언니 모두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어 딸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었다.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출산하게 되었고, 나의 몸이 좋지 않아 밤새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라 신랑이 딸에게 갈 수 없었고, 딸을 봐줄 가족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에도 친정 부모님은 외할머니의 장례절차로 지방에 며칠 더 머물러야 하셔서, 딸은 본인이 사랑하는 따뜻한 우리 집이 아닌 이모의 집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엄마 껌딱지에 예민함을 가지고 있던 나의 딸은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은 채 그 시간을 보냈다.